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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는 “故 이재민 기관사의 죽음에 공사는 반드시 책임져야 한다”며 지난 19일 오후 성명서을 발표했다. 지난 3월 12일 오전 8시 왕십리역에서 평소 공황장애를 앓던 도시철도 故 이재민 기관사가 달리던 열차에 몸을 던져 자살하는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그가 공황장애로 인해 겪었을 심적 고통은 그가 다니던 한의원의 진료기록 “열차에서 뛰어내리고 싶다”에서도, 작년 6월 공황증으로 열흘간 휴가를 낸 후 병원 치료를 받았지만 호전이 없자 올해 2월 회사에 내근직으로 전직 신청을 한데서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그를 공사는 외면했고, 그가 의사에게 토로했던 죽음의 공포감은 정말로 현실이 되어버렸다.도시철도 기관사들의 정신건강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2003년에도 공황장애를 앓던 2명의 기관사가 선로에서 달리던 열차에 치여, 자신의 고향인 여수 돌산대교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때 처음으로 지하철기관사들의 정신건강문제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2007년 가톨릭대학교가 도시철도기관사를 대상으로 한 특별건강검진에서 우울증은 일반인의 2배,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는 4배, 공황장애는 7배나 될 정도로 도시철도 기관사들의 정신건강문제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었다. 그들에게 정신건강문제가 유난히 더 많이 발생하는 것은 공황장애의 원인으로 일부 생물학적 요인도 있을 수 있으나, ‘심한 사회적 스트레스’ 때문이다. 도시철도 기관사들의 경우, 어둡고 밀폐된 지하공간에서 장시간 운전해야 하는 노동환경, 혼자서 열차운행 중 일어나는 모든 일을 감당해야 하는 1인승무제로 인한 업무스트레스 등을 노조는 지적한다. 2007년의 가톨릭대 조사에서도 기관사들이 운전 중 겪는 ‘인명 사상사고의 경험’과 ‘1인 승무제’로 인한 업무적, 심리적 부담이 정신질환 발생과 밀접히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하고, 1인승무를 2인승무로 전환할 것을 강력히 권고했다. 그러나 2명의 기관사가 공황장애로 세상을 떠난지 9년이 지난 지금, 혼자서 운전하면서 곡선의 승강장을 감시해야 하고 객실 출입문을 열고 닫고, 각종 계기판을 감시하고, 행복방송 등 각종 안내방송도 해야 하고, 객실 인터폰을 받으며 민원업무도 해결해야 하고, 사상사고 처리도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1인승무’의 업무적, 심리적 부담의 현실은 변함이 없다. 끊임없는 긴장으로 몸과 마음을 피로하게 만들고, 개인별 업무실적 관리로 현장통제의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수동운전’은, 시민 안전이 우려된다며 국토해양부에서 시정을 권고했음에도, 수년간 강제됐다. 아픈 노동자가 사용하는 병가를 경영평가의 지표로 삼아 치료조차 받지 못하게 하는 노동자 건강권에 대한 공사의 현장통제는 더욱 심해졌다. 9년 전보다 기관사들의 정신건강은 더 나빠졌을 가능성이 크다. 공황장애는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대부분은 상당한 호전을 볼 수 있지만, 10~20%는 만성화하여 우울증이 합병되고 자살의 우려도 분명 있는 질병이다. 공사는 본인의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공황장애와 우울증으로 고통스러워하던 그가 마지막 출구로 생각했을 전직 신청을 마땅히 받아들였어야 했다. 공사는 기관사들의 정신건강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업무적, 심리적 부담을 주는 1인 승무제와 같은 노동환경을 개선했어야 했다. 공사는 업무상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정신질환에 대해 충분히 치료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고, 업무복귀 시에도 본인의 의사를 우선적으로 존중하는 노사문화를 만들었어야 했다. 공사 경영진의 실적 쌓기와 더욱 심해진 현장 통제 속에 고인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고 말았다.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고인의 안타까운 죽음에 공사의 경영진들은 반드시 책임져야 한다. 그것은 제2, 제3의 죽음이 발생하지 않도록 고인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노동환경과 현장통제를 바꾸는 것이며, 아픈 노동자가 충분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는 일이다.고인을 죽음을 내몬 공사의 사장과 경영진들은 고인을 대신해서 유족에게 사과하고 고인을 산재로 인정해야한다. 또한, 아프면 충분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노동자의 건강권을 보장하며, 1인승무제를 폐지하고 기관사의 작업 환경을 개선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