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살갗을 스치는 감미로운 바람과 따스한 햇살, 연두빛 향연이 물결치는 산야, 푸르른 하늘은 가히 여왕의 품격에 걸맞은 아름다운 달 5월은 ‘계절의 여왕’이자 가정의 중요성을 되새기고 그 소중함에 대한 깨달음을 실천하는 달 5월은 ‘가정의 달’이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 이면에 여전히 전국적으로 전세사기 피해를 당한 이들의 죽음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5월 1일에는 대구에서 한 30대 전세사기 피해자가 유서를 남기고 사망한 상태로 발견됐다. 그가 남긴 유서에는 ‘괴롭고 힘들어 더 이상 살 수가 없겠어요’,‘빚으로만 살아갈 자신이 없습니다. 저는 국민도 사람도 아닙니까? 너무 억울하고 비참합니다’, ‘힘없으면 죽어 나가야만 하나요?’, ‘저도 잘 살고 싶었습니다’, ‘지금이라도 더 이상 피해가 없어야 합니다’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전세사기로 세상을 등진 여덟 번째 피해자의 가슴 저민 마지막 절규다. 얼마나 세상이 원망스러웠을지 슬프고 안타까울 뿐이다. 전국의 다가구 주택을 중심으로 전세사기가 광범위하게 발생한 지난해 2월 이후 벌써 여덟 번째 죽음이다. 대구 남부경찰서는 지난 5월 7일 38세 여성이 지난 5월 1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 밝혔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 대구대책위원회와 전세사기 대구 피해자모임도 지난 5월 7일 “지난 1일 대구 전세사기 피해자 한 분이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 두 단체는 보도자료를 내고 이 일을 알린 뒤 “고인은 2019년 전세금 8,400만 원에 입주해 임차보증금 채권 순위가 근저당 설정권자보다 후순위인데다, 소액임차보증금 최우선 변제 대상도 되지 못해 8,400만 원의 보증금을 한푼도 돌려받지 못할 위기 상황에 놓여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세 들어 살던 집에 대한 경매 절차가 개시될 때까지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전세사기피해자법)이 정하고 있는 ‘피해자’ 인정조차 받지 못했다. 피해자 인정 통보는 그가 숨진 날 오후에야 왔다고 한다. 38살 젊은이는 피해를 줄여보려고 발버둥 치다 끝내 세상을 등졌다. 대규모 전세사기 피해가 세상에 드러난 이후, 이런 일이 일어난 게 벌써 여덟 번째라니 참으로 개탄스럽고 분노마저 치민다. 우선매수권 부여, 경·공매 유예, 금융·법률 지원 등을 담은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돼 지난해 6월 1일 제정되어 다음달인 지난해 7월 2일부터 시행되고 있지만, 고인 같은 처지의 피해자들에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렇게 보증금을 한푼도 돌려받지 못할 처지의 사람들이 아직도 적지 않다. 거주 지역 최우선 변제권 대상 보증금 기준을 넘겨 전세 계약을 했고, 주택을 경매해도 경락값을 선순위 채권자가 다 가져가는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다. 다가주주택에 전세 입주했다 사기를 당한 이들 가운데 이런 피해자가 특히 많은데, 이들은 ‘사기 피해자’로 인정받기조차 쉽지 않다. 전세사기는 사회적 참사에 비견될 만큼 악질적인 범죄일뿐만 아니라 ‘경제적 살인’이나 다를 바 없다. 단순히 전세보증금만 빼앗는 게 아니라 사회 초년생과 청년들의 삶은 물론 미래까지 송두리째 박탈하고 있어서다. 게다가 수사기관이 범죄단체조직죄를 적용할 정도로 조직적으로 치밀하게 이뤄졌고, 피해 규모도 엄청나다. 주택·금융제도의 허점을 교묘하고 교활하게 파고들고 있고, 정부의 감독 부실 책임도 적지 않다. 직업 윤리를 팽개치고 사기꾼과 공모한 공인중개사들을 방치해 왔고, 임대사업자의 보증보험 가입 여부도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 금융당국은 전세대출 관리에 소홀했고, 전세보증 사고가 급증하는데도 사전에 경종을 울리지 못했다. 그 결과 서울·인천·부산·대구 등 전국적으로 수만 명이 전 재산을 날리고, 심지어 일부는 목숨까지 잃었다. 무엇보다도 전세거래는 사인간 자유의사의 거래이기에 국가가 나서서 개입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전세는 정부가 대출을 지원하고, 보증을 한다는 측면에서 정부의 시스템이라고 보고 정부가 전세사기범만은 발본색원하고 처벌 양형도 강화해야만 한다.저작권자 © 매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