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인구 늘어 가는데 집 없는 사람은 없다고?
상태바
빈곤인구 늘어 가는데 집 없는 사람은 없다고?
  • 류세나 기자
  • 승인 2009.04.03 20: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빈곤가구율↑, 최저주거기준 미달가구↓…이상한 아이러니 왜

만화방, 찜질방, PC방 등 비거주용 시설로 몰려
한 달 중 하루도 일 못한 준노숙인 무려 23.3%
일자리 없어 ‘하룻밤 2천원’ 만화방도 못 들어가

[매일일보=류세나 기자]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빈곤가구율은 1996년 3.1%에서 2006년 11.6%로 8.5%p 증가했다. 반면최저주거기준 미달가구의 비율은 2000년 23.4%에서 2005년 13.0p%로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결과대로라면 가난한 사람이 늘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편안한 잠자리에서 두 다리 뻗고 자는 사람들 역시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하지만 신문과 방송들은 연일 과거에 비해 길에서 새우잠을 자는 노숙자들이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 같은 아이러니한 현상의 진실은 무엇일까.

 한 노숙자가 지하철역 계단에 웅크리고 앉아 구걸을 하고 있다.
도심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뉴타운·재개발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이 같은 재개발이 가난한 서민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다는 이야기는 어제 오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개발지역에 포함된 달동네, 쪽방촌 등에 살던 서민들은 주거공간을 잃었다. 물론 퇴거시 이들에겐 보상비용이 지급됐다.

하지만 새로 조성된 뉴타운에 입주하기는 커녕 또 다른 집을 구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 지급됐을 뿐이다. 게다가 타 지역의 저렴한 소형주택들 역시 재개발 지역에 포함돼 이들은 살 곳을 더욱 찾기 힘들어졌다. 그렇다면 달동네, 판자촌 등에 살던 이들은 어디로 갔을까.이 중 일부는 더 좋은 환경으로 옮겨간 사람도 있겠지만 빈민촌 원주민의 대부분은 주거지역에 포함되지 않은 비주거지로 스며들고 있다. 찜질방, PC방, 만화방, 다방, 고시원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이 같은 곳은 비주택에 해당하기 때문에 누군가가 이곳에서 잠을 자면서 생활하고 있더라도 주택법상 그 사람은 조사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 최저주거기준12㎡(3.6평)에 미달하는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어도 결과적으로 그 추치는 드러나지 않는 것.그나마 고시원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준노숙인’ 중에서도 ‘왕족’쯤에 해당한다. 10㎡ 안팎의 좁은 면적이지만 어느 정도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독립적인 방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주택법상에 12㎡라는 최저주거기준을 정해 놓았다면 그 기준 이하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홈리스’(Homeless)로 봐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준노숙인은 ‘왕족’

 한 만화방의 모습.
이와 관련 한국빈곤문제연구소는 지난 2월부터 한 달 간 서울, 대전, 대구에서 고시원, PC방, 만화방 등 비거주용 시설을 주거지로 삼고 생활하는 사람 120명을 임의 표집해 설문조사한 결과를 지난달 31일 발표했다.

실태조사결과에 따르면 이들이 부담하는 월주거비는 서울에 비해 대구와 대전의 이용요금이 약간 저렴한 것으로 나타났으나 이용시설별 주거비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시원이 15만~30만원, PC방 15만~27만원, 찜질방 18만~24만원, 만화방 15만~24만원, 다방 15만원 순이었다. 대략 15만~24만원 정도면 한달주거비가 해결되는 것. 그렇다면 비슷한 가격에 가장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고시원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었을까. 대답은 ‘NO’다.

조사대상자 중 반수가 넘는 71명이 PC방과 찜질방에서 생활하고 있었으며 그 다음 선택이 고시원이었다.
이유는 고시원은 월세를 목돈으로 선납해야하지만 이에 반해 PC방, 찜질방, 만화방 등의 시설은 하루를 단위로 이용할 때마다 5천~8천 원씩을 지불하면 되기 때문이다. 월 단위로 따진다면 비슷한 가격이 지출되지만 한꺼번에 20여만 원을 지불할 ‘목돈’이 없는 준노숙인들은 불을 끌 수도, 편하게 다리를 뻗을 수 없는 공간에서 잠을 청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와 관련 이번 실태조사과정에서 설문∙면접조사를 수행한 순천향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석사과정 김상은씨는 “서울역 인근 한 만화방에서는 매일 밤 30여명의 준노숙인이 잠을 청하고 있다”며 “그중 20여명은 그곳에서 고정적으로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에 따르면 해당 만화방은 2층 구조로, 1층은 쇼파에서 만화책을 볼 수 있게끔 돼 있고 2층에는 수면실 의자가 비치돼 있다. 그리고 밤이 되면 1층의 쇼파도 3개가 한데 붙어 1인용침대 역할을 한다. 만화방에서는 일정 금액 받고 이불을 대여해 주기도 한다.이 만화방의 가격은 6시간에 2천원, 저녁 때 들어와서 잠만 자고 나가는 것은 4천원이다. 또 단골 준노숙인에게는 할인을 해주기도 한다고 한다. 이처럼 이곳을 정기적으로 찾는 사람들이 많아 이 만화방의 주인은 이들 준노숙인을 ‘식구’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준노숙인 중에도 이 가격을 지불하지 못해 노숙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더러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노숙인상담지원센터 현시웅 소장은 “만화방은 준노숙인의 주거지이면서 인력시장이기도 하다”면서 “인력업체들이 만화방으로 찾아와 이들에게 일감을 제공한다. 이 같은 특수성 때문에 준노숙인들은 오래전부터 역주변 만화방에서 생활해왔다”고 말했다.

고졸이상 학력도 66.4%…‘고정적 일자리 없다’ 90.8%

조사대상 중 절반가량인 52%가 일용근로를 통해 생활비를 벌고 있다고 응답했으며 노점상, 행상, 수세미장사 등이 13.8%로 그 뒤를 이었다. 그 외에는 때밀이, 폐지수집, 공공근로 등의 응답을 보였다. 이 같은 결과는 이들과 같은 주거불안정층이 노동시장의 대표적 취약계층으로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는 게 어렵다는 것을 나타내는 부분이다.또 많은 수의 준노숙인들은 ‘취업기회만 주어진다면 능력보다 낮은 일 또는 무슨 일이라도 하겠다(47.5%)’ ‘능력에 맞는 일자리를 찾아 취업하겠다(30.0%)’고 답했지만, 절대 다수인 90.8%는 ‘고정적 일자리가 없다’고 답했다. 실제로 이들 중 조사기간 전 지난 한달 동안 10일 이상 일한 사람은 23.4%에 불과했으며, 하루도 일하지 못한 사람도 23.3%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 한국빈곤문제 연구소 류정순 소장은 “이번 조사대상자 중 고졸이상의 학력을 갖고 있던 사람은 전체의 66.4%로 이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교육수준을 갖고 있었다”며 “이것은 우리사회가 고학력의 인재들마저 준노숙상태로 내몰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말했다.류 소장은 이어 “정부는 부자들을 위한 뉴타운 정책에 앞서 가난한 단신가구가 입주할 수 있는 최저주거기준 이상의 저렴한 주택을 건설해 소형주택의 시장공급을 늘리고 가격 또한 낮춰야 한다”며 “이들이야말로 우리사회의 최하위 계층이라는 인식을 갖고 이들을 위한 직업훈련, 취업알선, 공공근로 등의 정책도 펴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