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당 싸운 매초성, 유력한 대전리산성은 신라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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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당 싸운 매초성, 유력한 대전리산성은 신라축조
  • 김수홍 기자
  • 승인 2013.09.09 11: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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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연구원 1차 발굴조사, 나당전쟁기에 사용한 듯

[매일일보 김수홍 기자] "(문무왕) 13년(675) 9월29일 당나라 장수 이근행이 군사 20만 명을 거느리고 매초성에 주둔하자 우리 군사가 공격해 쫓아버리고 전마(戰馬) 3만380필을 얻었으며 그 밖에 노획한 병기도 이만큼 됐다."
 

삼국사기 문무왕 본기가 기록한 이 매초 성 전투를 통해 신라는 한반도 직접 통치를 꾀하던 당나라의 야욕을 분쇄하고, 이른바 본격적인 통일신라시대를 열었다.

 

이런 역사적 중요성을 지닌 매초성의 유력한 후보지 중 한 곳인 경기 연천군 대전리 산성(大田里山城)에 대한 첫 발굴조사가 실시됐다.
 

경기문화재단 부설 경기문화재연구원은 이곳에 대한 올해 1차 조사 결과 "전체 성벽 681m 구간 중 남쪽과 남서쪽 성벽 15m 구간만 발굴한 한계는 있지만 현재까지의 고고학적 자료로 볼 때 축조 주체는 고구려, 백제, 신라 중 에서도 일단 신라로 추정 한다."고 말했다.
 

이번 조사 결과 성벽 몸체는 중심 성벽을 중심으로 바깥쪽 성벽에 다시 덧대어 쌓은 것으로 드러났다.
외 성벽은 대체로 장방형으로 다듬은 편마암 계통 돌을 이용해 한자의 '品(품)'자 모양으로 정연하게 쌓았다.
 

바닥에서부터 높이가 최대 13m에 달하는 구간도 발견됐다.
 

조사단은 "이런 성벽 몸체 축성기법으로 미루어 대전리 산성을 처음 만든 시기와 주체는 삼국시대 후기 신라로 판단된다."면서 "이는 이 산성이 나당 전쟁 기에 이용되었을 가능성을 뒷받침 한다"고 평가했다.

이번 발굴에서는 당나라 군대의 주둔 여부를 증명하는 고고학적 증거는 확보하지 못했다.
연구원은 향후 성벽과 성 내부 건물터에 대한 발굴조사가 진행되면 대전리산성에 대한 많은 정보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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