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조어의 평균 수명은 짧다. 대개 몇 달, 길어도 1년이다. 그런데 문송합니다(문과라 죄송합니다), 인구론(인문계 90%가 논다) 같은 단어는 10년째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문송합니다’는 졸업 후에 공무원 시험을 오랜 기간 준비하는 ‘공시생’이라는 단어로 재탄생한다. 이미 시작된 4차 산업혁명의 바람 속에 ‘문송합니다’는 더욱 자주, 오랜 기간 사용 될 것이다.
그런데도 왜 학생들은 고등학교 때 문과를 택할까. 대학 입시 전쟁터 한 가운데서 과연 인생 마스터플랜을 짜는 학생은 몇이나 될까. 대학 입시전쟁을 치른 사람은 누구나 알 거다. 우리나라 입시는 학생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유치원 때는 조기 영어교육을, 초등학교 때는 중학교 혹은 고등학교 수학까지 선행학습을 시키고, 본격적으로 입시 전선에 뛰어들면 아침 7시에 학교에 가 자정쯤 학원에서 돌아온다. 수면 시간은 6시간도 채 되지 않고, 교양서적은커녕 교과서·문제집 읽고 풀기에 바쁘다. 경주마같이 눈가리개를 씌우고 명문대 또는 인서울 골인을 향해 앞만 보고 달리게 하는 현실에서 대학 이후 삶을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현장에 계신 선생님들도 바쁘기는 마찬가지이다. 상담사 역할을 해줘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너무 어려운 일이다. 일선 고교 선생님들을 보면 수업과 행정 업무 외의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 그래서 학생 진로 상담은 보통 학기 초와 말에 도합 두 번 정도 진행하고, 상담 내용은 학생 진로나 미래가 아닌 내신과 수능 성적 중심이다.
그럼 문과를 선택한 학생은 놀아서 ‘문송합니다’가 된 걸까. 토익 900점은 기본이고 토플 점수 110점 보유한 사람 주변에 꽤 있다. 셀 수 없는 공모전, 인턴, 알바까지 하느라 밤잠을 줄이며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문과라고 고등학교 3년, 대학 4년 도합 7년을 술 마시고 놀다가 갑자기 취업이 어렵다고 신세 한탄하는 건 아니다.
먼저, 어문·역사·철학 등 문과계열 정원에 혹독할 정도로 메스를 대야 한다. 소위 문·사·철을 전공한 박사학위 소지자 중 37%가량이 한 해 2000만원의 수입도 얻지 못한다. 대졸자도 4년간 3000만원에 달하는 등록금을 내고 졸업 후 취업을 위해 사교육 업체에 또 돈을 낸다.
일본은 2015년부터 정부가 “대학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전략적으로 집중 육성해야 한다”며 전국 국립대학 문과 계열에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실행했다. 다수 국립대는 문과 학부생 모집 규모를 큰 폭으로 줄였다.
청년들의 고통은 국가적 비극이기도 하다. 지역 방송국의 뉴스를 보면 학생 수 급감으로 지역 대학이 폐교 위기로 대책이 필요하다는 뉴스, 토론 프로를 많이 볼 수 있다. 지역 대학을 선택 한 학생, 그리고 학생의 진로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는 제발 학생 한명 한명을 보자. 그리고 학생을 위한 제도와 교육을 하자. 우리 학생들은 봉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