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서방과 중-러 신냉전 시대 조짐…전쟁국 러시아 보이콧 물결
대러 제조업 진출 많은 한국, 경제제재・탈러 운동에 고심
[매일일보 이재영 기자] 탈냉전 세계 질서를 교란한 러시아가 고립되고 있다. 한국은 미국과 서방의 대러 경제제재에 동참하면서도 현대차·삼성·LG 등 현지 제조업 진출이 많아 교류를 단절하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고립된 러시아가 중국을 중심으로 미국을 견제하는 공조 세력을 모을 전망인 가운데 한국이 중립을 취하기 어려운 기로에 섰다.
6일 주요 외신과 업계 등에 따르면 현대차가 러시아 공장을 일시 중단한데 이어 삼성전자가 반도체·스마트폰·전자제품 등의 대러 수출을 잠정 보류한 상태다. 대러 경제제재상의 전략물자에 대한 수출 통제에다 러시아 루블화가 폭락하는 등 무역환경이 악화된데 따른 조치로 풀이된다. 양사는 이같은 사업차질이 러시아에서 철수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긋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정학적 상황으로 러시아행 선적이 중단됐다며 복잡한 상황을 면밀히 파악해 다음 단계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애플·셸·BP·GM 등 글로벌 기업들이 잇따라 러시아 사업을 중단하며 세계적으로 러시아 보이콧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우크라이나 부총리가 삼성전자에 사업 중단을 요청하는 서한을 보내는 등 국내 기업의 다음 행보에도 시선이 쏠린다. 한국은 그러나 러시아에 진출하거나 경제협력 중인 국내 민간기업 상당수가 상대적으로 큰 규모의 고정 투자를 수반하는 제조업에 편중돼 있어 투자를 철회하거나 협력을 중단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협력 경험이 중시되는 러시아 시장에서 한국이 장기간 구축한 협력 기반을 포기하기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미국과 서방이 자국 기업까지 피해가 미치는 스위프트 제재 등을 감수하면서 러시아와 갈등이 고조된 가운데 한국도 새로운 냉전 구도에 휩쓸릴 가능성이 커졌다. 러시아는 특히 경제제재의 탈출구를 마련하기 위해 중국·북한 등 동방과의 유착관계를 강화해 나갈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 대중 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으로서는 신냉전 구도에 따른 경제협력 위축, 불확실성 증대 등 직·간접적 영향권에 놓일 전망이다.
앞서 유엔 총회에서는 러시아 철군 결의안에 회원국 141개의 압도적인 찬성표가 모였다. 이처럼 러시아가 국제사회에서 점점 고립되는 양상으로,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한국도 러시아와의 경제협력을 줄여나갈 수밖에 없다. 러시아는 한국의 경제제재 동참에 대해 유감을 표하며 에너지, 물류 등 남북러 3각 협력사업이 저해될 것이라고 경고해 한-러 관계에 이미 냉기류가 돌고 있다.
한편, 한국의 대러 교역액은 전체 교역액 중 비중이 크지 않지만 현대차·삼성전자·LG전자 등 개별기업과 관련 중소기업 협력사들은 교역이 단절될 경우 피해가 상이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우크라 사태 피해기업에 대한 정책차원의 선별적 지원책이 필요하다며 장기적으로는 러시아산 원자재 수입 등이 위축될 가능성에 따라 수급다변화 대책에 힘써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