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정권 강요 흐지부지됐던 소송 되살려내…인혁당 사례 보면 확정까지 안심 못해
[매일일보] 박정희정권에 의해 서울 구로동 일대 농지를 강탈당했던 농민과 유족들이 국가로부터 사상 최대의 배상금을 받게 됐다. 이들은 법원이 1970년 공권력의 강요로 흐지부지된 소송을 되살려줌에 딸 소송을 낸지 47년 만에 극적으로 승소의 기쁨을 안았다. 서울고등법원 민사9부(부장 강민구)는 백모씨 등 291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소유권 이전 등기 소송의 파기환송심에서 “총 650억5000여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고 20일 밝혔다.
이자를 더한 전체 배상금은 1100억원을 초과해 단일 사건으로 사상 최고액에 해당한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의 소유권 취득이 불가능해진 1998년 말 구로동 토지 시가를 기준으로 손해배상액을 산정하고, 그 이후 판결 선고시까지 연 5%씩 이자를 가산해 국가가 지급하도록 했다.
앞서 박정희 정권은 1961년 9월 구로수출산업공업단지(구로공단)를 조성한다는 명목으로 구로동 일대 약 30만평의 땅을 강제 수용해 판잣집을 철거하고 농민들을 내쫓았다. 농민들은 이 땅이 1950년 4월 농지개혁법에 따라 서울시에서 적법하게 분배받은 것이라며 1967년 3월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1심은 농민들 주장을 인정했지만 항소심은 애당초 농지 분배 절차에 잘못이 있다며 결론을 뒤집었다. 상고심은 다시 농민들 손을 들어줬다. 다른 농민들이 제기한 9건의 소송 중 4건에서 이미 원고 승소가 확정된 상황이었다.
그런데 서울고법이 이 사건 파기환송심을 심리하던 1970년 5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정부가 패소하지 않도록 가능한 조치를 취하라”고 법무부 장관에 지시한 뒤 탄압이 시작됐다.
검찰과 중앙정보부는 농민들에게 소송 사기 혐의를 뒤집어씌우고 수사 과정에서 “감옥 갈래, 소송 포기할래”라고 협박했다. 그래도 소송을 취하하지 않은 41명을 형사재판에 넘기기도 했다. 결국 이 사건 농민들의 경우 예외 없이 소를 취하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8년 7월 진실규명 결정을 내리고 나서 1970년 멈춘 소송을 다시 진행해달라고 법원에 신청했다. 재판부는 조직적인 공권력 남용에 의해 강요된 소 취하를 무효로 보고 농민들의 신청을 받아들였다. 이른바 ‘죽은 소송’을 재심을 거치지 않고 그대로 되살리기로 결정한 것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1996년 농지법 시행으로 1999년부터 농민과 유족이 법률에 따른 농지 소유권을 더 이상 주장할 수 없게 됐다고 지적하면서 국가의 불법행위에 따른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한편 종전 국가 배상 최고액은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사형이 집행된 희생자 8명의 유족 67명이 제기한 국가손배 소송에서 2009년 판결됐던 635억원이지만 이 배상금은 2011년 대법원에서 249억원으로 대폭 삭감되면서 가지급 받았던 피해자·유족들을 빚더미에 앉게 했다.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인 지난해 국가정보원은 인혁당 피해자·유족을 상대로 배상금 반환 소송을 제기해 잇따라 승소를 거두고 있다. 구로 농지 강탈 사건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되기 전까지 피해 농민·유족들이 마음을 놓아서는 안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