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금리 ‘24→20%’ 인하 후 대출할수록 손해
불법 사금융만 키워...입법조사처 "인상 시급"
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대부업계는 2021년부터 시행된 법정최고금리 인하에 고금리까지 겹치며 고사위기를 겪고 있다. 이에 주이용층인 일부 저신용자는 제도권 밖의 불법사금융 시장으로 내몰렸고, 여전히 감당하지 못할 고금리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인 것으로 나타났다.
소시민의 마지막 대출 창구인 대부업계마저 대출 문을 걸어 잠그면서 급전이 필요한 서민이 1000%가 넘는 살인적 이자를 감당하는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리고 있다. 대부업계는 물론 금융당국, 학계에서 법정 최고금리를 현실화해 대출 물꼬를 터 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정치권이 반대하고 있어 논란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28일 한국대부금융협회 등에 따르면 주요 69개 대부업체의 지난 8월 말 기준 신규 대출액은 950억원에 불과하다.
지난해 같은 기간 3066억원의 30% 수준이다. 같은 기간 대부업계에서 신규 대출을 받은 사람은 2만 4955명에서 1만 2957명으로 급감했다. 이렇듯 최근 대출 총량이 줄어든 것은 대부업체가 신규 대출을 꺼리는 탓이다.
업계 관계자는 “해줄수록 손해라는 생각에 신용대출은 팔려는 대부업체가 없다”면서 “신규 대출액이 줄어든 것은 대출 수요가 줄었기 때문이 아니라 대부업체가 대출 거절을 많이 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현행 20% 법정 최고금리로는 정상적인 대출 영업을 할 수 없다는 것이 대부업계의 입장이다. 대부업체가 저축은행이나 할부금융사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면서 내는 이자, 연체율, 운영비 등을 고려하면 최고금리가 최소 24%는 넘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업계조차 외면한 차주들은 불법 사금융의 문을 두드리는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 5월 서민금융연구원이 대부업 이용자 35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는 14%가 대부업체 대출 거절 시 “불법 사금융을 통해 돈을 마련하겠다”고 답했다.
한국금융연구원은 법정 최고금리를 종전 24%에서 2021년 20%로 인하한 이후 기존 대부업계에서 대출받았던 차주 중 최대 23.1%가 불법 사금융으로 밀려났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대부업체가 고사해 서민들의 대출 창구 자체가 쪼그라들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일본이 기존 29.2%였던 최고금리를 2006년 20%로 낮춘 이후 자산건전성이 악화된 대부업체들이 줄도산했다.
금융당국이 올 초 법정 최고금리 인상 또는 시장금리에 따라 오르내리는 연동형 법정 최고금리제 도입 등을 추진했지만, 금리 인상이 서민의 부담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 정치권의 반대에 막혔다. 법정 최고금리를 조정하려면 대부업법 시행령을 개정해야 하는데 국회가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이다.
이달 초 국회입법조사처는 '금리인상기 대부업 시장 이대로 괜찮은가' 보고서를 통해 법정최고금리 규제 부작용을 우려했다. 시중금리 인상에도 법정최고금리 규제 탓에 대출금리를 더 올리기 어려워진 대부업체들이 수익성 악화로 대출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는 설명이다.
대부업 영업환경은 지난해 말부터 급격하게 어려워졌다. 2021년 상반기까지 0%대를 유지하던 기준금리가 지난해 11월 3.25%, 올해 1월 3.5%로 가파르게 인상되면서 대부업 조달금리도 덩달아 치솟았다. 고금리와 경기침체 장기화로 대부업 연체율이 증가하면서 대손비용도 오름세다.
입법조사처는 “대부업체의 조달비용과 대손비용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지만, 대부업체가 받을 수 있는 대출금리 상한은 20%로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부실 가능성이 높은 취약차주에 대해서는 대출을 할수록 오히려 수익성이 악화되는 역마진 우려가 발생하는 등 대부업체의 영업환경이 악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입법조사처는 최근 불법사금융 피해 증가 추이를 미뤄봤을 때 기존 대부업 이용자가 불법사금융 시장으로 유입되고 있다고 추정했다. 금감원 불법사금융 피해신고센터에 접수된 불법사금융 피해상담·신고건수를 보면, 2019년 5468건에서 2022년 1만913건으로 2배 가까이 증가했고, 2023년 상반기에는 6784건으로 반기 기준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불법사금융 시장 규모가 확대될수록 불법사금융에 따른 이용자 피해도 증가한다는 원리에서다.
입법조사처는 취약계층 보호를 위해서는 법정최고금리 인상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들은 “최근 금리 인상에도 법정 최고금리는 조정되지 않아 대부업 시장기능이 위축되고 있음을 고려할 때 기능 정상화를 위해 법정최고금리 인상을 조속하게 논의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시장 상황 변화에 따라 일일이 법령을 개정해 법정최고금리를 조정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만큼 법정최고금리를 시장금리 또는 기준금리에 연동시키는 ‘연동형 최고금리 규제’를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