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의 풍경이 세월의 흐름과 함께 바뀌어가고 있다. 정성들여 차례를 지내고, 가족끼리 성묘에 나서던 모습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 가족과 함께 옹기종기 모여 못 다한 이야기를 하는 모습도, 친척들과 함께 윷놀이를 하던 모습도 시간이 지날수록 목격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이처럼 전통적인 문화를 강조하는 한국사회에서 조상보다는 가족이나 개인을 중요시하는 새로운 명절 풍속이 나타나고 있다. ◇간소화된 차례의식 차례를 지내지 않고, 가족끼리 여행을 떠나 연휴를 즐기는 가정이 크게 늘어나고 일부에서는 아예 '퓨전식 차례'를 지내는 등 전통적인 명절 의식에서 탈피하고 있다. 회사원 이정석씨(52)는 이번 설 연휴에는 제사를 지내지 않고 가족과 함께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이씨의 아들이 오는 4월 군에 입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설 연휴동안 가족과 즐거운 추억을 만들기 위해 제주도로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 것. 이씨는 "아들을 한동안 볼 수 없어 가족끼리 연휴동안 여행을 가자는 아내의 말에 여행을 가기로 결정했다"며 "모처럼 떠나는 가족 여행인 만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설 연휴 동안 가족과 여행을 떠나기 위해 이미 일주일 전에 성묘도 다녀오고 집안 어른들께 인사도 다녀왔다"며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지 못하는 마음은 불편하지만 이번 만큼은 조상 보다는 가족을 챙길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연휴동안 가족과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차례 상 격식을 파괴하는 가정도 늘고 있다. 조상에게 잘 차려진 음식을 대접해야하는 것이 미덕이라 잘 먹지 않는 탕과 산적 등을 준비하는 가정이 많았다. 그러나 최근 이같은 현상이 변화하고 있다. 생전에 부모님이 특별히 좋아했던 음식을 올려놓거나 아이들이 즐겨 먹는 잡채, 갈비찜 등 양보다는 실용적으로 음식을 준비하는 가정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 이지은 주부(39)는 "가족들이 잘 먹지 않는 음식까지 무리하게 마련할 필요는 없다"면서 "조상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가족들이 잘 먹는 음식만 만들어 제사를 지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꽉 막힌 고속도로 싫어…서울로 역 귀경
설이 되면 고향에 가족, 친지들을 만날 생각에 입가에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그러나 고속도로에 쏟아진 차량으로 고향 가는 길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평소 같으면 쉽게 갈수 있었던 고향 길이지만 명절 연휴를 이용해 떠나는 고향 가는 길은 꽉 막힌 고속도로에 갇혀 몸은 옴쌀 달싹 못한다. 이런 불편한 마음 때문일까 최근 서울로 올라오는 역 귀경 현상이 비일비재 일어나고 있다. 부산에 살고 있는 김기평씨(55)는 최근 새로 장만한 승용차를 몰고 서울에 살고 있는 아들집 집으로 올라갈 생각이다. 평소 명절 때만 되면 며느리와 손자를 대리고 7시간이 넘는 귀향 전쟁으로 고생이 많은 아들을 생각하면 언제나 마음은 무거웠다. 김씨는 "조상에게 성묘도 못하고, 제사를 지내는 장소도 변해 많이 망설이기도 했지만 최근 서울로 올라간다는 역 귀경 현상이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어 과감하게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또 "아들내외가 명절 때마다 하던 고생을 이번 설에 하지 않아서 편안한 마음으로 서울로 올라갈 예정이다"라고 덧붙였다. ◇황금연휴는 해외에서… 이번 설 연휴는 6일부터 10일까지 5일간 이어지는 소위 '골든 홀리데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다. 이런 황금연휴 기간에 친지들을 만나는 것도 좋지만 해외로 여행을 떠나 지친 몸과 마음을 풀려는 사람들도 많다. 5일 인천국제공항공사에 따르면 설 연휴가 시작되는 6일부터 10일까지 국제선을 타고 우리나라를 떠날 여행객은 20만8551명인 것으로 추정됐다. 설 연휴에는 하루 평균 4만1710명이 해외로 떠나고, 4만2796명이 입국하는 할 것으로 보이며 설 연휴 기간 항공기 운항횟수는 국제선 출발편이 총 1252회, 국제선 도착편은 총 1245회로 각각 집계됐다. 회사원 류모씨(30)는 이번 설 연휴 때 제사를 지내지 않고 과감히 해외로 여행을 떠날 예정이다. 5일간 이어질 연휴에 연차까지 사용해 총 7일간의 '골든 홀리데이'를 얻게 됐다. 류씨는 "해외여행을 가기위해 1년 전부터 월급의 일부분을 조심씩 저축을 해왔다"며 "7일간의 연휴 기간을 이용해 대학원에 다니는 친구들과 함께 유럽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올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설 때 집안 어른들께 인사를 드리지 못해 마음에 걸리지만 좀처럼 찾아오는 기회가 아닌 만큼 어른들께 양해를 구하고 여행을 다녀올 예정"이라고 웃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