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년 외교관의 아름다운 퇴임, 그리고 새로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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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년 외교관의 아름다운 퇴임, 그리고 새로운 시작!
  • 김종혁 기자
  • 승인 2017.02.10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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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김종혁 기자] 38년 외교관 인생의 마지막 마무리를 ‘유엔 대사’로 지내며 한국인 최초로 유엔의 양대 핵심기관인 ‘유엔 안보리 의장’과 ‘경제사회이사회’ 의장직, 그리고 ‘장애인 권리협약’ 당사국회 의장을 동시에 맡아 무리 없이 수행한 오 준 대사.아리랑TV(사장 문재완) ‘디 이너뷰’(The INNERview)에서 지난 2014년 감동연설로 전 세계 SNS에서 핫한 이슈로 떠오른 ‘국민 대사’ 오 준 前 유엔대사의 ‘말의 힘’을 재조명하고, 은퇴 후 인생 2막을 시작하는 그의 새로운 여정을 들어본다.
북한의 인권 문제가 사상 처음 안보리에 채택된 2014년 12월 22일 UN안보리 회의 현장,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북한 사람들은 그저 ‘아무나’가 아닙니다! "

(For South Koreans, people in the North are not just anybodies)"라고 말한 오준 유엔대한민국 대사의 연설이 큰 감동을 불러 일으켰다.이로써 북한 인권의 실상을 알림과 동시에 북한 이슈가 분단된 한반도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새삼 일깨워주는 계기가 됐다. 그 울림은 SNS를 통해 퍼져 나가며, 유튜브 영상 조회 수 250만 건을 기록하며 특히 젊은 층들의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나와 같은 연령배의 사람들은 북한에서 태어나거나 북한에서 온 사람들과 흔히 어울렸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북한은 우리 형제다’라는 인식이 있었다. 내 연설이 사람들이 잊어버리고 간과했던 그런 사실들을 다시 떠올리고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또한, 작년에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UN안보리가 대북제재 결의 2270호를 채택한 뒤 북한 지도부를 향해 일침을 가하는 그의 연설도 인상 깊었다. 북한지도부를 향해 추가 도발을 중단하라고 촉구 하면서 “이제 그만하세요!” 라고 짧고 강한 어조의 한국어로 말한 것이 화제가 됐다

“북한 사람들이 들어주길 바랐기에 ‘이제 그만하세요’라고 한국어로 말했다. (핵실험을 하는 동안) 일반 북한 사람들은 기아와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그가 외교관이 되었던 배경으로 그의 아버지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그의 아버지 오우홍(1913-89) 선생은 일제 강점 하에서는 항일 운동을 주도했었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12년간 1세대 외교관으로 근무했다.“어렸을 적 아버지는 미국에서 생활했던 얘기를 내게 자주 들려주었다. 큰 차를 몰았고 햄버거가 얼마나 맛있었는지 등 그 시절엔 외국에서 생활하다 오신 분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부모님이 말해준 이야기들은 특히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는 창문이 되었다.”그런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외교관의 길을 걸어온 그에게 제일 인상 깊은 순간은 1991년, 한국과 북한이 동시에 UN에 가입했을 때였다. 그는 유엔 현관 앞에 한국의 태극기와 북한의 인공기가 올라가는 장면을 떠올렸다.“내가 은퇴하기 전에 저 두 개의 국기가 언젠가 하나로 합쳐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나는 언젠가는 하나의 국기가 올라갈 거라고 믿는다.”또한, ‘UN록스’(UN Rocks)라는 UN 대사관들과 함께 밴드 활동을 했던 추억도 이야기했다. “UN록스! 내가 가장 얘기하고 싶었던 주제다. UN에서 내가 했던 것 중에 가장 보람찬 것은 대사로 구성된 밴드를 구성한 일이었다. 밴드이름은 ‘UN 대사들 또한 어떨 때는 마냥 즐겁게 놀고 싶다’라는 의미에서 지었다. 나는 드러머였는데 대학교 때부터 취미를 삼아 쳤었다. 우리들 모두 아마추어 뮤지션이었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은 남달랐다.”귀임 후, 그는 지난 1월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과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가 주최한 2017년도 제1차 장애인최고지도자포럼에 참가했다. 이 자리에서 장애인권리협약 당사국회 의장직을 수행하며 활동했던 경험을 소개하고 국내 장애인 권리 증진을 위한 제언을 나눴다.“모든 사람은 언젠가는 장애를 겪기 마련이다. 얼마나 오랫동안 겪느냐가 다를 뿐이다. 어떤 사람들은 1주일, 또 어떤 사람은 1년, 또 어떤 사람은 평생 동안 장애가 지속될 뿐이다. 우리는 장애인 인권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한때 그의 어머니도 파킨슨병으로 3년 동안 휠체어에서 지냈다. 그런 경험이 있었기에 장애인 인권 문제에 더욱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그는 앞으로 젊은 세대들과 더욱더 소통하면서 그들을 이끌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나도 젊었을 적에는 미래가 안개가 낀 것처럼 명확하지 않았다. 지금은 젊은 사람들에게 ‘기회는 가까이 있는데 보지 못하는 것뿐이다’라고 조언하고 싶다. 그냥 부딪혀라.”세계 외교 현장에서 쌓은 오준 前 유엔대사의 지혜와 경륜은 국가에도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올 3월부터 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에서 전임교수로 UN과 다자외교 등을 강의할 예정이며 앞으로 사회활동가로서의 활동도 준비하고 있다 38년 외교관 인생 그리고 귀임 후 인생 2막의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있는 오준 前 유엔대사를 ‘디 이너뷰’(The INNERview)에서 만나본다.


좌우명 : 아무리 얇게 저며도 양면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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