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경제, 고금리·고유가·고환율 이어 '고물가' 역습
소비심리 위축에 수출도 흔들...'상저하저' 불가피
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3고(高)' 현상에 시달리던 한국 경제가 이제는 '4高' 쓰나미를 걱정해야할 처지가 됐다. 미국이 긴축 고삐를 바짝 죄며 국내외 시장금리가 치솟고 원화 값은 속절없이 떨어지며 환율은 치솟고 있다. 여기에 고유가 공포도 이어졌고, 잡힐듯 했던 물가는 다시 되오르고 있다. ‘동반 4고 현상’ 여파로 미약하나마 나타난 수출 회복세가 꺼지고 내수는 더욱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향후 경기 흐름이 정부가 기대하는 ‘상저하고(上边上高)’는 고사하고 ‘L자’형 경기 부진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곳곳에서 나온다.
실제로 둔화세를 보이던 물가상승률은 지난 8월 3%대에 재진입한 이래 9월엔 5개월 만에 최대폭으로 뛰었다.
5일 통계청이 발표한 '9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2.99(2020=100)로 1년 전보다 3.7% 상승했다. 지난 4월(3.7%) 이후 5개월 만에 최대 상승폭이자 8월(3.4%)에 이어 2개월 연속 3%대 상승률이다. 국제 유가 상승에 따라 석유류 하락폭 둔화와 함께 농수산물 가격이 일시적으로 상승하면서 물가 상승세를 부채질했다.
물가를 끌어올린 주요인은 유가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1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가격은 지난 9월 27일 배럴당 93.96달러(종가 기준)로 13개월 만에 최고점을 경신했다. 이는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 감산조치의 영향이다. 지난 2일 WTI 선물 가격 종가는 3거래일 연속 하락했지만 배럴당 88.82달러를 기록했다. 하지만 공급부족에 대한 심리로 투기수요가 늘면 상승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제유가 상승은 국내 전기요금 인상을 압박하는 요소다. 통상 국제유가 흐름은 최소 3개월 정도 시차를 두고 전력 도매가격에 영향을 미친다. 이렇게 되면 한국전력의 전기 구매단가가 올라 4·4분기 전기요금 인상 필요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10월 물가 또한 상승을 부추길 요인이 많다. 그동안 억눌렸던 식품 가격, 대중교통 요금 등이 추석 연휴 이후 줄줄이 오를 것으로 전망돼 체감물가는 더 치솟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다 국제유가도 세자릿수 전망까지 나오면서 휘발유 값과 전기요금이 상승 압박을 받고 있다. 서민 부담은 가중되고 소비심리는 위축될 여지가 커졌다. 고금리·고유가에다 원화 약세에 따른 고환율, 고물가까지 '4고(高)'에 직면한 한국 경제의 올 하반기 경기반등 가능성은 한층 더 멀어지게 됐다.
국민생활과 밀접한 유유 값 등 먹거리에 이어 대중교통 요금 인상이 예고되면서 소비심리는 빠르게 위축되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9월 26일 발표한 2023년 9월 소비자동향 조사 결과에 따르면 경제 전반에 대한 소비자 인식을 보여주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99.7로 전월 대비 3.4% 하락했다.
금리도 고공행진 중이다. 3일(현지시간)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최고 연 4.81%를 기록했다. 2007년 8월 이후 16년만에 최고 수준이다. 이 여파에 국내 시장금리도 ‘레고랜드 사태’가 있었던 지난해 11월 이후 최고 수준으로 올랐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긴축 강화 가능성이 세계 시장 금리를 끌어올리는 모양새다.
원화값은 크게 떨어지며 환율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Fed의 매파 선호 메시지가 이어지며 ‘킹 달러(달러 초강세)’가 나타나며 원화값은 최근 3거래일 연속 연중 최저점을 새로 썼다. 한미 금리차에 따른 자본유출 우려도 원화가치를 끌어내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고유가 기조도 이어지고 있다. 3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유(WTI) 선물 가격은 전날보다 0.41달러 오른 89.23달러에 거래를 마감했다. 4거래일 만에 상승 전환이다.
'4고 현상'은 소비 등 내수 부진을 부추길 수 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미 가계와 기업 부채가 많은 상황에서 시장 금리가 높아지면 기업과 가계의 조달 및 이자 비용이 늘어나고, 그만큼 소비와 투자는 위축된다”라며 “여기에 국제 유가 상승과 고환율이 수입 물가를 재차 자극하면 실제 구매력을 떨어뜨려 소비 부진이 심화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간 수출 부진 속 한국 경제를 지탱했던 소비는 최근 들어 꺾이는 모양새다. 지난 8월 소매판매액 지수는 전달보다 0.3% 줄며 두 달 연속 감소했다.
한편 소비와 수출이 모두 흔들리면 한국 경제는 ‘상저하고’가 아닌 ‘상저하저’ 흐름으로 전개될 수 있다. 정부는 올해 성장률을 1.4%로 보고 있는데 상반기는 0.9%, 하반기는 1.8%로 전망했다. 하지만 4고 현상 직면에 정부와 한국은행도 긴장하는 모양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비상경제금융회의에서 “고금리 장기화와 국제유가 상승 등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확대됐다”라고 말했다. 유상대 한국은행 부총재는 “대외 여건 변화에 따라 국내 금융·외환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면서 “국내 가격 변수와 자본 유출입 동향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며 필요시 시 장안정화 조치에 나서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