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강남 마지막 판자촌 ‘구룡마을’ 공영개발 추진 논란
[매일일보=송병승기자] 서울시 강남구 개포2동 567번지 일대. 소위 말하는 강남의 노른자위 땅. 왕복 8차선의 양재대로가 지나는 바로 옆. 대한민국 최고층 건물인 타워팰리스를 비롯해 대규모 고층 아파트단지들이 드높은 위용을 드러내는 곳.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형성된 판자촌. 여름이면 항상 수해를 입을까 노심초사 하는 마을. 대부분의 주민들이 일용직으로 근근이 하루를 버텨가는 곳. 20여년 동안 주민등록상 주소도 가질 수 없었던 ‘유령마을’. 바로 ‘구룡마을’의 두 모습이다. 서울의 대표적 판자촌으로 잘 알려진 ‘구룡마을’에 대한 공영개발이 최근 결정됐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낙후된 마을 개발에 대한 환영과 함께, 그나마 살던 터전마저 빼앗기고 쫓겨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동시에 번져 나오고 있다.마을 생기고 20년 만에 겨우 얻은 진짜 주소지…‘위장전입’ 설움 떨쳤지만
주민등록상 등재 시기, 공영개발 시기와 맞물리면서 의심의 목소리도 나와
“주민등록 등재 고맙죠~”
구룡마을 사람들은 스스로 집을 짓고 전기와 수도를 연결해 공동으로 전기세와 수도세를 걷어 생활해왔다. 하지만 이 마을은 얼마 전까지도 주소 없는 ‘유령마을’이었다. 강남구청에서는 버젓이 사람이 살고 있는 구룡마을을 주민등록상 등재하지 않았다.주민들은 20여년 동안 친척, 혹은 지인들의 주소지에 위장전입을 해놓은 상태로 살아왔다. 그로인해 구룡마을 주민들은 주소지와 실제 거주지가 다르다는 이유로 벌금을 물어야 했고 학생들은 위장전입된 주소지로 전학을 일삼아야 했다. 다행히 지난 5월2일부터 강남구청에서 구룡마을을 주민등록상 등재하기로 결정하면서 구룡마을 주민들은 20여년 만에 주민등록상 주소지를 얻을 수 있게 됐다. 마을 중심부에 위치한 슈퍼 앞에는 노인 몇이 모여 있었다. 백발이 무성한 할머니에게 “이곳에서 얼마나 사셨나요?”라고 묻자 “오십에 들어와 내 나이가 칠십이 넘었으니 20년 넘게 살았지요”라는 답이 돌아온다. 다른 한 분은 모여 있던 노인들 틈에선 아직 젊은 나이 축에 속해 보였다. 하지만 그의 나이도 벌써 60세. 노인은 얼마 전 교통사고를 당해 지팡이를 짚고서야 조금씩 거동을 옮길 수 있다. “재개발이요? 그런 거 잘 몰라요 우린. 못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사는데 그거 되는지 안 되는지 잘 모르지요. 그나마 요즘엔 주민등록증에 주소 등재 해준다고 하니까 그거라도 그냥 고마울 따름이지요”황혼의 시절을 구룡마을에서 보낸 노인의 느릿한 걸음만큼 구룡마을 역시 개발의 틈 속에서 느릿한 변화를 보여왔다. 노인의 짐을 들어주고 함께 그의 집으로 향하는 길 곳곳에는 주민등록증 주소 등재에 관련된 내용의 게시물과 투기꾼들로부터 구룡마을을 지켜내자는 강남구청장 명의의 대자보가 붙어 있다. 세 가족과 함께 살던 노인은 2년 전 집이 마을 위쪽으로 옮겨지면서 현재는 혼자 살고 있다. 남편은 친구의 집에, 자식들도 따로 나가 살고 있는 상황. 6평 남짓한 노인의 집 중 주방을 제외하면 겨우 세 사람이 몸을 누일 수 있는 공간뿐이다. “이 좁은 집에서 네 식구가 어떻게 살 수 있겠어요. 가족이 그나마 같이라도 살면 좋을 텐데 그럴 상황도 못되니 다 따로 살고 있는 거지요”20년간 안 해주더니…“왜?”
서울시 “논란 많던 민영개발 대신 공영개발”
자치회 “공영개발, 원주민 아니라 서울시와 SH공사 배만 불릴 것”
서울시가 ‘구룡마을’ 정비방안을 확정 발표한 것은 지난 4월28일. 강남구청의 주민등록 등재가 시작되기 나흘 전의 일이다. “20년 이상 방치되어 있던 강남구 개포2동 567번지 일대 구룡마을이 쾌적한 주거단지로 탈바꿈한다. 25만2777㎡에 총 2793세대(임대 1250세대 분양 1543세대)의 주택과 학교, 문화·복지노인시설, 공공청사, 도로, 공원·녹지 등을 조성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서울시는 이번 구룡마을 개발을 공영개발로 시행하면서 “그간 논란이 많았던 민영개발에 대해서는 개발이익 사유화에 따른 특혜논란, 사업부진시 현지 거주민들의 주거대책 미비로 사회적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고 본다”며 “공정한 공공관리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서울시 SH공사 주도의 공영개발로 도시개발 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전체 주민 10% 안 되는 기초생활수급자 빼면 대부분 공공임대 살 텐데
하루하루 일용직으로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이 6천만원 마련할 수 있겠나”
책임 미루는 책임기관들
한편 구룡마을 원주민들은 서울시가 발표한 공영개발 확정안에 대해서 현재 이렇다 할 정보를 얻지 못하고 있다. 주민자치회는 심지어 서울시나 강남구청으로부터 공영개발에 관한 일체의 말도 들은 바 없고 모두 방송이나 신문의 보도를 통해 알게 되었다고 한다. 주민들 중 일부는 공영개발이 결정됐다는 사실에 대해 모르고 있거나 혹은 알고 있어도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와 관련 구룡마을 개발사업 담당기관인 서울시와 SH공사는 “아직은 제반 사항에 대해 일체 결정된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서울시는 구룡마을에 들어서게 될 공영주택의 영구·공공임대 입주에 대해 “영구·공공임대로 입주할 대상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고, 아마도 영구임대 입주 대상은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것”이라면서 “세부 사항과 결정권은 SH공사에 있으니 그쪽에 문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SH공사는 “아직 정해진 것은 아무 것도 없는 상황이고 구룡마을 개발 담당자 역시 배정받지 않은 상황으로, 서울시와 협의를 통해서 결정할 것”이라며, “공공임대로 입주하는 사람들의 입주금은 임대주택법에 준해서 결정할 예정인데, 예외는 없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저작권자 © 매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