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팀 문책도마에 이건희 회장 처남 홍석조 광주고검장 인천지검장 부임 직전 이뤄져 ‘봐주기 수사’ 비난
법무부 “더 지켜본뒤 감찰여부 결정” 신중 참여연대 ‘참고인 중지’수사팀 문책 촉구
임창욱(56) 대상그룹(옛 미원그룹) 명예회장이 지난달 30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의 횡령 혐의로 구속돼 인천구치소에 수감됐다.회사 임직원과 공모해 비자금 219억원을 빼돌린 혐의다. 인천지검 특수부(부장검사 권성동)는 29일 밤늦게까지 임 회장에 대한 조사를 벌인 뒤 30일 재소환해 이날 아침 구속영장을 청구했다.이은애 인천지법 영장전담 판사는 서면심리를 통해 "실형이 확정된 공범들과 형평을 고려할 필요가 있으며 비록 자백하고 있으나 지금까지 혐의내용 일체를 일관되게 부인한 점 등에 비추어 증거인멸과 도주 염려가 있다"며 영장을 발부했다.이 과정에서 임 회장은 영장실질심사를 포기했다. 당초 임 회장 혐의는 서울 방학동 조미료공장을 군산으로 이전하면서 공장부지에 매립왜 있던 18만톤의 폐기물을 처리하면서 폐기물 처리업체를 위장계열사로 인수, 1999년 6월까지 폐기물 처리단가를 부풀려 72억원가량을 비자금으로 만든 것이었다.그러나 검찰 수사결과 현재까지 드러난 횡령 혐의 액수는 당초 72억원의 세배가 넘는 219억원으로 밝혀졌다. 앞으로 임 회장이 조성한 비자금이 더욱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검찰에 따르면 임 회장은 1998년 서울 방학동 조미료 생산공장을 군산으로 이전하면서 공장부지에 매립돼 있던 18만t의 폐기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폐기물 처리업체를 위장계열사로 인수했다.이후 1999년 6월까지 폐기물 처리단가를 과다계상하거나 허위로 처리물량을 늘리는 방법으로 모두 7차례에 걸쳐 165억원의 회삿돈을 위장계열사에 부풀려 송금한 뒤 이를 자신의 예금계좌로 빼돌렸다.임 회장은 또 방학동 조미료 공장을 군산으로 옮기는 760억원 상당의 공사를 추진하면서 실제 공사대금에 비자금을 포함시켜 하청업체와 계약을 맺고, 이들에게 부풀린 공사대금을 지급한 뒤 약정된 비자금 액수만큼 되돌려 받는 수법으로 1998년 9월부터 1999년 7월 사이에 18개 하청업체들로부터 모두 32차례에 걸쳐 54억6천만원의 비자금을 건네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이에 따라 이 비자금이 어디에 사용됐는지에 대한 온갖 추측이 난무하고 있어 향후 검찰 수사 결과가 주목된다.문제의 발단은 대상그룹과 도봉구청이 1965년에 지은 5만3천여평의 방학동 공장부지에 아파트가 들어서도록 하는 대신 4천271평을 구청사 신축터로 제공하기로 합의하면서 비롯됐다.강북구와 분구가 되면서 자체 청사가 없던 도봉구로서는 별다른 돈을 들이지 않고 청사를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마다 할 이유가 없는 거래였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이러한 합의에 따라 1998년 공장이 철거되고 아파트 1천여세대, 오피스텔 등 주거시설이 들어섰다. 도봉구는 이 부지에 지하 2층, 지상 15층 연면적 3만8천704㎡ 규모의 구청사를 지어 지난 2003년 11월 입주했다.따라서 검찰은 이 돈의 일부가 방학동 공장부지가 용도변경돼 아파트를 신축하는 인허가 과정에서 사용된 것으로 보고 있다.이렇듯 불똥이 도봉구 청사 건립 문제로까지 확대되자 감사원도 사실여부에 대한 확인작업에 들어갔다.감사원은 대상그룹 방학동 공장부지 일부가 기부채납되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29일 도봉구청으로부터 관련 서류를 넘겨받아 감사를 벌이고 있다.또한 일각에서는 비자금을 조성한 시점이 1998년부터 대선이 치러진 2002년 사이였다는 점을 들어 정치권과의 연루설도 나오고 있어 향후 검찰 수사에 따른 파장도 예상된다.검찰은 “임 회장이 비자금을 사적으로 일부 썼다고 진술하고 있을 뿐 정·관계 로비에 쓰인 흔적이나 정황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며 “사용처에 대한 진술이 명확하지 않으면 계좌추적 등을 통해 철저히 수사할 것”이라고 밝혔다.임 회장의 구속으로 임 회장에 대해 참고인 중지 결정을 내렸던 전 수사팀에 대한 감찰 문제에도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검찰의 재수사 과정에서 전 수사팀이 밝혀냈던 임 회장의 72억여원 비자금 조성 혐의 외에 방학동 공장을 군산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공사비를 부풀리는 수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이 새로 확인됐기 때문이다.지난해 1월 인천지검은 임 회장의 비자금 사건을 수사하다가 임 회장에 대해 '참고인 중지' 결정을 내린 바 있다.당시 인천지검은 비자금 조성의 핵심 실무를 맡았던 대상그룹 직원 2명이 해외로 달아나 임 회장의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불충분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하지만 당시 시민단체 등은 임 회장과 사돈뻘인 홍석조 검사장이 인천지검장으로 취임하기에 앞서 서둘러서 봐주기식 결론을 내렸다며 반발했다.그러나 재수사 끝에 정반대 결론이 내려지면서 당시 인천지검 수사팀에 대한 감찰조사가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검찰 안팎에서 높아지고 있다.검찰 주변에서는 “재수사를 하면서 전 수사팀의 책임 문제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말도 흘러나오고 있다.재수사에 착수하면서 검찰이 대상그룹 본사와 위장계열사인 삼지산업 등을 압수수색하고, 전·현직 임직원들을 소환해 조사하는 등 새로운 증거를 찾는데 힘을 기울인 것도 이를 의식한 때문이라는 해석이 많았다.전 수사팀이 참고인 중지를 결정하면서 이유로 삼았던 전 대상 방학동 공장 환경팀장 최모씨도 귀국시켜 조사한 것도 마찬가지다.참고인 중지 결정을 할 당시의 수사 상황만을 근거로 기소할 경우 당시 수사팀에 대한 문책론이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검찰로서는 참고인 중지의 원인을 제공했던 사건의 참고인을 조사함으로써 새로운 판단을 내렸다는 ‘명분’을 찾은 셈이 됐다는 것이다.검찰이 이렇듯 ‘모양 갖추기’에 신경을 썼음에도 전 수사팀의 책임 문제는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지난 1월 서울고법은 당시까지의 수사 결과만을 토대로 “임 명예회장의 혐의가 넉넉히 인정된다”고 판결했기 때문이다.이에 따라 이미 임 회장의 혐의를 입증할 수사가 충분히 이뤄진 상태인데도 참고인 중지 결정을 내려 사실상 수사를 중단한 것은 전형적인 봐주기 수사를 한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따라서 당시까지의 수사 결과로 임 회장을 기소하는 것이 부족했는지, 아니면 로비 등을 받아 ‘봐주기’ 수사를 했는지가 분명하게 가려져야 한다고 시민단체들은 주장하고 있다.한 검찰 관계자는 이와 관련, “애초 임 회장에 대한 수사를 시작했던 수사팀이 정기인사로 모두 교체된 뒤 그동안 도피 중이던 임 회장이 자진출두 형식으로 검찰에 출두한 배경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밝혔다.그러나 시민단체들은 임 회장이 재수사 결과 구속된 것과 관련해 전 수사팀과 지휘 간부 등을 문책하라고 요구하고 나섰다.참여연대는 30일 논평을 내고 “임 회장의 범죄사실은 대상그룹 임원들에 대한 항소심 판결에서 드러난 만큼 그의 구속과 기소는 당연한 결과”라며 “이미 문제된 사실만으로도 그를 기소할 수 있었음이 확인돼, 지난해 검찰의 임 회장에 대한 참고인 중지 결정이 잘못됐음을 스스로 확인한 것”이라고 지적했다.이에 따라 참여연대는 “당시 수사를 맡았던 인천지검 수사팀을 비롯해 이종백 전 인천지검장(현 서울지검장) 등에 대한 감찰과 문책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며 “법무부와 검찰은 2004년 1월 임 명예회장에 대한 참고인 중지 결정과 수사 중단, 다음달 대상그룹 임직원들의 공소 내용에서 임 명예회장과의 공모 부분을 빼려고 시도했던 것 등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한편 대상과 사돈지간인 삼성은 임 회장에 대한 사법처리에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사돈인 이건희 회장은 물론 이 회장의 외아들이자 임 회장의 사위인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로서는 이번 일을 외면하기가 힘들 것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임 회장은 조미료의 대명사 ‘미원’을 개발한 임대홍 창업주의 장남으로 1987년 대상 회장에 올랐다.임 회장은 취임 10년뒤인 1997년 고두모 회장에게 자리를 넘김으로써 국내에 전문경영인 체제를 구축한 첫 사례로 세간의 눈길을 끌었다.대상그룹의 주력사는 대상㈜로 1960년대 조미료 미원으로 성장해 1990년대 식품브랜드 ‘청정원’으로 자리잡은 종합식품회사로 1956년 설립된 동아화성공업㈜가 모태다.1962년 미원 개발 후 회사명을 ㈜미원으로 바꾸면서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1970~80년대 일본 미국 등에 현지법인을 설립하고 사업을 다각화했으며 현재 대상㈜ 대상사료㈜ 대상식품㈜ 대상농장㈜ 대상정보기술㈜ 등 총 8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독실한 불교신자인 임 회장은 그룹명을 1997년 불교의 상징인 코끼리를 의미하는 ‘대상(大象)’으로 바꾸었다.임 회장의 동생인 임성욱 회장은 2000년 분리된 세원그룹을 이끌고 있다. 임 회장은 세령 상민씨 두 딸을 두었다. 큰 딸 세령씨가 1998년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와 결혼, 삼성가와 사돈이 됐다.결혼 당시 1970년대 유명한 ‘미원-미풍 전쟁’을 벌였던 삼성과 대상의 혼사였고, 세령씨가 연세대 경영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인 어린 신부였다는 점 등으로 큰 화제를 일으켰다.임 회장은 2001년에는 보유 지분을 두 딸에게 증여했는데 당시 500만주를 물려받은 둘째딸 상민씨가 13.19%의 지분을 확보, 최대 주주로 부상했다. 현재 14.40%를 보유하고 있는 상민씨는 이화여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미국 유학 중이다.이건희 삼성 회장의 장남인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와 결혼한 첫째딸 세령(28)씨는 당시 300만주를 받아 8.85%의 지분을 보유한 2대 주주로 올라섰는데 현재는 10.21%로 늘었다.임 회장의 현재 보유 지분은 0.64%에 불과하다. 임 회장이 구속되자 대상은 입장 표명을 자제하며 검찰 수사의 수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이번 일이 시민단체가 ‘검찰의 봐주기 수사’를 질타하면서 비롯된 만큼 가급적 여론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대상그룹 측은 임 회장이 이미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만큼 회사 경영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으로 보면서도 이번 사태로 그동안 ‘깨끗한 먹거리’ 이미지를 심어온 청정원 브랜드가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걱정하고 있다.홍세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