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확산시 저축銀·여전사 등 직격탄...부동산이 '뇌관'
"韓 금융시스템 뱅크런에 취약"...유동성 위험 관리 시급
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과 대형 투자은행(IB)인 스위스 크레디트스위스(CS)까지 매각된 데 이어 독일의 투자은행 도이체방크까지 위기설에 휩사이며 전세계 금융시장으로 파장이 확산하고 있다.
국내 금융권에도 '빨간 불'이 들어왔다. 대량의 투자 손실에 휘청이고 있는 미국과 유럽 은행과 달리 국내 은행들은 대출 중심으로 자산을 운용해 와 당장 위험이 가시화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하지만 '약한 고리'는 존재한다. 전문가들이 지목하는 가장 큰 잠재 위험은 부동산 시장 경착륙과 제2금융권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가능성이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최근 해외발 금융 불안이 국내로 전이될 가능성에 대비해 잠재 위험 요인에 대한 점검을 강화하는 분위기다. 일단 국내 금융회사는 은행과 비은행권 모두 자산부채 구조가 외국 은행들과 다르고, 자본비율과 유동성 비율도 양호해서 이번 사태의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게 금융당국의 판단이긴 하다.
다만 경기침체와 금융 불안이 심화할 경우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이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저금리와 부동산 시장 호황에 일부 금융회사가 부동산 PF 대출을 늘려왔는데, 부동산 경기가 꺾이며 부실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금감원은 지난 16일 저축은행중앙회와 업계 관계자를 소집해 부동산 PF 대출 연체율 등을 점검한 바 있다. 저축은행의 부동산 PF 대출 잔액은 지난해 3분기 기준 10조7000억원이다. 2020년 말(6조9000억원) 대비 3조8000억원 급증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저축은행의 고위험 PF 사업장 대출 비중은 지난해 6월 기준 29.4%로 다른 업권 대비 높다. 이 비중은 은행이 7.9%이며 여신전문금융회사는 11%, 보험사와 증권사는 각각 17.4%, 24.2%다.
저축은행 부동산 PF 대출 연체율도 2.8%로, 2021년 말(1.2%)에 비해 크게 올랐다. 증권사(8.16%)를 뺀 다른 업권에 비해 높다. 증권사의 경우 PF 대출 규모 자체가 작아 사업장 1~2곳만 부실이 발생해도 연체 비율이 크게 오르는 착시현상이 있어서 큰 문제가 될 수준은 아니라는 게 금융당국의 판단이다.
하지만 부동산 경기가 급속히 냉각되며 시장에선 비단 저축은행뿐만 아니라 여전사 등 제2금융권 전체에서 부동산 PF를 중심으로 위험이 확대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미 전국 미분양 주택은 지난 1월 7만5359호로 2012년 11월(7만6319호) 이후 10년 2개월 만에 최대를 기록했다. 한국금융연구원이 집계한 비은행권 부동산 PF 금융 익스포저(위험 노출액)는 지난해 6월 말 기준 191조7000억원 규모로 2018년 말(94조5000억원)의 두 배가 넘는다. 연구원은 부동산 PF 위험노출액은 대출, 지급보증, 유동화증권 등을 합산한 것으로 지난해 말까지 더 늘어난 것으로 추정했다. 한국신용평가는 최근 저축은행ㆍ캐피탈사ㆍ증권ㆍ부동산신탁 등 업종 전망을 비우호적으로 제시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국내 주택시장이 가격 하락과 미분양 물량 증가로 경착륙할 우려가 있는 상황에서 해외 은행의 예금 대량 인출(뱅크런)과 금리 위험 관리 실패 등으로 금융 불안과 경기 둔화가 현실화하면 국내 주택시장 경기가 더 악화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SVB, 크레디트스위스 등 해외 은행 문제로 금융시장이 요동을 치고 불확실성이 우리 금융시장에 영향을 미치면 약한 고리인 부동산 PF와 가계부채 등 부동산을 둘러싼 부채에서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현 한국기업평가 책임연구원은 "PF 우발채무는 부동산 경기 불황기에 금융시장이 경색되면 개별 프로젝트 사업성과 무관하게 차환 위험이 발생할 수 있어 유동성 위험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금융권 전반의 연체율 상승도 위험 신호다. 금리 인상에 따른 고물가 충격이 본격적으로 나타나며 가계와 기업의 상환 여력이 떨어져서다. 중저 신용자가 주로 이용하는 제2금융권 연체율에는 이미 경고등이 커졌다. 시중은행 연체율도 오름세다. 지난 1월 말 현재 국내은행 대출 연체율은 0.31%로 한 달 전(0.25%)보다 0.06%포인트 올랐다. 지난 2021년 5월(0.32%) 이후 20개월 만에 가장 높다.
일각에선 세계 최고 수준의 우리나라 모바일뱅킹 시스템이 역설적으로 위기 시 가장 빠른 속도의 ‘뱅크런(예금 대량 인출)’이 일어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한다. 한국에서 모바일뱅킹 활용은 2015년 전체 은행 거래의 11.7% 수준이었지만, 지난해에는 39.7%로 높아졌다. 하루 평균 이용액은 2019년 6조원대에서 지난해 14조1758억원으로 불었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최근 SVB 사태 등에도 국내 은행은 양호한 유동성과 충분한 기초체력을 가지고 있고, 관련 미 은행들에 대한 익스포저(위험노출액)도 크지 않아 직접적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며 “다만 금융시장의 변동성ㆍ불확실성 우려가 높아진 만큼 금융권의 건전성 제고가 중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