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김경탁·박동준 기자] 조강래 사장이 IBK투자증권 사령탑으로 선임된 지 한 달이란 시간이 지났다. 전임 이형승 사장이 실적 부진을 이유로 퇴진한 후 회사의 ‘구원투수’로 오게 된 조 사장의 어깨에 IBK투자증권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과언이 아닐 정도다.IBK투자증권은 지난 5월17일 이사회를 열어 조강래 BNG증권 대표이사를 사장으로 신규선임하고 이어 31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신임사장으로 임명했다. 지난 2년간 이형승 사장 체제 하의 IBK투자증권은 업계 내에서 눈총을 받을 만큼 공격적인 행보를 펼쳤지만 오히려 회사의 적자는 누적됐고 실적 모멘텀 부재로 인해 헤어 나올 수 없는 나락의 길을 걸어왔다.
세계적 증시 불황기의 역주행…확장 경영으로 조직 방만화
이형승 전 사장 재임 기간 동안 지점 수 4개→30개로 확장
기강 해이도 심각…첫 대외활동이 ‘검찰 조사’일 뻔한 조강래 사장
조직 슬림화·고객 서비스 축소, 후폭풍 어디까지? 업계 관심 집중
조강래 사장은 금융계에서 ‘구원투수’로 불린다. 조 사장이 2005년부터 2008년까지 대표이사를 맡았던 산은자산운용의 경우, 대우채 사태 등으로 급격하게 쇠락의 길로 들어선 상태였다. 한때 수탁고가 14조원이 넘나드는 이 회사는 조 사장이 바통을 넘겨받았을 당시에는 수탁고가 1조원을 밑도는 상태였다.조 사장은 산은자산운용을 살릴 묘책으로 ‘대안투자’를 선택했다. 주식·채권 같은 전통적 투자처 대신 부동산, 에너지, 귀금속 등을 대상으로 새로운 개념의 투자 상품을 설계해 판매했고, 대히트를 쳤다. 대안투자 외에도 구조화 상품 개발과 투자에서도 조 사장의 아이디어는 번뜩였다. 기숙사 조성이나 확충이 필요한 대학교와 협력해 ‘기숙사펀드’를 조성해 큰 호응을 얻었다. 이 같은 상품개발 등으로 조 사장이 산은자산운용 취임 당시 1조원이던 수탁고를 7조원으로까지 끌어올리고 2008년 10월 BNG증권으로 자리를 옮겼다. 산은자산운용과 마찬가지로 BNG증권 역시 조 사장이 취임할 당시 상황은 매우 좋지 못했다. 2000년 위탁 영업 전문 증권사로 시작한 BNG증권은 별도의 영업점을 두지 않아 증권업계 내에서 인지도가 낮았고 실적 역시 적자를 면치 못했다.
하지만 조 사장이 2008년 10월 취임해 IBK투자증권 대표이사로 스카웃되면서 사직한 5월까지 불과 2년 8개월 사이에 법인영업 본부 신설과 같은 조직 확충과 개편을 통해 고객을 확보하고 회사를 흑자전환 시키는데 성공했다.
구원투수에게도 어려운 상황
하지만 IBK투자증권의 상황은 노련한 구원투수인 그에게도 녹록치가 않아 보인다. 이사회에서 선임이 결정된 직후인 지난 5월, 조 사장은 IBK투자증권이 중소형사임에도 군살과 임원이 너무 많다며 조직슬림화를 시사하면서 회사의 상황이 좋지 않다고 토로했다.조직확대를 꾀했던 전임 사장과 반대로 조 사장은 최우선 과제로 조직개편을 꼽았고, 조 사장의 이 같은 의지에 IBK투자증권 직원들은 구조조정 염려로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이 증권가의 전언이다. 2008년 신설돼 조직 전체가 스카웃인력으로 채워져 내부 결속력이 크지 않은 이 회사에는 노동조합마저 설립되지 않은 상태여서 인적 구조조정이 일어날 경우 아무런 보호 장치 없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전국증권산업노동조합 관계자는 “아직까지 IBK투자증권의 노조설립 움직임은 파악되지 않고 있지만 실제 구조조정이 일어나게 된다면 노조가 설립될 것으로 보여진다”며 “IBK투자증권 노조가 신설된다면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이형승 흔적 지우기
신임 조강래 사장이 구상하고 있는 최우선 과제는 전임자가 남겨놓은 흔적을 지우고 새로운 밑그림을 그리는 일로 보인다.
이형승 전 사장은 지점을 4개에서 30여개로 확대하고 주식연계증권(ELS), 주식연계워런트(ELW) 등 파생상품에도 적극 뛰어들었다. 조직적으로 혁신적 인사시스템 ‘열린 채용’을 도입하며 인재등용의 문을 넓혔고, 트위터를 적극 활용하는 신세대 CEO로 이름을 날렸다. 이 전 사장은 파격적인 서비스도 여럿 선보였다. ELS 상품이 제시하는 수익률을 달성할 수 있는 확률을 알려주는 ‘ELS 진단 서비스’를 개시해 최고수익률을 달성할 확률, 원금보장이 될 확률, 원금손실 시 예상 자산규모 등을 고객에게 보여주는 등의 서비스를 개시했다. 업계에서는 이 서비스가 기초자산의 과거 변동성이 향후에도 지속된다는 가정 하에 제공되기 때문에 금융위기 발생에 따른 주가왜곡 등 비정상적인 외부환경을 반영하지 못한 반쪽짜리 서비스라고 평가했다. 이 전 사장은 이 뿐 아니라 주가매입평균단가보다 낮게 주식을 매도할 경우 매매수수료를 받지 않는 ‘로우컷 서비스’도 도입해 시행했다. 증권사의 주된 수익원인 수수료 수익을 포기하면서 까지 고객들을 유치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 전 사장에게는 운이 따르지 않았다. 아니, 시장의 대세 흐름을 잘못 읽었다는 분석이 더 맞을 수도 있겠다. 이 사장 재임기간 금융위기로 인해 증권업계 전체가 위축됨에 따라 혁신적인 팽창 정책들은 회사의 실적악화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2008년 64억 순손실을 기록했던 IBK투자증권은 이 전 사장 취임 첫해인 2009년 48억 순익을 내며 턴어라운드에 성공하기도 했으나 지난해 75억원의 손손실을 기록했으며, 증권사 수익성을 나타내는 자기자본이익률(ROE)은 -1.9%로 악화됐다. 조직개편 시작... 인사 구조조정 돌입?
조강래 사장은 회사에 대한 전반적인 파악을 발 빠르게 마친 뒤 즉각적으로 조직개편에 나섰다. 취임 후 불과 일주일여 만인 8일 IB사업, 홀세일, 리테일 등 주요 사업부문의 본부장 물갈이를 단행했다. IB사업본부장으로 대우증권 출신의 정중명 전무가 영입됐다. 과거 대우증권에서 기업컨설팅(현 커버리지 조직) 본부를 이끌었던 정 본부장의 네트워크와 노하우를 바탕으로 IB사업본부에 전문성을 강화하겠다는 것으로 비춰진다.지난 5월 이사회에서 선임된 직후 조 사장이 “IBK투자증권의 나아갈 방향은 중소기업 IB에 특화된 증권사”라고 공언했던 점을 감안하면 정중명 전무 영입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전까지 IBK투자증권의 IB사업부를 이끌었던 인물들은 이형승 전 사장 서상훈 전 본부장, 허준 전무 등. 그러나 이들은 이렇다 할 성과를 못낸 채로 자리를 비워야 했다. 반면 이번 정중명 신임 본부장은 포스코건설, LG이노텍 IPO 주관 계약 등 굵직굵직한 거래를 성사시키는 등 IB 경험이 풍부한 인사로 평가되고 있다. 이외에도 홀세일 총괄 부문에는 BNG증권 출신의 이영준 전무를, 경영지원실장으로는 산은자산운용 출신인 김영근 상무를 영입했다. 과거홀세일 사업본부를 담당하던 서상운 전무는 리테일을 총괄하게 됐다. 이번 신규 영입인사들의 특징으로는 조 사장과 과거 호흡을 맞췄던 인사가 다수 포진해 있다는 것이다. 이영준 전무는 조 사장과 같이 BNG증권에서 넘어왔고 이전에도 유리자산운용과 산은자산운용에서 호흡을 오랫동안 맞춘 경험이 있다. 김영근 경영지원실장 역시 유화증권 및 산은자산운용 출신으로 조 사장과의 인연이 있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조강래 대표가 IBK투자증권 신임 사장으로 부임하면서 주요 부문 수장을 자신과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인사로 편성하면서 회사 분위기 쇄신에 나서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조 사장은 주요 부문 수장을 바꾸는 것 이외에도 전임 이 사장이 벌려놓은 조직에 대한 슬림화에 나설 전망이다. 조 사장은 취임 직후 한 매체 인터뷰에서 “IBK증권이 중소형사임에도 군살이 너무 많고 임원도 많다”는 말로 앞으로 불어 닥칠 인사태풍을 예고했다. 조 사장은 취임 직전에 몸담았던 BNG증권에서도 조직 슬림화를 기본으로 하는 조직 개편을 통해 회사를 흑자전환시키는데 성공한 바 있다. 이와 관련 IBK투자증권 관계자는 회사 내부 분위기를 묻는 질문에 “조강래 사장이 취임한 이후 회사 내부 파악 등을 하느라 전체 분위기가 바쁘게 돌아가는 것 같다”고만 답하고 내부분위기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조직 개편 외에 회사의 실적 측면에서 지속적으로 부담을 가중시켜왔던 ‘로우컷 서비스’도 중단된다. IBK투자증권은 지난 17일 회사 홈페이지 공지로 로우컷 서비스를 7월 18일부로 중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고객서비스의 일방적 축소인 만큼 고객들의 반발이 예상되는 부분이다. 이를 접한 대다수의 고객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 IBK투자증권 고객은 “그동안 눈물을 머금고 손절매를 할 때 거래수수료가 환급되는 것을 보고 조금이나마 위로가 됐는데 서비스가 중단이 돼 아쉽다”고 말했다.
내부기강 어찌 잡을꼬
근래들어 IBK투자증권은 부진한 실적을 제외하고서라도 크고 작은 문제로 시달려왔다. 지난 3월에는 직원이 수백억원대의 고객 자금을 편취해 유용하다 적발됐으며 5월에는 ELW 부당거래 문제로 검찰의 압수수색을 당했다.
검찰은 일반투자자보다 빠른 거래가 가능한 전용 전산망을 스캘퍼(초단타 매매자)에게 특혜로 제공한 행위 자체가 불공정거래라고 판단하고 증권사로부터 전용선을 제공받아 ELW 매매를 통해 고수익을 올린 스캘퍼들을 구속 기소했다. 증권사들이 수수료 수입을 늘리기 위해 스캘퍼에게 부정한 수단을 제공했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으로, 관련 의혹을 받고 있는 증권사 대표들이 검찰이 줄줄이 소환돼 불구속 기속 처분을 받았다.이와 관련해 IBK투자증권 관계자는 “ELW와 관련해서 회사가 검찰 조사를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대표 소환은 해당 사항이 없다”고 말했다. 취임 후 첫 대외 활동이 검찰 조사를 받는 것이 될 뻔한 조강래 사장. 조 사장은 지난 5월 신임 대표이사로 내정된 직후 한 매체 인터뷰에서도 IBK투자증권의 조직내부 기강 문제를 거론한 바 있다. 해이해진 내부 기강을 다시 확립함과 동시에 수익 창출에 대한 생각으로 마음 속이 복잡한 조강래 사장. 산적한 난제들과 녹록치 않은 내외부 환경을 어떻게 타개해 나갈지 조 사장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