법원, 대학은 만만하고 공공기관은 부담? 같은 사안 다른 논리…“하위법 미비” 핑계
[매일일보]몸이 불편해 휠체어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장애인이 원하는 곳에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는 권리를 뜻하는 ‘장애인 이동권’과 관련해 역대 법원의 판례들이 이중잣대를 가지고 판단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되고 있다.
단적으로 말하면, 사립대학교가 피고로 등장하는 사건에 대해서는 장애인의 편을 들어주던 법원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한 재판에 임할때는 정반대의 논리를 들어 장애인의 호소에 눈감고 있다는 말이다.
너무도 진보적인 사립대 대상 판결
지난 1998년 ‘장애인 대상 특별전형’으로 숭실대학교에 입학한 박지주(42·여)씨는 2002년에 장애인 편의시설을 갖추지 않은 학교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당시 법원은 하반신 마비로 휠체어에 의지한 박씨를 위해 그리 많은 비용이나 시간을 들이지 않고도 쉽게 이행할 수 있는 배려 의무마저 학교 당국이 소홀히 했다며 박씨 손을 들어줬고, 이 판결은 장애인이 비장애인처럼 자유롭게 다닐 권리를 다투는 사건의 ‘시금석’으로 남았다.박지주씨 사건 이후 딱 6년 뒤인 2008년에도 창원지법에서 장애인 학생의 경남대학교(학교법인 한마학원)를 상대로 제기된 유사한 손배소송에서 일부 승소 판결이 내려져 항소 없이 확정된 바 있다.당시 재판을 맡은 단독재판부 판사는 판결문에서 “인간에게 가장 기초적인 이동권마저 비장애인과의 형평성이나 예산상의 문제 등을 거론하며 그 해결 시기를 늦추려 하는 것은 비장애인들의 편의적인 발상에 불과하다”고 질타하기도 했다.하지만 이 두 사건을 제외하면 지난 10여년 사이 장애인 이동권과 관련해 법원이 내린 판결들은 대부분 ‘비장애인과의 형평성이나 예산상의 문제 등을 거론하며 그 해결 시기를 늦추려는 비장애인들의 편의적인 발상’을 고스란히 드러내왔다.‘모든 교통수단’이 모든 버스는 아니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72단독 이민영 판사는 최근 장애인 5명이 장애인차별금지법, 이동편의증진법 등을 근거로 시외 저상버스 도입을 주장하며 국가와 서울시를 상대로 낸 손배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이민영 판사는 ‘장애인을 제한·배제·분리·거부하지 말라’는 장애인차별금지법 규정에 대해 “모든 교통수단을 비장애인과 동일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설비를 갖추라는 취지는 아니다”라고 해석했다.법원의 보수성·눈치보기 증거
반면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러한 판결이 대한민국 법원의 보수성과 정치성을 드러내는 사례라는 비판도 있다.선진국의 경우 법원이 판례를 통해 진보적인 사회규범을 새로 선도하는 기능을 다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우리 법원의 경우 ‘힘 있는 기관’을 상대로한 재판에서 눈치보기에 급급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그런 측면에서 기사 앞부분에 인용 언급한 2008년 창원지법 판사의 판결문 내용은 다시 음미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인간에게 가장 기초적인 이동권마저 비장애인과의 형평성이나 예산상의 문제 등을 거론하며 그 해결 시기를 늦추려 하는 것은 비장애인들의 편의적인 발상에 불과하다.”저작권자 © 매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