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 거부 운동에도 학벌 요구하는 도돌이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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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 거부 운동에도 학벌 요구하는 도돌이표 세상”
  • 변주리 기자
  • 승인 2011.11.04 13: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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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투명가방끈들의 모임’ 난다&둠코 “내 삶의 주인은 나! 꿈이 없는 대학을 거부한다”
[매일일보=변주리 기자] ‘대학가의 낭만’은 아득한 먼 옛날의 이야기이다.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에게 이제 대학은 ‘빚을 지게 만드는’ ‘나를 지치게 만드는’ ‘사회에 의해 강요되는’ ‘경쟁을 강요하는’ ‘학문이 설 자리를 잃은’ ‘꿈이 없는’ 곳이 됐다. 201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11월10일 열리는 가운데 ‘대학입시거부로 세상을 바꾸는 투명가방끈들의 모임’이 1일 청계광장에서 대학거부선언 발표 기자회견을 갖고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대학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적어 넣은 ‘나는 OO 대학을 거부합니다’라는 피켓을 들고 기자회견과 1인 시위를 이어가는 이 아이들의 목표는 “서열화된 세상을 바꾸겠다”는 것이지만 이들이 사회를 향해 목소리를 높이면서 처음 맞닥뜨린 것은 “학벌을 거부하는 일에도 학벌이 필요한 것 같다”는 것이었다. <매일일보>은 이번 운동을 벌이고 있는 난다(21·비진학)와 둠코(19·비진학 예정)를 지난 4일 서울역에서 만나 “우리가 문제인지 아니면 세상이 문제인지 묻고 싶었다”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지난 4일 서울역에서 만난 ‘대학입시거부로 세상을 바꾸는 투명가방끈들의 모임’의 난다(왼쪽)와 둠코.

“성공이 전문직을 갖거나 대기업에 입사하는 거라면
그냥 쿨하게 ‘난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겠다”

“우리의 목적은 ‘이대로 괜찮은 것인가’ 질문을 던지는 것”

“사람들이 ‘나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 갖게 하고 싶다”


다음은 인터뷰 일문일답

- 1993년생 5명이 대학거부선언을 처음으로 제안해 ‘투명가방끈들의 모임’이 발족한 것으로 알고 있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난다 : 투명가방끈들의 모임에 참여해 활동하는 이들 대부분은 이전부터 각기 나름의 청소년 인권 문제를 다루는 모임에 참여하고 있었다.

둠코와 나는 ‘아소다로’라는 모임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이 모임에는 유난히 1993년생이 많았다. 이 친구들 대부분이 대학에 가지 않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이들의 제안으로 결국 일을 저지르게(?) 됐다.

“실제 이름이 왜 중요하죠?”

- 모임의 구성원들 대부분이 닉네임을 사용하고 있다. 실명을 밝히지 않는 이유가 있나.

▲난다 : 일부러 이름을 숨기려고 닉네임을 쓰는 것은 아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아소다로’와 같이 그동안 참여했던 여러 모임에선 서로 닉네임을 불렀다.

그것이 오래되다 보니 부모님과 예전에 알던 친구들 이외에 주변의 모든 지인들은 나를 난다라고 부른다. 난다는 나의 또 다른 이름이다. 닉네임을 쓰는 다른 친구들도 대부분 이런 케이스다. 두 번째는 내 이름은 내가 짓겠다는 의미가 있다. 부모님이 지어 준 이름은 나를 온전히 표현하지 못한다. 나는 ‘신난다’라는 의미에서 내 닉네임을 난다라고 지었다. (둠코는 ‘어둠의 자식’이라는 뜻으로 친구들이 지어줬다고 함)

이번에 대학입시 거부운동을 하면서 많은 기자들이 자꾸 실명을 물어왔다. 실제 이름이 왜 중요한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 난다(21·비진학)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는 입학 첫날부터 야간 자율학습을 시켰다. 나는 아직도 그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느 순간 학교를 다니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졌다.”
- 대학 입시를 이미 거부했거나 거부를 앞두고 있다. 각자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 같다.

▲난다 : 고등학교를 중간에 관뒀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느끼는 학교에 대한 답답함이 나에게는 남들보다 더 크게 다가왔던 것 같다.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는 입학 첫날부터 야간 자율학습을 시켰다. 나는 아직도 그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느 순간 학교를 다니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졌다.

자퇴 후 처음 몇 달간은 검정고시를 봐서 대학에 가려고 공부를 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공부를 하는 게 정말 내가 원해서 하는 것인지 이 사회에서 대학을 강요하기 때문인지에 대한 질문이 계속해서 머릿속에 떠올랐고, 스스로 이유를 설명하려 해도 설득이 되지 않았다.

▲둠코 : 나 역시 고등학교를 6개월 다니다가 관뒀다. 하기 싫은 것은 안하는 성격일 뿐 별 생각이 없었다.

학교 도서관보다 내가 사는 곳에 있는 도서관에 책들이 더욱 많았고,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학교생활처럼 규칙적인 생활을 하지 못해 죄책감에 시달리던 시기도 있었지만 언젠가부터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대학에 가면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필수과목이 늘어 ‘대학은 고등학교의 연장’이라는 말을 들었다.

주변에 고등학교를 다니는 친구들만 봐도 벌써부터 대학에 가서 어떤 고시를 볼지, 어디에 취직할지 미리 계획을 짜놓고 공부한다. 대학에 가서도 이런 공부를 해야 한다면 안 가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김여진씨 ‘꿈’ 트윗 기뻤다”

- 본격적인 대외활동을 한 것이 지난 10월10일 청계광장에서 진행한 ‘대학입시거부 1인 시위’다. 같은 달 말에는 할로윈 행진을, 1일에는 기자회견을 했는데 주변 반응은 어땠나.

▲둠코 : 인터넷 반응은 뻔했다. ‘너무 부정적인 것 아니냐’ ‘대안을 내놔라’ 라는 등이다.

그러던 중 배우 김여진씨가 트위터를 통해 “전국의 고3들이 대학입시를 거부하는 걸 보는 건 내 여러 꿈 중의 하나”라는 글을 게재한 것을 봤다. “우리 편이 생겼다”는 생각에 기뻤다.

- 부모님을 설득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다.

▲난다 : 초반에 갈등이 있었다. 부모님은 “조금만 더 참아봐라” 했지만, 참을 수 없었다.

계속해서 부모님을 설득했고, 결국 “하고 싶은 공부를 하라”는 허락을 받아냈다. 그래도 여전히 부모님은 “너 앞으로 뭐할래”라는 말씀을 가끔 하곤 하신다.

▲둠코 : 처음 고등학교를 그만 둘 당시 검정고시를 보든 뭘 하든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지겠다고 약속했다.

부모님은 어쨌든 내가 대학에는 가는 것으로 생각하셨던 것 같다.

하지만 최근 대학거부 선언을 하면서 부모님께 대학이 가진 문제에 대해 지칠 때까지 설득을 했고, 부모님은 교육 쪽으로는 최대한 지원해 준다고 하셨다.

- 일각에선 대학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성적이 되지 않아 못가는 것에 대한 핑계가 아니냐는 비판적 시각도 있다.

▲난다 : 그런 질문을 받으면 “공부를 잘했지만 생각이 깊어서 대학을 안 간 것”이라고 말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우리가 계속 이야기해야 할 몫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성적이나 등급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데 그런 질문에는 이미 성적이나 등급이 중요한 척도로 자리 잡고 있다. 똑같은 프레임 안에서 계속 맴돌고 있는 것이다.지난 1일 기자회견을 한 후 어느 매체는 ‘서울대 자퇴생 따라 줄줄이 대학 자퇴’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제목만 보고도 질려서 기사를 읽어 보지도 않았다.우리가 대학을 거부하겠다고 하니 “너는 성적이 안 좋으니까 못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고려대생인 김예슬씨가 자퇴를 했을 때도 사회적으로 크게 논란이 된 것을 두고 사람들은 결국 명문대생이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니냐는 비판을 했다. 어느 쪽이든 비판을 받는 것은 마찬가지다.▲둠코 : 지난 1일, 20대 대학입시 거부 기자회견 당시 기자들이 개인적으로 인터뷰 요청을 하는데 서울대 자퇴생에게 몰려들었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우리끼리 그런 얘기를 했다. 1순위는 서울대 자퇴생, 2순위는 다른 대학 자퇴생이고, 나머지 3순위가 비진학생이었다고. 학벌사회를 거부하는 것도 학벌이라는 게 영향을 미치는구나 생각했다.

- 김예슬씨가 고려대 학생이어서 사회적 파장이 크게 일었던 반면, ‘투명끈들의 모임’에는 이미 비진학자이거나 앞으로 진학을 거부하려는 친구들이 많다는 이유로 이번 ‘대학 입시 거부 운동’이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할 수도 있겠다.

▲난다 : 사실 이번 대학 입시 거부 운동의 시초는 지난 2004년에 광주에서 수능 거부 1인 시위를 한 박고형준 군이다. 이후부터 매년 1인 거부 운동이 있었고, 학생인권조례 운동 등 여러 번 기자회견을 해왔다.

하지만 이전까지는 기자회견장에 우리가 가져간 카메라가 전부였을 정도로 당시에는 아무도 우리를 주목하지 않는데 1일 기자회견을 할 때 여러 언론사에서 찾아온 것을 보고 오히려 우리가 놀랐다.

많은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우리가 바꾸고 싶은 것에 대해 한 순간에 큰 변화를 바라기 보다는 차근차근 스텝을 밟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둠코 : 두려운 것은 사람들이 면역성이 강하다는 점이다.

우리 모임에 활동 중인 서울대 자퇴생 ‘공현’(필명)군에 대해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가졌듯 이번에도 개개인이 부각되고 있는데, 눈길을 끄는 소재가 떨어지면 관심도 떨어질까 두렵다.

▲ 둠코(19·비진학 예정) “기자회견을 마치고 우리끼리 그런 얘기를 했다. 1순위는 서울대 자퇴생, 2순위는 다른 대학 자퇴생이고, 나머지 3순위가 비진학생이었다고. 학벌사회를 거부하는 것도 학벌이라는 게 영향을 미치는구나 생각했다.”
“나에게 성공은 행복하게 사는 것”

- 대학을 거부하겠다는 움직임에 대해 “대학에 가지 않고도 성공한다면 인정해주겠다”는 반응도 있다.

▲둠코 : 성공의 기준이 전문직을 갖거나 대기업에 입사하는 것이라면 그냥 쿨하게 나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겠다.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인지 다시 한 번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나에게 성공이란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 대학을 안가고 싶으면 개인적으로 조용히 안가면 된다는 비판은 어떻게 생각하나?

▲난다 : 처음부터 세상에 알리고자 한 목적은 단 한가지였다. “이대로 괜찮은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사람들에게 던지는 것이다. 

조용히 대학을 가지 않으면 사람들은 우리에게 문제가 있다고 보면 우리를 낙오자 혹은 루저로 만들어 버린다. 하지만 우리가 문제인지 아니면 세상이 문제인 것인지 묻고 싶었고, 우리가 잘못하는 게 아니라 세상이 우리에게 잘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둠코 :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목소리를 같이 내야 그나마 세상 사람들이 우리의 얘기에 귀를 기울여 준다. 함께 하지 않으면 대책이 없다.

- 대학에 가지 않아서 가장 좋은 점과 가장 아쉬운 점은?

▲난다 : 좋은 점이라기보다 다른 친구들은 공부에 쫓겨 힘들어 보일 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위안이다.

이런 저런 모임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고 관계를 맺는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 만약 대학을 갔다면 이런 생활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아쉬운 점이라면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정책들 때문에 불편하다는 점이다. 대학생 할인이라는 게 있는데 우리는 적용을 받지 못하고 있다.얼마 전에는 92년생 친구가 편의점에 술을 사러 갔다가 학생증이 없어서 사지 못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92년생이어도 고등학교를 다니면 술을 못 사게 돼있는데 고등학생이 아니라는 증거로 재학 중인 대학의 학생증을 달라는 것이었다.

- ‘대학 입시 거부’ 운동에 대해 여러 가지 반응들이 나오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운동이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를 원하나.

▲둠코 : 사람들은 우리가 유토피아를 꿈꾸고 있으며 우리의 주장에 현실성이 없다고 얘기한다. 우리가 바라는 교육과 대학, 그리고 사회의 변화가 사람들에게 좀 더 가벼운 소재로 다가갔으면 한다.

▲난다 : 우리의 행동을 보고 사람들이 마음속에서만 바라던 것을 말과 행동으로 내뱉을 수 있는 일종의 기폭제가 됐으면 한다.

‘저런 사람이 저런 걸 하네. 나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만드는 것이 우리가 하는 운동의 목적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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