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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세상 어느 곳에서나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이 속한 민족과 국가에 대한 애정은 기본적으로 내제되어 있다. 인간으로서 자신이 생명을 얻고 시작하고 뿌리를 내린 곳에 대해 관심과 애정에 없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세상 어느 민족, 국가에도 자신들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존재한다. 국내에서는 흔히 ‘우리 것’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지’라는 광고 멘트는 밉살스럽지 않고 은근히 미소를 짓게 만드는 이유가, 바로 그 배경에 깔린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애정이 존재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감정적인 동조나 상태를 굳이 민족주의(民族文化主義, nationalism)라는 강한 표현으로 정리할 이유까지는 없어 보인다. 본시 민족주의란 특정 민족에 기반을 두고 국가형태를 형성하고 유지, 확대하려는 행태를 포괄적으로 의미하는 학술적 표현이기 때문이다. 민족주의라는 단어가 좀 과한 표현일 수도 있다고 칭하는 이유는, 민족주의라는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배타적, 폐쇄적인 뉘앙스 때문이다. 특정 민족끼리만 모이는 것을 전제로 한 개념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한계가 발생하는 것이다. 특히 정보통신 및 교역, 왕래가 발달하면서 국경이 개방되고 세계 각국의 교류가 확대되면서 단순한 세계화의 단계를 뛰어넘어 지구 공동체를 표방하는 시대에 민족주의란 곰팡내 나는 오래된 관념으로 비춰질 뿐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도 세계화가 가속화될수록 민족주의는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21세기가 시작된 이후 국가 간의 배타성은 더욱 확산되는 추세이다. 글로벌 교역이 확대되고 세계 각국의 여러 인종들 간의 교류가 확대되면서 발생하는 역설적인 현상이다. 이는 우선 글로벌 경제가 복잡하게 작용하면서 타국으로 인해 자국의 경제적 성과가 영향을 받는 것에 대한 반발 때문에 발생한다. 또한 문화적으로 생활습관이 다른 낯선 인종들을 겪으면서 보이는 본능적인 방어기제의 작용이기도 하다. 게다가 세계 모든 국가의 정치인들은 민족주의를 정치적인 수단으로 이용한다. 때문에 국가가 개방될수록 타민족, 타국에 대한 불만과 더불어 민족주의가 발현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민족주의가 정치적으로 이용되면서 상승효과를 내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우리의 것에 대한 단순 보호본능이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승화해 버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게다가 역사적으로 관계가 있던 일부 국가나 민족에 대해 불필요한 강점적 대립과 적대심을 고조시킨다. 물론 그에 대한 반발로 상대국가의 적대심도 높아지면서 대립은 더욱 심화된다. 그러다보니 우호, 선린의 외교관계는 약화되기 시작한다. 당장 우리나라와 일본의 대립관계가 가장 대표적인 사례이다. 우리 민족이 역사적으로 일본으로부터 식민지 통치를 받았던 뼈아픈 과거를 벗어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의 일본에 대한 감정은 식민통치 시대를 넘어 임진왜란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일본에 대한 적계심의 뿌리가 생각보다 깊은 것이다.
생각해 보면 1998년 김대중 정권 시절만 해도 한일관계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독도문제나 위안부 문제 등과 같이 항상 기저에 깔린 갈등요소들이 있었지만, 어찌 보면 양국모두 이를 슬기롭게 대처해 왔다. 심지어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와 같이 국제적인 이슈들도 양국가 모두 수용할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그런 한일관계가 현재는 최악의 수준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일본의 비정상적인 역사인식이 크게 한목을 한 것이 틀림없지만, 과연 그것이 전부인지 의문이다. 심지어 현재는 우리와의 갈등에 선봉에 있다고 일본의 지도자인 아베신조 역시 당시만 해도 막걸리와 김치, 깍두기를 즐겨먹고 1세대 한류팬 부인을 두고 있는 지한파(知韓派) 일본 정치인의 대표 격으로 인식되곤 했었다.
우리가 국가적, 민족적 자존심을 강조하는 것은 우리의 정체성과 자존 그리고 미래를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타민족이나 타국가로부터 불필요한 침략과 공격을 받지 않고, 우리 민족이 지구 공동체의 일원으로 당당히 자리매김하여 공생하는 것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민족의 자존은 주변 민족과 국가들과의 관계를 무시하고는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주변 국가와 민족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성찰, 그리고 매우 높은 수준의 외교 전략과 선린, 우호관계 형성 등 고차원적인 대응이 더욱 중요하다. 역사적 트라우마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자들이 비겁한 이유는 이러한 고차원적 대응이 필요한 기제를 일차원적인 대립과 갈등의 프레임으로 바꾸어 버리기 때문이다. 결국 정치적 목적 달성을 이유로 역사적 사건을 이용하는 행위는 궁극적으로는 민족의 자존을 방해하는 반역행위가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