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김정인 기자] 세계 곳곳에서 물가와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코로나 극복을 위한 경기부양책으로 시장에 막대한 유동성이 풀린 상황에서 델타 변이로 인한 공급망 차질이 겹치면서 물가를 끌어올리는 상황. 미국 등에서는 일시적 현상이라는 진단에 따라 통화당국이 통화 긴축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경고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미국내 인플레 경고음 요란
저명한 경제사학자인 나이얼 퍼거슨 스탠퍼드대 교수는 지난 3일(이하 현지시간) 미 CNBC와의 인터뷰에서 “공중보건(코로나) 재앙으로 시작해 재정, 통화, 그리고 어쩌면 인플레이션 재앙을 맞을 수 있다”며 “이 재앙은 그렇게 심각한 재앙은 아니어서 사람을 죽이지는 않지만 이에 따른 인플레이션 상승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퍼거슨 교수는 그러면서 물가 상승이 일시적이라는 연방준비제도(연준)의 판단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일시적이라는 기간은 도대체 어느 정도 기간인가”라며 “1970년대 같은 상황으로 가고 있지는 않지만 1960년대 후반 상황을 반복할 가능성은 높다”고 했다. 미국에서 70년대는 경기침체 속에서 오일쇼크발 인플레이션이 발생한 스태그플레이션 시기로 기억된다. 퍼거슨 교수는 70년대 인플레이션의 뿌리가 60년대 후반에 있었다며 비슷한 상황이 재현될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美 7월 물가 금융위기 이후 최고
앞서 미국은 지난 7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동월 대비 5.4% 상승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집값은 30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급등했다. 하지만 통화당국인 연준은 물가 상승을 일시적 현상으로 보고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에 유보적이다. 경기회복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 3일 미 노동부가 발표한 8월 신규고용 규모는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8월 신규고용 규모는 23만5000명에 불과했다. 시장 기대치의 3분의 1수준에 불과한 규모였다. 하지만 고용부진에도 임금은 전년 동월 대비 4.3%나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임금 인상은 물가 상승 요인이다.
▮유럽도 중남미도 인플레 쇼크
인플레이션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유로존(유로화를 사용하는 19개국)의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3%를 기록하며 2011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독일은 전년 대비 3.9% 상승하며 독일 통일 이후 28년 만에 최고치를 찍으며 ‘인플레이션 쇼크’를 불렀다.
중남미는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FT에 따르면, 브라질은 지난 7월까지 물가 상승률이 8.99%에 달했다. FT는 브라질에 대해 “올해 말까지 5% 이상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물가와 금리가 치솟고 있어 내년 경기 전망은 어둡다”고 전망했다. FT는 다른 중남미 국가들도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공급망 병목에 인플레 장기화 우려
세계적인 물가 상승의 원인은 코로나 사태의 장기화에 있다. 각국마다 코로나 극복을 위해 시중에 막대한 유동성이 풀린 상태에서 델타 변이 확산으로 생산 차질은 물론이고 공급망 병목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특히 글로벌 기업들의 생산 거점인 동남아 지역은 델타 변이로 인한 타격이 심각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미 워싱턴포스트는 “변이 바이러스 확산으로 동남아 공장 폐쇄가 잇따르면서 미국과 유럽으로의 상품 공급이 꽉 막힌 상태”라고 했다.
이와 관련, 국제통화기금(IMF)은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에서 물가 상승을 일시적이라고 보면서도 공급망 병목 현상이 이어지면 내년까지 물가 상승이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