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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관계자들에게 “왜 수제맥주는 종량세를 주장하나요? 고급수입맥주의 세금이 낮아져 수제맥주업체에게 유리하진 않은 것 같은데…” 라는 말을 가끔 듣는다. 업계에선 종량세에 대한 두려움도 함께 존재하며 종량세가 국내맥주가 처한 어려움을 모두 해결해 줄 것처럼 보도가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그럼에도 수제맥주업계는 왜 종량세를 강력히 주장하는가?
우선 종가세의 모순적인 측면을 살펴보자. 종가세는 맥주를 제조하기 위해 투입되는 비용에 세금을 부과하므로, 제조업체 입장에서는 더 좋은 맥주를 만들기 위해 좋은 원료와 설비, 숙련된 인력을 투입할수록 세금이 높아진다. 대량생산 할수록 제조원가가 낮아지는 규모의 경제가 달성되므로, 다품종 소량생산보다는 한두 가지 제품을 대량생산해야 세금이 낮아지게 된다. 즉, 종가세는 좋은 재료를 사용하여 소비자 취향을 만족시키는 다양한 맥주를 생산하는 것보다, 제조비용을 낮추고 대규모로 찍어 낸 맥주의 생산을 유인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제도 하에서 국내맥주산업의 발전이 정체되고, 최근 국산 맥주 대신 수입맥주를 찾는 소비자가 늘어나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 수 있을 것이다.
2002년 월드컵 열기와 함께 도입된 국내수제맥주는 2014년 외부유통이 허용되는 등 정부의 규제개혁 노력과 함께 큰 성장을 해왔다. 하지만 “다품종 소량생산”이라는 가치를 가진 수제맥주시장은 종가세로 인해 발목 잡힌 성장만을 반복하였다. 이런 한계는 최근 경기 침체로 인한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으로 국내수제맥주의 기반인 생맥주 판매가 정체되면서 더욱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국내수제맥주도 주52시간 근무제의 시행에 따른 음주문화 변화로 소매점 시장(마트·편의점 등)에서 판매를 활성화하는 것이 필수적이지만, 종가세 체계 하에선 가격경쟁력을 전혀 가질 수 없는 것이다.
협회에서 종량세를 주장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품질 높고 다양한 맥주를 생산하는 국내수제맥주도 소매점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가지고 수입맥주와 경쟁할 수 있도록 합리적인 제도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종량세는 수제맥주에 유리한 제도가 아니라 이제서야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다는 의미를 갖는다.
종량세가 시행되면 해외 유명 브루어리들이 만든 고급 수입맥주들의 세금이 낮아져 저렴한 가격의 다양한 제품들이 수입판매될 것이다. 이에 따라 국내수제맥주업체들은 평평한 운동장에서 해외 유명 브루어리들과 품질 및 가격경쟁력으로 정면승부를 펼쳐야 하는 새로운 게임을 시작해야한다. 국내 수제맥주업체들이 종량세를 앞두고 가장 긴장하고 있는 부분이다.
결과는 오로지 소비자들의 몫이다. 이 게임에서 누가 승리할 지 장담할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품질 높고 다양한 맥주들을 즐기게 될 소비자들은 확실한 승자가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