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인사이드]홍라희 소송 알려진 다음날의 삼성 ‘내부 부정’ 소란
[매일일보=김경탁 기자] “이건희 회장이 삼성의 자랑이던 깨끗한 조직문화가 훼손된 것을 강하게 질책했고, 부정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지시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삼성내 부정에 대해 크게 분노하면서 쓴 소리를 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그 배경을 놓고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바로 전날, 사주일가 재산증식 수단의 하나로 악용된 해외고가미술품 대행자로 삼성특검 수사 과정에 드러났던 서미갤러리 홍송원 대표가 이 회장의 아내인 홍라희 리움미술관장과 삼성문화재단을 상대로 531억원의 미지급 채권을 주장하고 나선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삼성이 “사회통념상 크지 않을 수 있는 비리”라고 밝힌 문제에 대한 이 회장의 ‘대노’가 ‘사회통념상 심각한 문제’였지만 솜방망이처벌로 흐지부지 넘어간 삼성 사주일가의 해외고가미술품 투자행각이 이슈로 떠오른 다음날이라는 점은 묘한 정서적 이물감을 자아내고 있다.
삼성테크윈 사내비리 적발에 분노 이 회장 “조직내 부정 강하게 처벌”
삼성측 “사회통념상 크지 않을 수 있는 비리” 설명…늘어나는 의문점
내부통신망 ‘마이싱글’ 초기화면에 8일 오전 게재된 경고 문구 눈길
“부정한 회사 법인카드 사용은 횡령, 술·골프 접대를 받는 것은 향응”
8일, 김순택 삼성 미래전략실 부회장은 이날 열린 수요사장단회의에서 최근 미래전략실 경영진단팀이 삼성테크윈에 대해 실시한 경영감사 결과를 보고받은 이건희 회장이 그룹 전체의 조직문화 훼손에 대해 우려를 표하면서 계열사 부정에 대해 강하게 질타했다고 밝혔다.삼성 측에 따르면 8일 열린 수요사장단회의에서 삼성테크윈 감사결과를 보고받은 이건희 회장은 “각 계열사에 대한 감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게 아니냐”며 “앞으로의 대책도 미흡하다”고 말했다고 한다.이 회장은 “해외 잘 나가던 회사들도 조직의 나태와 부정으로 주저앉은 사례가 적지 않다”며, “삼성도 예외가 아니다. 감사를 아무리 잘 해도 제대로 처벌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전 그룹 구성원들에게 부정을 저지르면 큰일 난다는 생각을 심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이 회장은 또한 “감사책임자 직급을 높이고 인력도 늘리고 자질도 높여야 한다”며 “회사 내부에서 완전히 별도의 조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지시, 이번 감사를 계기로 계열사에 대한 감사체계 재정비도 주문했다.
삼성 측은 이날 회의에 앞서 오창석 삼성테크윈 사장은 감사 결과에 대해 CEO로서 지휘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고, 즉각 사표가 수리됨에 따라 후임 대표이사 선출할 예정이라고 밝히면서도 감사 결과 내용에 대해서는 입을 닫았다.
이인용 “사회통념상 크지 않은 비리”
삼성 측이 자발적으로 밝힌 이건희 회장 대노 소식과 관련해 삼성그룹 커뮤니케이션팀 이인용 사장은 “감사 내용을 일일이 말씀드릴 수 없는 것을 양해해 달라”며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철저히 함구했다.
이 사장은 감사 시점과 방법, 주체 등에 대해서도 “외국 다른 기업의 경우 공시나 주주총회를 통해 알려진다”며, “우리는 출입기자에게 미리 말씀을 드리는 것이니 자세한 부분은 말씀 드릴 수 없다는 것을 이해 바란다”는 말로 답변을 피했다.특히 부정의 종류에 대한 질문에도 “일일이 내용을 다 확인해줄 수는 없다. 깨끗한 조직문화가 훼손된 부분이다”라고 답한 이 사장은 최근 삼성테크윈이 K9 자주포 비리 납품으로 조사를 받은 것과의 연관성에 대한 질문에는 “관련 없다”고 답했다.이 사장은 “회장님이 직접 챙기시니까 더 많은 내용을 알게 되는 부분이 있다”며, “사회 통념에 비춰보면 크지 않을 수 있다. 깨끗한 조직문화를 자부해 온 삼성에는 이런 일은 당연히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냐는 정도”라고 설명했다.
오창석 사장이 사의를 표명한 것에 대해서도 이 사장은 “본인이 직접 해당된 것이 아니라도 CEO로서 직접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사의를 표명한 것”이라는 말로 더 이상 구체적인 설명은 하지 않았다.
‘에스원 직원 강도 사건’ 수준? 글쎄…
재계에서는 타 재벌그룹에 비해 사장단 인사 시기와 모양새를 중요시했던 삼성의 과거 인사 사례를 볼 때 ‘업의 본질’을 일탈한 중대한 잘못이나 윤리관 자체를 의심케 하는 부도덕한 행위가 조직내에서 벌어진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특히 이번과 같이 사내문제가 발생해 CEO가 사의를 표명하자마자 즉각적인 사표수리가 이뤄졌던 최근의 사례로 2007년 사회적 파장을 낳았던 에스원 직원의 강도행각과 그에 대한 에스원 사측의 황당한 대응 사건이 참고할만한 사례로 지목되고 있다.삼성계열 보안업체인 에스원 직원이 주택에 침입해 금품을 강탈했고 회사 측은 그가 현직 직원이 아니라고 거짓말까지 한 것으로 드러난 이 사건과 관련해 당시 에스원 대표이사였던 이우희 사장이 사표를 내자 즉각 수리된 바 있다.
도둑 잡는 회사인 에스원 직원이 도둑질을 했던 이 사건은 ‘업의 본질’을 훼손한 사건이라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삼성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이번에 적발된 삼성테크윈 사내부정 사례는 ‘업’의 본질과는 크게 관계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8일 사내통신망에 올라온 경고문
삼성 미래전략실의 경영진단팀은 지난 3월부터 2개월간 삼성테크윈 전(全) 직원을 샅샅이 훑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무려 120명이 넘는 감사요원이 협력업체들을 일일이 접촉해 식사접대·골프접대 명단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삼성 측은 “이번 경영진단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비리사항이 적발됐는지 일일이 공개할 수 없지만 납품 대가로 금품을 수수하는 정도의 심각한 비리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고 한다.구체적인 비리내용을 추정할 수 있는 단초는 삼성 내부통신망 ‘마이싱글’ 초기화면에 8일 오전부터 게재된 “부정한 회사 법인카드 사용은 횡령이며, 술·골프 접대를 받는 것은 향응”이라는 내용의 경고문구이다.경고 문구를 통해 유추되는 것은 이건희 회장이 ‘깨끗한 조직문화가 훼손됐다’며 대노했다는 삼성테크윈 사내부정이라는 것이 가족들과 식사하면서 회사 법인카드를 사용하거나 대낮에 사우나에서 법인카드 이용, 거래업체로부터 술·골프 접대를 받은 것 등이라는 말이다.<조선일보>는 9일자 기사에서 “삼성테크윈 주변에서는 70명이 적발됐으며 구매부서 일부 직원들은 이미 인사 조치를 당했다는 말도 나돌고 있다”며, “일부 임원들까지 비리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 기사는 “특히 방산사업부문 쪽에서는 협력업체에 과도한 요구를 했다가 적발된 사례가 많다”며, “삼성테크윈에서 협력업체에 하도급을 줄 때 유세를 떨면서 술접대에서 골프 회원권까지 별별 요구를 다 한다”는 기계 부품 협력업체 관계자의 증언도 공개했다.
깨끗한 조직문화 훼손…윗물은?
삼성테크윈에 대한 내부감사가 시작된 것은 지난해 연평도 피격 사태 당시 대응에 나섰던 K9 자주포 6문 중 3문이 불량품으로 드러나면서 이를 납품했던 삼성테크윈이 대외적으로 큰 망신을 당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삼성 측은 이번 감사가 K9 자주포 납품비리 조사와는 전혀 무관한 일이라고 밝혔는데, 만일 이번 감사에서 드러난 문제가 K9 자주포 납품비리와 관련된 것이었다면 이건희 회장의 ‘대노’에 대해 쉽게 납득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업’의 본질에 관련된 사안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삼성 주변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이야기처럼 법인카드 사적 이용 같은 소소한 문제로 그렇게 대노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건희 회장은 ‘깨끗한 조직문화’ 훼손의 윗물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자성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직원들이 법인카드로 가족과 식사대금을 결제하는 것과 사주일가 재산증식을 위해 회사의 기회이익이 편취되는 것, 납품업체로부터 술과 골프접대를 받는 것과 전방위 로비네트워크 조성을 위해 정계?관계?법조계 관계자들에게 정기적으로 떡값(이라 쓰고 ‘뇌물’로 읽는)을 상납하는 것을 비교하면 ‘사회통념상’ 후자의 경우들이 훨씬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이다.삼성테크윈에 대해 실시한 경영감사 결과를 보고받은 이건희 회장은 그룹 전체의 조직문화 훼손에 대해 우려를 표하면서 “각 계열사에 대한 감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게 아니냐. 앞으로의 대책도 미흡하다”고 말했다고 한다.이 회장은 “감사를 아무리 잘 해도 제대로 처벌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전 그룹 구성원들에게 부정을 저지르면 큰일 난다는 생각을 심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하지만 시민사회진영에서 ‘철저한 봐주기 수사로 일관했다’고 비판했던 2008년 삼성특검 수사와 재판을 통해 이건희 회장에게 내려진 사법적 처분은 2009년 말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대통령 단독특사를 통해 무위로 돌아갔다.대한민국 사회에서는 돈과 권력만 있으면 부정을 저질러도 큰일이 나지 않는다는 교훈(?)을 제대로 보여준 리더의 도덕교과서 같은 연설에 감읍해 잃어버린 도덕성을 회복할만큼 삼성 직원들이 순수한 마음을 갖고 있는지는 의문이다.‘기업인 이건희’ 스토리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은 1993년 프랑크푸르트 선언이다. 당시 이 회장은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는 공격적인 슬로건으로 신경영의 시작을 알렸다. 이 회장이 그때 마누라와 자식도 함께 변화시키려고 노력했다면…지금 세상은, 그리고 삼성은 어떻게 달라져있을까?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 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20원을 받으러 세번째 네번째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로 가로놓여 있다
…중략…
아무래도 나는 비켜 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 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비켜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1원 때문에
우습지 않느냐 1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 대한민국의 대표적 저항시인 김수영(1921~1968) 시집 『거대한 뿌리』(1974년 민음사) 중에서
저작권자 © 매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