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 최근 발표된 8·4 공급대책의 골자는 수도권의 주택공급 확대다. 이번 대책이 나오기까지 약 4주간 전국의 이목이 부동산으로 쏠렸고, 행정수도 이전이나 다주택자인 고위공직자에 대한 처벌 같은 시장 안정 방안들도 쏟아졌다.
그런 와중에 고밀도 개발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주장이 대세가 됐다. 논리는 간단하다. 집이 부족하면 건물을 높게 지어서 주택 수를 늘리면 된다는 것이다. 그 이상의 세부 내용은 없다.
‘도심 고밀도 개발’이 갑작스레 정책 목표가 되면서 이번 공급대책의 보도자료에도 ‘고밀’이란 단어가 22번이나 나온다. 같은 맥락인 복합개발 등을 포함하면 빈도 수는 더욱 늘어난다.
교과서적인 원론으로는 수요가 충분한 도심 내의 공급을 늘리는 것이 맞다. 그런데 기존 도심에서 고밀도로 실행되는 재개발과 재건축은 불가피한 문제들을 수반한다. 단기적으로는 주택 공급을 늘리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정주환경과 도시경쟁력의 악화를 초래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양’적인 증가가 ‘질’적 악화로 연결될 가능성을 사전에 고려해야 한다.
가장 흔한 문제로는 인근 주거지역에 대한 일조권 침해를 들 수 있다. 인천도시공사의 뉴스테이 사업장에 대해 인근 아파트 주민들이 제기한 공사금지가처분이 인정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상업지역에서는 건축법이 아닌 민법상의 이격거리를 적용받아 일조권과 조망권의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국내에서 일조권이 쉽게 인정되지 않는다는 일부의 인식도 주로 여기에서 기인한다.
기반시설의 수용능력 문제도 초래된다. 특히 교통문제가 가시적이고 즉각적으로 부각된다. 저밀도로 구축된 구도심에 맞춰서 기존 도로망이 형성된 지역에 대단지 아파트가 연이어 들어서면 교통 이 외에도 교육시설 등의 확충이 필수적이다.
요즘은 1000가구 규모의 아파트 단지에는 차량도 1000대가 있다고 가정해도 무방하다. 사람은 가구 수 곱하기 3인 정도면 비슷하다. 이 때문에 구도심 재개발이 연이어지면 지자체에서는 대중교통을 확충하고 이용효율을 높이려 하지만, 기존의 도로망 자체는 어쩔 도리가 없다.
예를 들어 용산정비창 부지에 대한 정부 계획대로 용적률 상향을 통해 약 1만 가구의 주택이 공급된다면 어떤 모습이 될지는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도심 고밀도 개발을 무조건적인 해법으로 추앙하기는 어렵다.
정부가 지금까지 추진한 도시재생은 재개발과 재건축을 배제했기에 실질적인 서민정책의 면모를 보였다. 적어도 사업지의 주민들이 소액의 보상금을 받고 내쫓길 일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가 제시하는 공공재개발의 내용으로는 원주민 정착률을 확답하기 어렵다. 공공재건축도 지금으로선 현실성이 떨어진다.
이런 것들은 지난 10년 또는 15년 동안 여기저기서 재개발·재건축이 꾸준하게 이뤄졌다면 정립됐을 사안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가령 어떤 재개발·재건축 사업장에서 소송 사례가 있었다면, 다음 사업장에서는 선례로서 반영됐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그런 시행착오나 경험의 축적 없이 단기에 대량으로 구도심을 고밀도의 주택으로 채우겠다는 것에 그친다.
더구나 한국에서는 일단 법적기준에 맞춰 건물이 세워지면 주변환경의 악화와 무관하게 철거하기가 어렵다. 완공 이후에는 일조권 등에 대한 손해보상도 금전적인 것에 그친다. 이런 사안이 늘어날수록 고밀 개발을 위한 용적률 상향이 도시경관과 쾌적한 주거환경을 저해할 가능성은 커진다.
따라서 불가피하게 고밀 공급이 이뤄진다 하더라도, 이에 따른 부작용을 어떻게 해소할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배제돼서는 안된다. 단순히 주택 공급을 늘리겠다는 목적이 고밀도 개발의 유일한 근거가 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주요약력
△공공기관 자문위원(부동산· 민간투자사업 등) 다수 △건축· 경관· 도시계획위원회 위원 다수 △도시·공공·디자인위원회 위원 다수 △명예 하도급 호민관·민간전문감사관 △한국산업인력공단 출제위원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