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20년 지기 가족이었던 반려견 담비를 떠나보냈다. 다음날 베란다 화단 꽃 향이 좋다 하여 심어 두고 꽃이 피기를 기다렸던 치자 꽃나무의 꽃이 처음으로 피었다. 5년만이었다. 마법 같았다. 마지막까지 담비는 가족에게 큰 선물을 남긴 듯하다.
준비 중인 전시가 마침 위로가 된다. ‘원더랜드’ 연작의 이사라 작가다. 연작 ‘원더랜드’는 작가의 꿈의 세계이자, 사랑과 행복, 호기심이 가득한 세상이다. 소녀, 곰돌이, 요술봉, 무지개, 구름, 몬스터 등 서로 다른 묘한 밝음의 에너지와 유예된 동심으로 가득 채워진 마법의 세계다. 여기에 등장하는 ‘소녀’는 작가의 소망을 대신 이루어 주는 존재로, 작가가 어린 시절 경험했던 추억을 떠올려 만든 가상 이미지의 혼합체이다.
명랑한 소녀의 이미지와는 대비적으로 작업하는 방식에는 계량할 수 없는 노동집약적인 과정이 있다. 바늘과 같은 뾰족한 칼로 화면의 물감을 하나하나 긁어서 세밀하게 표현하는 기법이다.
특히 소녀들의 눈 속 반짝이는 흰 선들은 이사라 작가 특유의 세밀함과 완벽성을 전달한다. 먼저 이미지를 화면에 철저히 구상하고 그 계획대로 칼로 바탕을 끌어내 하얀 면이 드러나게 하는 과정을 거친다. 컬러풀해서 화려하지만, 누구에게나 있었을 법한 동심을 떠올리게 하는 순수하고 친근한, 그래서 행복해지는 감동을 선사한다. 아픔 없이 행복만 가득할 천국처럼 보인다. 그래서 위로가 된다.
작가는 “나는 선택한 대상들에 이상적이고 환상적인 색채를 더하여 나만의 리듬을 형성해 내며 이를 통해 나의 이야기와 생각을 전달한다. 화면 속 형상들은 아름다운 연속으로 이어지면서 색채와 형태의 그칠 줄 모르는 작은 축제를 만들기도 하고, 내가 지은 가장 소녀다운 왕국의 모습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동시에 내면 속 어딘가 순수하고 친근한 감정을 뿜어 내는 화면 속 대상들은 작품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안정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게 하는 동시에 기쁘고 슬프고 따뜻하고 또는 쓸쓸하기도 한 개인만의 다양한 사적인 내면의 세계를 대면하게 이끌어 준다”고 설명했다.
작가는 앞서 ‘럭키베어’ 시리즈에서도 모두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끌어낸 바 있다. ‘럭키베어’ 연작은 형형색색의 곰돌이 젤리로 어린 시절 작은 손가락을 꼬물대며 순서를 고민해가며 집어먹던 향수를 절로 떠오르게 만든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곰돌이 모양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섬세한 작업의 결과물이다. 작가는 가장 행복한 색채를 찾기 위해 색을 여러 겹 덧칠하고, 가장 섬세한 칼을 이용하여 작가가 생각하는 사랑의 패턴을 첨예하게 세공한다. 말 그대로 ‘럭키베어’를 만들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