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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이재영 기자]코로나 때문에 관심에서 멀어졌던 도쿄올림픽을 우연찮게 보게 됐다. 이 와중에 스포츠 이벤트라니. 제대로 운영될 것 같지도 않고 선수들은 고생할 것 같고 이래저래 시청이 내키지 않았다. 수년간 훈련해온 선수들이 간절하게 염원했던 무대임을 생각하면 잘못 생각했던 것 같다.
안창림 선수의 유도 경기를 봤다. 아쉽게 결승엔 오르지 못했지만 동메달을 획득한 3・4위전 경기는 짜릿하고 감동적이었다. 해설자가 일본 귀화를 권유받았으나 거절했다는 설명을 들었을 땐 더욱 깊은 여운이 남았다.
어렸을 때는 올림픽 경기를 더욱 열렬하게 시청했었다. 시상식에서 애국가가 울려퍼지고 태극기가 오르는 순간, 잠깐 장래희망이 바뀌기도 했었다. 지금은 국가적인 경쟁보다 스포츠 경기 자체의 흥미에 좀 더 몰두하게 된다.
국가보다는 개인에 더 관심이 생기게 됐다. 경기가 끝나고 눈물을 흘리는 저 선수는 어떤 훈련을 거쳤을까. 진로에 대한 고민도 적지 않았겠지. 앞으로 겪게 될 은퇴에 대한 불안감. 노메달과 연금 등 세속적이지만 선수들과 치열한 스포츠 경쟁의 현실적인 부분에 좀 더 신경이 쓰이게 됐다. 스포츠는 즐기는 게임이라지만 저 짧은 승부처에서 인생이 달라지는 선수들의 운명은 가혹하게 느껴진다.
그러다 안창림 선수의 귀화 거부 얘기는 다시금 국가적인 올림픽의 의미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요즘 선수들은 과거보다 개인사에 치중할 것 같았지만 국가적 사명감도 시들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림픽에서 국익을 들먹이는 것은 이제는 고리타분한 얘기처럼 여겨지지 않을까 싶으면서도 선수들이 오히려 그런 것에 자부심과 의욕을 갖고 있는 것을 보면 시대는 변해도 변하지 않는 가치 같다.
국익을 떠올리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면론을 두고 벌어지는 정치권과 사회적 논쟁으로 생각이 번졌다. 과거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이 원포인트 사면을 받고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활동을 한 사례가 연상됐다. 결과적으로 그 사면은 국익을 가져왔다. 그렇다면 원포인트 사면을 결단한 이명박 전 대통령의 판단은 옳았을까.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것이다. 국익이 우선인 것 같으면서도 법치주의 관점에선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만감이 교차할 듯싶다. 누군가는 용기 있게 한쪽이 우선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그 속엔 정치적인 의도도 섞인다. 이재용 부회장을 두고도 확실히 정치적 색깔이 다른 당파마다 의견이 갈리고 있다.
차기 유력 대선 후보인 이재명 경기지사가 사면에 대한 뚜렷한 견해를 밝힌 점은 용기 있어 보이기도 한다. 이 지사는 사면은 특혜라서 명확하게 반대라고 했고 가석방은 수형자가 누릴 수 있는 제도라며 사회적 지위가 높아도 대상에서 제외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그러나 법치주의 원칙을 고수하려는 관점에서 보면 사면 권한 자체가 모순이다. 대통령의 사면 권한 자체가 이미 예외적인 것이다. 가석방과 사면에 따른 정치적 부담은 다르겠지만 둘 다 법적으로 허용하는 제도다. 기왕 가석방이 허용된다고 인정했다면 사면을 달리 볼 의미가 없다.
대통령이 국익을 위해 결단하고자 한다면 최대한 많은 사회적 합의를 끌어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자면 평창동계올림픽 때처럼 사면에 따른 국익을 얻을 목적도 뚜렷해야 할 듯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