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나가는 럭셔리브랜드 “패밀리가 떴다? 누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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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나가는 럭셔리브랜드 “패밀리가 떴다? 누렇게!!”
  • 윤희은 기자
  • 승인 2009.11.30 10: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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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래시장 보다 못한 명품? 한국 소비자는 봉…‘패밀리’ 핑계 하자상품 떨이

[매일일보=윤희은 기자] ‘명품’이란 원래 예술가나 장인의 작품 중에서 두드러지게 뛰어나거나 아름다운 품격을 보이는 것들을 나타내는 말로서, 영어로는 ‘마스터피스(masterpiece)’라고 하지만 어느 때부터인지 우리나라에서는 ‘고급 사치품(Luxury goods)’을 일컫는 말로 와전되어 사용되고 있다.

사실 동일한 제품이 우리나라보다 GDP와 물가수준이 훨씬 높은 국가에서보다 비싼 가격으로 팔리는 등 세계 사치품 업계에서 한국 소비자들이 ‘봉’ 취급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런 사치품 브랜드들의 횡포 정도가 도를 넘어서, 추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패밀리세일’을 빌미로 재고 및 하자제품을 떨이로 처분하면서 수요 확보를 위해 일반인들에게까지 초대권이 퍼지도록 방치하고 있는 것.

<매일일보>은 최근 강남의 한 사치품 브랜드 매장에서 진행된 ‘패밀리세일’ 현장을 찾아 소위 ‘명품 브랜드’들이 국내 소비자들을 상대로 벌이는 돈 놓고 돈 먹기 행태를 집중 취재했다.

기사에서 언급된 브랜드는 일부업체이지만 그 행태는 다른 브랜드들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명품 애호가들의 증언. 취재를 위해 접촉한 업체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이러한 행태가 자기 브랜드를 좀먹는 행위라는 점은 분명히 인식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인터넷에 널린 게 ‘초대장’… 1번 입장객은 새벽 4시부터 대기
관계자 아니라도 입장 가능, ‘초대장’ 출력하면 누구나 ‘관계자’


지난 11월 18일 오전 청담동에 있는 ‘크리스찬 디올’ 본사 앞. 아침부터 삼삼오오 몰려든 이들로 입구가 북적인다. 남녀가 약 3:7 비율로 섞여있고 연령대는 다양하다.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아침부터 이곳을 찾은 이유는 무엇일까.

‘크리스찬 디올’은 11월 17일부터 19일까지 3일간 패밀리세일을 진행했다. 17일은 직원 및 업체 관계자 세일로 직원의 명함이나 업체 관계자라는 증명이 있어야 입장 가능하고, 일반인의 입장이 가능한 것은 18일부터다.

‘패밀리 세일’이라면 이미 직원과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행사일 텐데 어떻게 일반인의 입장이 가능한 것이냐는 반문이 있을 수도 있다. 실제로 ‘크리스찬 디올’사는 이번 패밀리세일을 위해 초대권을 따로 제작하기도 했다. 초대권을 소유한 사람만이 1장당 두 명씩 패밀리세일에 참가할 수 있는 체계.

그렇다 해서 본사 앞에 있는 수많은 이들이 모두 ‘패밀리’의 자격을 지닌 사람들은 아니다. 실제로 초대권을 손에 든 P모(26)씨는 디올과 아무런 연관이 없을 뿐 아니라 제품을 구매한 적도 없다고 했다.

P씨가 말하는 해답은 인터넷에 있었다. ‘크리스찬 디올’의 초대권은 인터넷에서 누구나 쉽게 출력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실제로 P씨는 “평소에 활동하던 인터넷 커뮤니티에 패밀리세일의 초대장이 올라와 있기에 그것을 출력해서 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본래 이 초대장은 직원 및 관계자의 이메일로 발송되는 것으로 일반인은 구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지만, P씨는 “이미 인터넷에 초대장이 많이 유포된 상태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검색해서 초대장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1번’ 번호표를 얻고 입장한 S씨 역시 ‘크리스찬 디올’의 ‘패밀리’는 아니다. 그는 이 세일에 참가하기 위해 새벽 4시부터 본사 앞에서 기다렸다고 했다. 그는 “집이 이 근처라서 새벽부터 기다렸는데, 나 말고도 새벽부터 기다린 사람이 꽤 있었다”며 “덕분에 좋은 제품을 싸게 사서 기분은 좋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속수무책으로 늘어나자 본사 측에서는 아예 대기표기계를 갖다놓고 일찍 온 순서대로 번호표를 뽑도록 했다. 세일 시작이 오전 10시인데 이미 오전 11시경 대기표의 숫자는 895번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만큼 새벽부터 와서 기다린 사람이 많다는 의미다.

행사 진행을 맡은 본사 관계자는 “번호 순서대로 100명씩 끊어서 입장을 시키고 있다”며 "800번대 손님의 경우 오후 두시는 돼야 입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때문인지 본사 주변에는 번호표를 손에 쥐고 서성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날 하루 동안 패밀리세일을 찾은 방문객은 약 1300여명이었다.

하자투성이 상품에 하루 1300여명 몰려, 북적북적 시장판
업체 측 “고객 대상 세일 아니니 하자제품 포함 이해해야”


오전 12시 경에 쇼핑을 마치고 나온 L씨는 빈손이었다. 그는 400번 대의 번호표를 받고 입장했지만 “살만한 물건이 없었다”고 했다. 말만 ‘패밀리 세일’이지 재고처리행사 같은 분위기였다는 것이 L씨의 촌평.

L씨는 “보통 17일에 하는 직원세일에서 좋은 물건이 거의 다 나가고 18일부터 매장에 나오는 물건은 인기 없는 이월제품이거나 하자있는 상품들이 대부분”이라며, “이럴 거면 차라리 돈을 더 주더라도 백화점 시즌오프 기간에 쇼핑하는 것이 나을 뻔했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크리스찬 디올’의 패밀리 세일 내부 현장은 재래시장을 방불케 했다. 본사 직원 두어 명이 입장객들을 관리하고 있었지만 워낙 입장객들이 많아 통제 불능 수준이었다.

“밀지 마세요”, “번호 순대로 입장하세요”라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지만 입장객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패밀리세일에 처음 와 본다는 K씨는 “패밀리세일이라고 하길래 고급스럽고 프라이빗한 분위기를 예상했는데 막상 와 보니 시장통 같은 분위기라 놀랐다”며 “일반인이 이렇게 많은데 ‘패밀리 세일’이라는 명칭 자체가 맞는지도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가격은 어떨까. 직접 눈으로 확인한 ‘크리스찬 디올’ 패밀리세일의 제품들은 실제로 ‘패밀리’수준의 가격은 하고 있었다. 표시된 ‘정가’가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제품들이 70~80%이상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었던 것.

문제는 제품의 상태였다. 한 여성은 가판대에 올려진 양가죽 소재의 ‘까나쥬 백’을 몇 번이나 들었다 놨다 했다. 이 제품은 본래 149만원짜리 제품을 44만 7천원에 살 수 있는 파격적인 가격에도 불구하고 이 여성이 제품의 구입을 망설인 이유는 전체적으로 오염정도가 너무 심했기 때문이었다.

비단 이 제품뿐만이 아니었다. 많은 제품들에게서 ‘세월의 흔적(?)’이나 상처가 발견되었고 심지어 새 제품이라고 믿기 어려운 수준의 제품도 많았다.

의류의 경우 너무 많은 사람들의 손이 닿은 탓에 때가 탄 것들이 많았으며 어떤 제품들은 마치 걸레처럼 가판대 위를 굴러다녔다. 30~40만원대의 태그가 붙은 제품들이 동대문에서 판매하는 제품들처럼 늘어져있는 것은 인상적이었다.

패밀리세일을 자주 이용한다는 M씨는 “어느 정도의 불편이나 하자는 각오하면서 쇼핑한다”면서도 “최근 들어 그 정도가 심한 것 같아서 패밀리세일을 이용하는 것에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고, 차라리 해외 구매대행이나 시즌오프를 이용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하자제품을 판매하는 것에 대해 업체 홍보팀 관계자는 “일반고객 대상 세일이 아니니 당연”하다고 반문했다. 홍보팀 측은 “본래 패밀리세일이란 것은 직원 및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세일이므로 이에 대한 이해는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왜 ‘직원 대상 세일’에 일반인 고객들의 출입을 가능하게끔 관리했는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일체 함구했고, 인터넷에 초대장이 광범위하게 퍼졌다는 것은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했다.

디올 측, “초대장 유포 의도하지 않았다”

1만 7000여명의 회원을 보유한 패밀리세일 관련 동호인 사이트의 한 운영진은 해당 브랜드의 홍보팀이 영업 전략의 일종으로 초대장을 유포하는 경우가 있다고 전했다.

그는 “마케팅의 일환으로 패밀리세일을 활용하고, 패밀리세일을 이용한 소비자들의 인터넷 반응을 초석으로 하여 성장하는 브랜드가 많다”고 말하며 “국내 브랜드인 ‘알랑제이’나 ‘워킹온더클라우드’ 같은 경우가 패밀리세일 마케팅에 성공한 대표적인 케이스”라고 설명했다.

‘크리스찬 디올’ 측은 이에 대해서는 적극 부인했다. 해당 업체 홍보팀은 “초대장 유포는 의도한 것이 아니다”라며, “왜 패밀리세일에 그렇게나 많은 일반인이 입장했는지는 모르는 일”이라고 ‘모르쇠’로 일관했다.

<매일일보>은 ‘크리스찬 디올’과 비슷한 시기에 패밀리세일을 했던 국내 명품브랜드인 펜디(Fendi)측에도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패밀리 세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브랜드 이미지에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자세한 사항을 말씀드리기 어렵다”며 인터뷰 요청을 거부했다.

펜디 관계자는 해당 브랜드의 초대장이 인터넷에 무분별하게 유포되는 사실에 대해서도 일체의 설명을 거부했으며, “인터넷에 초대장이 돌아다니는 것은 네티즌들이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특별하게 제재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패밀리’ 달면 매출 2~3배 올라

국내에선 11월 한 달 동안에만 약 10여개 업체의 패밀리 세일이 열렸지만 각 세일의 초대장들은 모두 인터넷에 유포되어 사실상 ‘패밀리 세일’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체들이 무리하게 ‘패밀리 세일’이라는 명칭을 고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모 백화점 관계자는 이런 행태에 대해 “‘특별세일’이라고 할 때보다 ‘패밀리세일’이라고 했을 때 매출이 2~3배 오르는 등 반응이 좋다”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패밀리 세일’ 특유의 어감이 내포하는 차별화와 고급스러움이 소비자의 소비심리를 부추긴다는 것.

그러나 소비자들의 반응은 다르다. “‘패밀리 세일’이라고 해서 갔는데 재래시장 같은 분위기에 업체에서 농락당한 것 같은 기분도 든다”는 회의적인 의견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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