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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5년 ‘굳세어라 금순아’는 나이 어린 금순이가 아이를 혼자 낳고 힘든 역경 속에서 아이를 잘 키우는 내용의 TV 드라마였다. 미혼모로 임신 중이었던 필자는 서울의 한 시설에 거주 중이었고, 만삭의 미혼 엄마들은 휴게소에 모여 앉아 그 드라마를 보고 울기도 하고 한숨을 쉬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우리는 드라마를 보며 나도 저렇게 잘 키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과 나보다 더 잘 키워줄 누군가를 찾아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해 8월 11일 아침부터 배가 아파왔고 진통인 줄 알면서도 아픈 배를 움켜잡고 참았다. 아이를 낳고 입양 보내기로 결정한 나는 아이를 낳는 순간 헤어져야 한다는 두려움으로 땀을 뻘뻘 흘리며 이를 악물고 참았다. 지금 생각하면 참 미련했지만 그땐 나도 부모가 다 있는 집으로 입양을 선택한 미혼 엄마였을 뿐이다. 밤 11시가 넘고서야 참지 못하고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향했다.
새벽 2시 47분 아이가 태어났다. 그리고 바로 그날 아침 나는 아들과 헤어졌다. 병원 복도에서 아이에게 엄마로서 처음 한 말이 “아가야 이제 그만 가”였다. 그리고 병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날 아침 퇴원을 했다. 나는 그날 나의 고통과 아픔의 감정들을 기억한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밤 베이비박스 앞에 아이를 놓아두는 영화 ‘브로커’의 첫 장면에서 그때의 나의 감정들이 다시 살아났다. 영화 속 아이 엄마도 수없이 많은 날을 고민하고 두려움과 자책으로 자신을 괴롭혔을 것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영화를 보기 시작했지만 조금씩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현실에서는 너무 어렵고 힘든 사회 문제들을 영화에서는 깊은 고민 없이 너무도 가볍게 다뤘기 때문이다
생명을 지키고 태어나게 한 어머니였지만 홀로 아이를 낳아 양육해야 하는 냉혹한 현실에서 주인공의 마지막 선택은 내가 17년 전에 선택한 것처럼 아이를 자신에게서 분리시키는 것이었고 그 선택을 보다 쉽게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바로 베이비박스였다. 이런 그녀에게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것은 이웃이나 사회 혹은 정부가 아닌 일면식도 없는 범죄자 듀오라는 것이 아이러니였다.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아 양육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 혐오적 시선과 편견을 받는 것인지 미혼모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녀들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녀들은 자신과 그들의 자녀들을 위해서 그런 편견과 혐오에 맞서 싸우며 세상을 바꾸어가고 있다.
영화 속 소영(주인공)의 대사가 가슴에 오랫동안 남았다. 무엇보다 근원적인 질문으로 뱃속에 있는 아이를 지우는 것이 태어난 아이를 버리는 것보다 가벼운 죄인가를 묻는 질문이었다. 누구도 이 질문에 쉽게 답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후에 내가 지금까지 만나온 어머니들의 얼굴들이 떠올랐다. 영화 속 소영은 그녀들이었고 과거의 나였다.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아도 사람들은 손가락질하며 질타한다. 미혼모들은 아이를 제대로 양육할 수 없으니 입양 보내는 것이 ‘최선’이라고 사람들은 너무 가볍게 말한다. 하지만, 입양을 보내기 위해 영화 속 소영처럼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데려다 놓아도 사람들은 그녀들을 아이를 버린 비정한 엄마라고 손가락질한다. 결국 미혼모들은 아이를 양육하겠다고 결정하거나 아이를 입양 보내겠다고 결정하거나 어느 쪽으로 결정을 하여도 사회로부터 냉대 받을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미혼모 어머니들에게 질타를 할 자격을 갖췄는지 의문이다. 그들이 아이를 버린 게 아니라 버릴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개선하지 못하는 사회가 더 문제라 생각한다.
우린 모두 태어나서 고맙고 소중한 생명들이다.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생명은 없다. 17년 전인 2005년 아직도 내가 기억하는 감정들과 고통을 2022년 홀로 아이를 선택하고 양육하는 모든 미혼의 엄마들이 겪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