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광 20여년, 광산노동자들은 여전히 울고 있다
상태바
폐광 20여년, 광산노동자들은 여전히 울고 있다
  • 류세나 기자
  • 승인 2008.09.26 19: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제의 ‘산업역군’들, 진폐증과 생활고에 힘겨운 삶…합병증 발견에 ‘축하’(?)

정부지원 받는 요양등급 ‘하늘의 별따기’…브로커 통한 뒷거래?합병증 고의 유발도
가벼운 활동에도 숨 ‘헐떡’ 경제활동 불가능…진폐환자 89% ‘돈 없어’ 치료 못 받아

[매일일보닷컴] 지난 24일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열린 <재가진폐환자 건강복지실태> 토론회장은 ‘기침소리’로 가득했다. 한쪽에서 그쳤다 싶으면 또 다른 쪽에서 ‘쿨럭쿨럭’. 이날 자리에 참석한 80여명의 진폐환자들의 기침소리는 4시간동안 진행된 토론회 내내 이어졌다.

이들은 한 때 우리나라의 ‘산업역군’이라 불리며 젊은 시절을 열악한 지하탄광에서 밤낮없이 탄을 캐던 광산 노동자들로 지금은 과거의 ‘건장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이 때 얻은 진폐증으로 일상생활조차 어려운 노인이 됐다.

이에 정부는 지난 2001년 진폐환자보호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이들에 대한 지원을 약속했지만 7년이 지난 지금까지 대다수의 진폐환자들에게는 치료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 지난해 11월 7일 진폐환자들이 강원 태백시 황지동에서 무거운 갱목을 등에지고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불을 훔쳐 인간에게 전해준 죄로 그리스로마 신화의 프로메테우스는 독수리에게 생간을 쪼이는 형벌을 받았습니다. 우리 광산노동자들 역시 국민들에게 따뜻함을 선물하고 외화를 벌어들이기 위해 어두운 먼지구덩이 작업장에서 목숨을 걸고 석탄을 캐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우리에게 남은 건 폐에 구멍이 뚫려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살아야하는 신세가 된 것뿐입니다. 또 진폐가 확인되더라도 합병증이 나타나지 않으면 정부에서 지원하는 입원치료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 진폐환자들 좀 살려주십시오.”

한국진폐재해자협회 주응환 회장은 협회가 설립된 지난 2004년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다. 수년 간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해도 현실은 바뀌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진폐환자보호종합대책, 누굴 위한 법인가

노동부에 따르면 2007년 12월 현재 전국의 진폐재해자 수는 1만7,542명이다. 그러나 보통 짧게는 5년에서 길게는 30년까지의 잠복기를 거친 후에 증상이 드러나는 진폐증의 특성상 지난 1989년 폐광을 한 이후로도 해마다 진폐환자는 꾸준히 늘어가고 있는 추세다. 즉 오는 2020년까지 진폐환자는 계속해서 나타날 것이라는 얘기다.  이에 정부는 지난 2001년 9월 진폐환자를 위한 특별법을 마련, ‘요양’이라는 제도를 두고 휴업급여, 치료비, 자녀학자금, 간병비, 유족보상금 등의 혜택을 주고 있다. 하지만 요양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진폐증과 함께 폐결핵, 흉막염, 계기종, 원발성 폐암 등 정부가 인정하는 합병증을 앓고 있어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1만7천여명의 진폐환자 중 케어센터에서 정부의 도움으로 요양 중인 환자는 3,734명에 불과하고 대부분이 병원에 입원요양치료를 받고 있지 않은 재가(在家带孩子) 진폐환자로 남아있다. 정부가 대안으로 내놓은 특별법이 진폐환자들에게 실질적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 이게 바로 재가진폐환자들이 요양승인을 받기 위해 스스로 몸을 망가뜨리고 브로커를 통한 뒷거래를 시도하고 있는 이유다. 또 정부는 특별법에 재가진폐환자의 생계비 지원 내용을 포함시켰으나 이는 현재까지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에 노동건강연대와 천주교노동사목은 지난 24일 <재가진폐환자 건강복지실태 토론회>를 열어 진폐환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특별법으로의 개정을 촉구했다. 

언제는 산업역군이라더니 이제는 산업쓰레기(?)

▲ 사진 속 사진 캡션- 입원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는 진폐환자들이 지난해 11월 7일 강원 태백시 황지동에서 정부의 월 73만원의 생계비지원을 촉구하며 혈서를 쓰고 있다.
이날 토론회장에서 발표된 연구결과에 따르면 재가진폐환자의 건강과 복지실태는 이들이 사회에서 외면당하고 것처럼 말 그대로 ‘암담했다’.

한림대학교 산업의학과 주영수 교수팀이 지난 5월부터 2달여간 재가진폐환자 1,300여명을 대상으로 면접조사한 결과, 이들 중 89%가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진폐증은 치료할 수 없는 불치병이다. 게다가 지속적인 치료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심폐기능이 더욱 악화돼 죽음에까지 이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대부분은 60세 이상의 고령이고 가벼운 활동에도 숨이 차는 진폐증을 앓고 있어 경제활동도 할 수 없다. 때문에 치료를 받을 만한 경제적 여유가 되지 않는 것. 이와 관련 주영수 교수는 “재가진폐환자들의 평균 가족구성원 수는 2.13명(본인포함)인 반면 이들의 전체 월 평균 수입은 58만6천원으로 이는 지난해 2인 가족 최저생계비 73만4천원보다 적은 금액”이라고 전했다.서울대 보건대학원 백도명 교수는 “광물분진 노출 작업자들 대부분에게 나타나는 속발성 기관지염 등의 경우는 요양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일부 재가진폐환자들은 경제적 보상을 받기 위해 기능장애를 고의로 방치해 합병증을 유발시키기도 한다”고 말했다. 

피눈물 흘리는 ‘프로메테우스’의 후예들

지난해부터 진폐환자들에게 생계비를 지원하는 내용의 특별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노동부는 최근 이들에게 국민 기초생활 수급자 1인 가구 지급액인 40만원을 지원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이에 대해 한국진폐재해자협회(이하 한진협)는 보건복지부가 2007년에 정한 ‘2인 가족 최저 생계비’ 월 73만원을 지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와 관련 한진협 주응환 회장은 “최저생계비 산정은 통상 ‘건강한 가정 기준’이지만 진폐환자 가정은 병원비 지출 등 생활비가 더 많이 든다”고 이유를 설명했다.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성희직 전 강원도의원 역시 “재가진폐환자들의 생계대책문제는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절박하고 시급한 사회문제”라며 “우리 정부는 과거의 산업역군들의 피눈물을 닦아주기보다 ‘장사꾼 셈법’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쉽게 수용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노동부 조병기 산재보험과장은 “정부는 여러 이해관계들의 형평성을 고려해 대안을 선택?결정한다. 광산업의 규모가 줄어든 만큼 다른 업종에서 관련 재정을 부담해야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진폐환자들이 요구하는 만큼은 들어줄 수 없다”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