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의 구성
진입 및 제향공간에는 홍살문, 판위, 향로와 어로, 정자각, 수복방, 수라간, 비각이 배치돼 있다.
능의 역사
1469년(예종 1년)에 예종이 세상을 떠나자 이듬해인 1470년(성종 1년)에 의경세자의 의묘(懿墓, 경릉) 북쪽에 능을 조성했다. 그 후 1498년(연산군 4년)에 안순왕후 한씨가 세상을 떠나자 이듬해인 1499년(연산군 5년)에 창릉 동쪽 언덕에 능을 조성했다.예종(睿宗) 이야기
예종(1450~1469)은 세조와 정희왕후 윤씨의 둘째 아들로 1450년(세종 32년)에 수양대군 사저에서 태어났다.세조가 왕위에 오른 후 해양대군(海陽大君)에 봉해졌고, 형인 의경세자(추존 덕종)가 20세의 나이로 일찍 세상을 떠나자 1457년(세조 3년)에 왕세자로 책봉됐다.1468년(세조 14년)에 세조의 선위를 받아 왕위에 올랐다. 즉위 초에 남이의 옥사를 진압했으며, 1469년(예종 1년)에는 세종의 영릉(英陵)을 여주로 천장했다. 그러나 재위 1년 2개월 만에 경복궁 자미당에서 20세로 세상을 떠났다.예종은 효성이 지극했던 아들이었다. 조선 후기의 학자 이긍익이 지은 야사모음집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는 예종이 부왕 세조가 세상을 떠난 것에 충격을 받아 건강을 해쳤다며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안순왕후(安順王后) 이야기
예종의 두 번째 왕비 안순왕후 한씨(출생일 불명~1498)는 본관이 청주인 청천부원군 한백륜과 서하부부인 임씨의 딸로 태어났다. 1463년(세조 9년)에 왕세자의 후궁인 소훈(昭訓, 내명부 세자궁 종5품)에 간택됐고, 예종이 즉위하자 왕비로 책봉됐다.예종이 세상을 떠난 후 원자인 제안대군이 왕위를 이어받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의경세자의 둘째 아들인 자산군(성종)이 예종의 양자로 입적되어 왕위에 올랐다.성종이 즉위한 후 인혜왕대비가 됐고, 연산군 즉위 후 대왕대비가 됐다. 그 후 1498년(연산군 4년)에 창경궁에서 세상을 떠났다.제8대 예종 첫 번째 왕비 장순왕후 공릉(恭陵)
능의 구성
공릉은 조선 8대 예종의 첫 번째 왕비 장순왕후 한씨의 단릉이다. 왕세자빈의 신분에서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묘제의 형식에 맞게 조성했다. 진입 및 제향공간에는 홍살문, 판위, 향로, 정자각, 비각이 배치돼 있다. 홍살문과 정자각 사이에 있는 향로는 직선축이 아닌 절선축으로 조성됐다.
능침은 병풍석과 난간석을 생략했고 문석인, 석마, 장명등, 혼유석, 석양과 석호 1쌍씩 배치했다.
능의 역사
1461년(세조 7년)에 장순왕후 한씨가 왕세자빈의 신분으로 세상을 떠나 이듬해인 1462년(세조 8년)에 파주 보시동(普施洞)인 현재의 자리에 묘를 조성했다. 이후 1470년(성종 1년)에 장순왕후로 추존하고 능의 이름을 공릉이라 했다.장순왕후(章順王后) 이야기
장순왕후 한씨(1445~1461)는 본관이 청주인 상당부원군 한명회와 황려부부인 민씨의 셋째 딸로 1445년(세종 27년)에 사저에서 태어났다. 1460년(세조 6년)에 왕세자빈으로 책봉됐고, 이듬해에 원손 인성대군을 낳았으나 산후병으로 1461년(세조 7년)에 안기(安耆)의 사저에서 17세로 세상을 떠났다. 세조는 세상을 떠난 왕세자빈에게 장순(章順)이라는 시호를 내렸고, 성종 즉위 후 1470년(성종 1년)에 장순왕후로 추존됐다.<자료,사진출처=문화재청,공공누리집>저작권자 © 매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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