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8대 임금 예종, 안순왕후 창릉(昌陵), 첫부인 추존 장순왕후 공릉(恭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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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8대 임금 예종, 안순왕후 창릉(昌陵), 첫부인 추존 장순왕후 공릉(恭陵)
  • 김종혁 기자
  • 승인 2016.07.21 18: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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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김종혁 기자] 창릉은 조선 8대 예종과 두 번째 왕비 안순왕후 한씨의 능이다.
창릉 예종 능침
창릉은 서오릉에서 왕릉으로 조성된 최초의 능으로, 같은 능역에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서로 다른 언덕에 능침을 조성한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의 형태다.
정자각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 언덕(서쪽)이 예종, 오른쪽 언덕(동쪽)이 안순왕후의 능이다.

능의 구성
진입 및 제향공간에는 홍살문, 판위, 향로와 어로, 정자각, 수복방, 수라간, 비각이 배치돼 있다.

창릉의 두 능침은 병풍석을 생략하고 난간석만 둘렀으며, 석물의 상설은 왕과 왕비가 비슷하다.
예종 창릉 혼유석과 고석, 고석의 문양이 귀면에서 북 모양으로 바뀌었다. 이하사진 = 문화재청
예종의 능침의 장명등은 지붕돌이 없어진 상태이고, 혼유석을 받치는 고석의 무늬가 도깨비가 아닌 북고리로 조각되어 있는 것이 유일하다.

능의 역사

1469년(예종 1년)에 예종이 세상을 떠나자 이듬해인 1470년(성종 1년)에 의경세자의 의묘(懿墓, 경릉) 북쪽에 능을 조성했다. 그 후 1498년(연산군 4년)에 안순왕후 한씨가 세상을 떠나자 이듬해인 1499년(연산군 5년)에 창릉 동쪽 언덕에 능을 조성했다.

예종(睿宗) 이야기

예종(1450~1469)은 세조와 정희왕후 윤씨의 둘째 아들로 1450년(세종 32년)에 수양대군 사저에서 태어났다.세조가 왕위에 오른 후 해양대군(海陽大君)에 봉해졌고, 형인 의경세자(추존 덕종)가 20세의 나이로 일찍 세상을 떠나자 1457년(세조 3년)에 왕세자로 책봉됐다.1468년(세조 14년)에 세조의 선위를 받아 왕위에 올랐다. 즉위 초에 남이의 옥사를 진압했으며, 1469년(예종 1년)에는 세종의 영릉(英陵)을 여주로 천장했다. 그러나 재위 1년 2개월 만에 경복궁 자미당에서 20세로 세상을 떠났다.
창릉 예종 석양과 석호
예종은 효성이 지극했던 아들이었다. 조선 후기의 학자 이긍익이 지은 야사모음집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는 예종이 부왕 세조가 세상을 떠난 것에 충격을 받아 건강을 해쳤다며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예종이 세자일 때 세조가 병환이 생기니 수라상을 보살피고 약을 먼저 맛보며 밤낮으로 곁을 지키며 한잠도 못 잔 지가 여러 달이 되었다. 세조가 돌아가매 슬픔이 지나쳐 한 모금의 물도 마시지 않았으므로 마침내 건강을 해치게 되어 이 해 겨울에 세상을 떠나게 됐다".-연려실기술-

안순왕후(安順王后) 이야기

예종의 두 번째 왕비 안순왕후 한씨(출생일 불명~1498)는 본관이 청주인 청천부원군 한백륜과 서하부부인 임씨의 딸로 태어났다. 1463년(세조 9년)에 왕세자의 후궁인 소훈(昭訓, 내명부 세자궁 종5품)에 간택됐고, 예종이 즉위하자 왕비로 책봉됐다.
창릉 안순왕후 능침
예종이 세상을 떠난 후 원자인 제안대군이 왕위를 이어받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의경세자의 둘째 아들인 자산군(성종)이 예종의 양자로 입적되어 왕위에 올랐다.성종이 즉위한 후 인혜왕대비가 됐고, 연산군 즉위 후 대왕대비가 됐다. 그 후 1498년(연산군 4년)에 창경궁에서 세상을 떠났다.

제8대 예종 첫 번째 왕비 장순왕후 공릉(恭陵)

능의 구성

공릉은 조선 8대 예종의 첫 번째 왕비 장순왕후 한씨의 단릉이다. 왕세자빈의 신분에서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묘제의 형식에 맞게 조성했다.
공릉 장순왕후 능침

 진입 및 제향공간에는 홍살문, 판위, 향로, 정자각, 비각이 배치돼 있다. 홍살문과 정자각 사이에 있는 향로는 직선축이 아닌 절선축으로 조성됐다.
능침은 병풍석과 난간석을 생략했고 문석인, 석마, 장명등, 혼유석, 석양과 석호 1쌍씩 배치했다.

조선전기의 묘제의 형식에 맞게 조성했기 때문에 망주석을 생략했고, 봉분을 크게 조성했다.

능의 역사

공릉 혼유석
1461년(세조 7년)에 장순왕후 한씨가 왕세자빈의 신분으로 세상을 떠나 이듬해인 1462년(세조 8년)에 파주 보시동(普施洞)인 현재의 자리에 묘를 조성했다. 이후 1470년(성종 1년)에 장순왕후로 추존하고 능의 이름을 공릉이라 했다.

장순왕후(章順王后) 이야기

장순왕후 한씨(1445~1461)는 본관이 청주인 상당부원군 한명회와 황려부부인 민씨의 셋째 딸로 1445년(세종 27년)에 사저에서 태어났다. 1460년(세조 6년)에 왕세자빈으로 책봉됐고, 이듬해에 원손 인성대군을 낳았으나 산후병으로 1461년(세조 7년)에 안기(安耆)의 사저에서 17세로 세상을 떠났다. 세조는 세상을 떠난 왕세자빈에게 장순(章順)이라는 시호를 내렸고, 성종 즉위 후 1470년(성종 1년)에 장순왕후로 추존됐다.<자료,사진출처=문화재청,공공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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