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노동계 15년 숙원 ‘복수노조’ 허용…의미와 한계
[매일일보=김경탁·송병승기자] 1996년 12월26일 신한국당(한나라당의 전신)의 노동법 날치기 통과 이후 15년 동안 유지되어왔던 위헌적 법률 ‘복수노조 설립 금지’ 조항이 오는 7월1일부로 사라진다.
정부와 재계는 ‘복수노조’ 시행을 통해 그간 정체되어 있던 노조문화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며 기대하고 있는 반면 노동계는 관련 법안을 다시 바꾸기 위한 대정부 투쟁을 예고하고 있어 상호간의 마찰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수노조시대’의 개막은 한국 노동운동 역사에 새로운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기존 단일노조 체제 하에서도 ‘합법적 파업’이 거의 불가능하고, 새로 시행되는 복수노조 제도 역시 여전히 노동3권중 단결권을 제외한 노동 2권에 대해 심각한 제약을 가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지만 ‘노조도 경쟁하는 시대’가 바꿀 것은 여전히 많다.김영훈 위원장 “노동 3권도 보장 못받는 복수노조는 허울 뿐”
“소수노조, 교섭 못하고 교섭이 없으니 결렬 후 파업도 못해”
기존 노조에도 변화 불가피…운영방식 민주화 및 내부 정화 기대
미숙한 토론 문화 속 경쟁체제 도입, 감정 대립으로 이어질 수도
‘단체교섭권’이라는 진입장벽
복수노조 시행에 대해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은 “노동 3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노조는 노조라 볼 수 없다”며 “소수노조는 교섭도 못해보고, 교섭이 없으니 결렬 후 파업도 못하는 이것은 허울만 좋은 복수노조 허용”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헌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은 노동자가 노조를 결성할 단결권, 단결돼 만들어진 노조가 사측과 교섭할 권리를 단체교섭권, 단체 교섭이 이루어 지지 않을 경우 파업이나 폐업 등의 집단적 행동을 하는 것을 단체 행동권을 말한다.그러나 이번에 시행되는 복수노조 관련 법조항은 노조가 사측과 교섭할 권리를 ‘교섭단체단일화’를 통해 정해진 대표노동조합만이 할 수 있게 규정하고 있다. 교섭권은 단체행동권의 전제조건이기 때문에 단결권을 제외한 노동2권이 빠진 복수노조는 ‘3분1쪽 짜리’인 셈이다.교섭단체 단일화는 원칙적으로는 노조들 사이에 자율적으로 해야하지만 합의에 실패하면 과반수 노조가 ‘교섭단체’로 인정된다. 만약 과반수 노조가 없을 경우에는 모든 노조가 공동대표단을 구성할 수 있다. 과반수 노조는 2개 이상의 노동조합이 위임 또는 연합 등의 방법으로도 인정될 수 있으며 공동대표 교섭단은 노조끼리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지만 전체 노조 가입 근로자 수의 10% 이상을 확보한 노조만 참여 할 수 있다.[ex. 노조가입 대상자가 100명인 사업장에서 기존 노조 조직률이 50%(50명)일 경우, 5명 이상이 모인 노조가 해당됨) 소수노조는 단일화에서 매우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되고, 심지어 노조원이 10%에 미달하는 신생노조의 경우 공동 대표교섭단에조차 참여하지 못하게 만든 이 ‘교섭단체단일화’ 규정은 신생 노조에 대한 진입장벽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각각의 복수 노조가 개별 교섭을 할 수 있다는 규정도 있지만 사실상 유명무실한 조항이다. 자율적 교섭대표 선정 이전까지 각 노조는 사측에 개별 교섭을 요구할 수는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사측의 동의가 필요하며, 특정 노조와 개별교섭에 응한 사용자는 모든 노조와 개별 교섭에 응할 의무를 지게 되기 때문이다.경쟁 혹은 갈등
복수노조가 시행되면 2명 이상의 노동자가 모여 노조를 만들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 이는 노동환경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으로 전망된다.현재 단일노조 체제로도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노조 상호간의 견제 아래 노조의 영향력이 점점 더 약화된다면 노동운동의 미래는 복수 노조의 시행으로 인해 더욱 어두워 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이유이다.
‘무노조 사업장’의 노조 조직
복수노조 시행과 관련해 노동계가 가진 최대 관심사 중 하나는 조합원 확보다. 현존하는 최상위 노조인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에 이어 출범을 앞둔 제3노총(가칭 국민노총)은 각자 자신들이 확보하고 있는 사업장과 노조원들을 유지하고 새 사업장과 새 노조원을 받아들이기 위한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노동계의 관심이 가장 높게 쏠린 곳은 범삼성가 그룹 계열사들과 포스코로 대표될 수 있는 ‘무노조 사업장’ 이다. 특히 삼성그룹 계열사 78개 중 현재 서류상으로는 7개의 회사 노조가 존재하지만 모두 페이퍼 노조에 불과하다. 삼성은 故 이병철 회장이 남긴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노조는 안된다’는 유훈에 따라 철저히 무노조 경영을 실천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복수노조 시행에 대한 삼성의 중압감은 엄청 날 수밖에 없다. 삼성은 현재 고용노동부 국장급을 영입하고 ‘무노조 특별교육’을 그룹차원에서 실시하고 있다. 삼성전자 일부 계열사의 노사협의회 대표 선거를 간선제에서 직선제로 변경하는 등의 ‘회유책’을 내놓는 한편 국제노동기구에 노조가 아닌 근로자 대표제의 요건에 대해 공식 질의 하는 등 대응책 마련에 분주한 것으로 전해졌다. 포스코는 복수노조 설립이 현실화 될 가능성을 염두해 두고 노사관계를 우호적으로 가져가기 위한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는 1991년까지 노조원 2만명이 넘는 강성노조로 이름을 알렸지만 현재는 노조원 15명 정도의 유명무실한 상태다. 노조를 대신해 지난 1997년 출범한 노경협의회는 직원들이 직접 선출한 근로자위원과 경영자위원 각각 10명씩 20명 및 과공장위원 430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실질적인 노사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포스코 관계자는 “현실화되기에 앞서 특별한 대책을 마련해 복수노조 설립 자체를 막는데 주력하기보다는 새로운 노조가 생겨나더라도 지금껏 유지돼 온 노사관계의 큰 틀이 동요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삼성노동자 조직을 위한 대책위원회’를 출범하고 삼성노조 설립을 공언하고 있다.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은 “빠른일내에 삼성에 민주노조를 건설하겠다”면서 결의를 다졌고 삼성내부 노동자들의 요구를 반영하는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한국노총도 삼성전자 등 계열사 직원을 개별 접촉하며 노조 설립을 준비중이다. 과거 삼성에서 노조 결성을 시도했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포섭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복수노조가 시행되어 노조가 설립된다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노조의 활동은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페이퍼 노조에 많은 인원을 가입시켜 ‘교섭단체단일화’ 조항을 근거로 교섭단을 꾸리는 것조차 못하게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삼성, 포스코에 설립한 노조가 조합원 수 일정수준 이상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설립된 노조는 아무것도 해보지 못한 채 노조자체의 존립도 위태로운 상황에 놓일 수 있다.노동계 관계자는 “노조 설립을 준비하고 있더라도 무턱대고 설립신고를 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최대한 준비를 갖추고 사측이 탄압하더라도 견딜 수 있을 만큼이 되면 공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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