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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을 제작하는 일은 두렵고 떨리는 일이다. 같은 상황 속에서 어떤 내레이션을 넣느냐에 따라 보고 듣는 이에게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전해질 수 있고, 감독의 쓴 뿌리로 인해 모든 상황에 다른 해석을 내놓는 경우도 다반사다.
그렇기에 영상을 제작하는 사람들은 하나의 영상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 늘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보는 영화나 다큐멘터리 속에 가짜인 것이 사실은 너무나 많다. 가령 바다가 나오는 장면에 들려오는 바다 소리는 사실 다른 장소에 있는 바다 소리 일 가능성이 아주 높고, 숲을 걷는 발자국 소리는 폴리 아티스트가 따로 녹음한다.
한국전쟁 참전용사 인물 사진을 찍는 라미(본명: 현효제) 작가님과 2019-21년 미국에 세 차례 참전용사 영상 아카이브(영상기록)를 위해 다녀온 적이 있다. 라미 작가는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 사진 하나에 2000만 원에 팔릴 정도로 유명한 사진작가였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자신의 일을 뒤로하고 한국전쟁에 참전하신 분들을 찾아 미국을 향했다. 그 프로젝트가 바로 참전용사 선생님을 찾아 감사함을 전하고 사진을 찍어 액자로 만들어 드리는 ‘프로젝트 솔져:한국전쟁 참전용사를 찾아서’다. 그들이 목숨을 걸고 지켰던 나라,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그가 전하는 감사함은 한국전쟁 참전용사 선생님들께는 어떤 느낌일까?
72년 전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일어난 6.25전쟁. 폐허가 된 이 땅에 희망의 씨앗을 뿌린 수많은 참전국들은 동방의 아주 작은 한 나라가 자유를 빼앗길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63개국 청년들은 목숨을 걸고 이 땅에 자유를 지키기 위해 참전했다.
그중 가장 많은 숫자를 대한민국에 보냈던 미국. 당시 대한민국 국민의 인구수는 약 2000만명 이였고 미국에서만 178만9000명(미 국방부 통계)이 참전했다. 대한민국 국민 11명을 지키기 위해 미국 청년 1명이 전쟁에 참여한 셈이다.
현시대 살고 있는 우리는 이와 같은 상황에 이름도 모르는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 줄 수 있을까? 수많은 미국 젊은이들은 왜 이 전쟁에 참전하게 된 걸까, 국가적으로도 경제적 이익을 볼 수 있는 부분도 없었을 텐데, 무엇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인 걸까.
당시 나는 그 모습을 영상으로 아카이브하며 내 카메라로 지켜보았다. 자신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참전용사 선생님께서 받아 들었을 때,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감격에 눈시울을 붉히셨다.
그리고 여지없이 마치 어제 대한민국에 계셨던 것처럼 우리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이야기하셨다. 어떤 분들은 우리보다 한국 정세에 관련해 더 많이 알고 계신 분도 계셨다. 여전히 한국을 위해 미국에서 중요한 목소리를 내고 계신 분들이 많다.
“만약 우리가 곤경에 처하면 당신들이 우리를 도우러 올 것이라고 난 믿는다” 미국 오래곤 주의 리처드라는 참전 용사 선생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생각난다.
선생님들의 대가 없는 희생은 자유로운 남한이라는 열매를 맺었다. 이제 우리가 맺어야 할 열매는 무엇일까.
나는 ‘PLUG IN DMZ’라는 다큐를 통해 아직 자유롭지 못한 북한에 보내는 편지와 같은 영상을 만든 적이 있다. 자유의 향기가 비무장지대(DMZ) 철책을 넘어 저 북한까지 흐르기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하나하나 정성스레 만들었다.
얼마 전 돌아가신 한국전쟁 참전용사 윌리엄 웨버 대령 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우리가 대한민국의 자유를 위해 싸웠죠. 맞아요, 그런데 아직 형제인 북한에는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이 있지 않나요?”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남겨 줄 수 있는 좋은 유산은 무엇일까? 세상이 점점 삭막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세월이 흐를수록 나 자신만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고 느끼는 건 내 개인적인 생각일까.
우리는 이 세상을 혼자 살 수 없다. 삭막한 세상 속에서 세상을 썩지 않게 하는 것. 나는 그중 하나가 ‘감사'라고 생각한다. 이제 경제적 차원을 넘어 대한민국이 감사함을 잊지 않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