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조남상 기자] 독립기념관(관장 한시준)은 국가보훈처, 광복회와 공동으로 러시아 연해주에서 한인사회를 이끌며 권업회(勸業會)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종호(1885~1932), 김학만(생몰미상), 최봉준(1859~1917) 선생을 2021년 1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12월 한 달간 독립기념관 야외 특별기획전시장(제5·6관 통로)에서 개최한다.
이종호(李鍾浩), 김학만(金學滿), 최봉준(崔鳳俊)은 권업회에서 한인의 권익보호와 민족의식 고취 등에 앞장선 독립운동가들이다.
이종호는 1907년 사립 보성학교 경영 등을 통한 인재양성에 힘쓰며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하던 중 러시아 연해주로 옮겨와 1911년 권업회 의사부 부의장으로 활약하며 권업회 운영 및 『권업신문』 발간에 필요한 비용 대부분을 기부하는 등 권업회의 중요한 재정적 후원자였으며 1914년 권업회가 해산되자 중국 왕칭현(汪淸縣)으로 이동하여 대전학교(大甸學校)를 건립하는 등 독립군 간부 양성에 힘을 쏟았다.
김학만은 19세기 초 러시아로 이주하여 1907년부터 계동학교(啓東學校)와 명동학교(明東學敎)의 설립과 운영을 적극 후원하며 이주 한인의 권익 신장에 힘쓰면서 1910년 한인거류민회(韓宜居留民會) 회장으로 당선되었고, 일제의 강제 병탄에 맞서 성명회가 조직되자 이에 가담하여 취지서를 발표하였다.
1911년에는 권업회 총재로 활동하며 독립운동 기지 개척을 위한 한흥동(韓興洞) 건설사업을 적극 추진하였고 권업회 해산 후에는 1919년 대한노인동맹단원으로 활약하는 등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최봉준은 19세기 함경도에서의 연해주로 이주한 후 군납업 등으로 자본을 모아 러시아 한인사회 발전을 위해 적극 투자하였으며 1908년 러시아 최초 한글신문인 『해조신문(海朝新聞)』을 창간하여 한인들의 민족의식 고취에 앞장섰다.
1911년 권업회에서 총재가 되어 『권업신문』 간행을 지원하고, 연추(煙秋) 지방지회에서 의사원으로 활약하였으며 권업회 해산 후에는 1917년 고려족중앙총회(高麗族中共中央總會) 기관지인 『청구신보(靑丘新報)』 창간위원으로 활동하며 재러 한인의 민족의식 고취에 힘썼다.
정부는 세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이종호에게 독립장, 2012년 김학만에게 애국장, 1996년 최봉준에게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천안 조남상기자/[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