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잔액 지속 증가세…연체율 8월까지 석달째 상승
4대 은행, 기업 부실채권 상·매각 전년대비 65% 늘어
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금융권 기업대출 부실이 고개 들고 있다. 은행들이 가계대출 관리에 집중하고 있는 사이 기업대출이 많아지면서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부실이 커졌다. 기업대출 연체율은 8월까지 석달째 연체됐다. 4대 시중은행의 기업대출 중 부실난 물건의 상·매각도 증가했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기업대출 잔액은 지난 9월 말 기준 825조1885억원으로 집계됐다.
작년 말대비 55조435억원(7.5%) 증가했다. 같은 기간 가계대출이 38조5577억원(5.6%) 증가한 데 비하면 기업대출이 훨씬 큰 폭으로 불어난 것이다.
이런 지표는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관리 정책이 계속되면서 은행들이 기업대출로 활로를 모색한 결과다.
예금은행 전체로 보더라도 기업대출은 증가세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예금은행의 기업대출 잔액은 지난 6월 말 기준 1363조7097억원이다. 특히 개인사업자를 포함한 중소기업 대출은 작년 하반기부터 1000조원을 넘었고, 6월말 1065조4142억원을 기록했다.
문제는 추락하는 건전성이다. 기업대출 연체율은 8월 말 0.62%를 기록했다. 1년 새 0.15% 상승했다.
기업규모별로 연체율이 높은 부문은 단연 중소기업이었다. 대기업대출 연체율은 0.05%로 같은 기간 0.08%p 내린 반면, 중소기업대출 연체율은 0.78%로 전년 동월 대비 0.15%포인트(p) 올랐다. 구체적으로 중소법인 연체율은 같은 기간 0.25%p 상승한 0.84%, 개인사업자 연체율은 0.20%p 오른 0.70%를 기록했다.
기업대출 연체율은 가계대출보다 높다. 최근에는 격차도 더욱 벌어졌다. 기업대출과 가계대출 격차는 2022년 8월 말 0.06%p, 2023년 8월 말 0.09%p, 올해 8월 말 0.22%p로 커졌다. 주담대와 가계신용대출 연체율이 오르고 있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높은 신용 대출을 선별해 내주다보니 관리가 되는 반면, 기업대출은 갑작스런 한계상황에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차주들이 속출하는 것이다. 고물가와 고금리에 내수부진까지 겹친 탓이다.
올들어 기업 부실채권 상·매각 규모는 작년 대비 늘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은행이 1~3분기 중 상·매각한 기업 부실채권은 전년 동기(1조7085억원) 대비 64.9% 급증한 2조8169억원으로 나타났다. 전체 부실채권 상·매각 규모(3조7853억원)의 74.4% 비중을 차지한다.
같은 기간 가계 부실채권 상·매각 규모가 8524억원에서 9684억원으로 13.6% 늘어난 데 비하면 기업대출은 부실 증가 속도도 빨랐다.
금융사들은 기업대출 부실 관리에 나서기 시작했다. 우리은행은 기업대출 잔액을 줄이는 경우 행원들의 핵심성과지표(KPI)에서 가점을 주기로 했다. 가계대출뿐만 아니라 기업대출 증가세도 동시에 관리하겠다는 취지다. 신규 기업대출은 제한하고 각 영업점에 부여한 신규 기업대출 금리 전결권을 본사로 제한하는 조치도 냈다. 사실상 기업대출을 중단한 '초강수'를 둔 것이다. 분위기가 금융권 전체로 확산될지는 지켜봐야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중소법인과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신규 연체율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 내부 시장 부진이 쉽게 나아지지 않으면서 한계에 부딪힌 차주들이 대출 원금은커녕 이자 갚기도 힘든 상황이다"면서 "각종 지표들을 보면 향후 문 닫는 기업은 늘고 은행권의 부실채권 정리규모도 늘 것으로 보인다. 충당금 적립 등으로 선제적인 리스크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자 가계대출에 이어 기업대출도 얼어붙을 전망이다.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관리 주문에 은행들이 기업대출로 활로 모색에 나섰지만, 중소기업대출을 중심으로 부실 우려가 커지면서 대출 문턱을 높이고 있다. 은행들이 우량 기업에 한해서만 돈을 내주기로 하면서 기업들의 돈줄도 마를 가능성이 커졌다.
연말 건전성 제도 정비를 위해 ‘스트레스완충자본’이 도입된다는 점도 은행권이 기업대출 영업에 보수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는 요인이다. 제도가 도입되면 은행은 위기 상황 분석 결과 CET1 하락 수준에 따라 최대 2.5%p까지 기존 최저자본 규제비율 상향 방식으로 추가자본을 적립해야 한다. 연체 가능성이 큰 중기대출부터 규모가 축소될 것으로 점쳐지는 이유다.
은행권 관계자는 “가계부채의 경우, 당국이 내년에 연간 경영계획뿐 아니라 월별, 분기별 관리를 하겠다는 얘기가 나오는 만큼 (은행이) 적극적인 영업을 할 수 없을 것”이라며 “기업대출 역시 주주환원율과 연체율 등 때문에 우량자산을 중심으로 보수적인 영업을 이어갈 것이라 새로운 파이는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