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형 문화칼럼니스트·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 늘 뭔가 바뀌어야 한다고 느끼지만 막상 변화를 위한 행동에 나서기는 쉽지 않다. 한때는 이와 관련해 인문학의 위기와 부흥을 논하며,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는 모든 분야에 인문학이 접목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렇다면 산업분야에서도 인문학이 필요할까?
우리는 인문학의 이미지를 옛 선현의 말씀이나 고전문학, 철학 또는 예술과 연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인문학이라면 일단 책을 읽어야 하고 실생활에서의 활용도는 없다고 치부한다. 그렇지만 자연과학과 상대적인 개념인 인문학의 영역이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나 사상, 문화 등을 다룬다는 것을 생각하면 인문학이라고 꼭 고전을 읽으라는 뜻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경영분야라면 인문학을 접목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인문학을 매개로 고객과 시장을 적절히 이해함으로써 기업의 경영성과를 높이는데 있다.
만약 건축전공자라면 설계수업에서 이와 비슷한 얘기를 들었을 것이다. 사용자의 동선과 생활형태 및 용도 등에 맞춘 공간의 설계, 시대적 요구와 환경에 맞춘 건축양식의 사례 등이 바로 그것이다.
작업자에게 해가 없는 근로환경의 구축이나 안전 등에 대한 경영진의 이해도 동일한 연장선에 있다. 그렇다면 인문학에 대한 이해는 분명 기업경영에도 도움이 된다. 이런 맥락으로 본다면 산업분야에 인문학을 접목하는 목적은 내·외부고객은 물론 사회에도 최선의 결과물을 제공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생산과 유통 등의 전반에 걸친 비용상승이 불가피하다는 점은 문제가 된다. 입찰과정에서의 저가수주와 속칭 품떼기라는 인건비절감 등이 드물지 않은 현실에서 굳이 발주자나 고객이 앞장서 비용을 더 지불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굳이 선진국의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각 산업분야의 위상은 해당 산업의 종사자들이 누리는 삶의 수준과 직결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저들이 누리는 생활수준에 따라 우수인력의 지속적인 유입과 장기근속, 산업경쟁력 향상의 선순환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지난 경제성장기는 해뜰 때 일을 시작해서 해지면 야근을 하거나 주말출근도 불사하던 시대였다. 때론 안전관리비가 필수적인 지출항목으로 인식되지도 않았다. 문제는 그런 관행이 지금도 한국사회에서 그럴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는 점이다.
물론 기업의 비용투입 대비 산출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성과지표를 높게 잡고 근무인원을 통제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경영진의 선의를 도덕적 해이로써 화답하는 소수 문제인력들은 분명 어디든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이윤극대화라는 경제적 논리가 충족된다면 다른 요소는 부차적이라는 경영논리는 지나친 비약이다. 사회의 경제나 교육수준 등이 높아지는 만큼 기업이 변하지 못한다면 강력한 규제가 필요해진다.
논란이 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나타난 배경도 실상은 이런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이런 것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질지 혹은 시기상조라며 배척될지는 우리 사회의 인식수준에 달려있다. 민간의 자율과 법으로 명시된 규제 중 어느 것이 효율적일지도 그렇다.
이 때 사회의 인식수준을 바꾸고 높이는 것은 결국 인문학의 역할이며 효율성을 우선으로 하는 기업경영의 논리가 아니다. 더구나 인간에 대한 이해와 공감능력을 갖춘 사회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대에 보다 쉽게 적응할 것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우리는 인문학을 그렇게 받아들여야 한다.
◇주요약력
△공공기관 자문위원(부동산· 민간투자사업 등) 다수 △건축· 경관· 도시계획위원회 위원 다수 △도시·공공·디자인위원회 위원 다수 △명예 하도급 호민관·민간전문감사관 △한국산업인력공단 출제위원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