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안광석 기자 | 현재 글로벌 기업들의 주요화두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다.
개발할 것 다 개발하고 저성장에 접어든 서방세계 패러다임을 따라가야 하느냐는 찝찝함은 한 수 접어두더라도, ESG는 결국 갈 수밖에 없는 길임은 인정한다.
윤석열 정부도 ESG에 관심이 많다. 같은 취지의 전 정부 탈원전 정책을 부정해 집권했지만, 결국 ESG에 60조원을 투자키로 했다. 정부가 ESG 표준화 추진을 위해 기업들에 배포한 것이 ‘K-ESG 가이드라인’이다.
기업들은 골치가 아프다. 표면상 강제성은 없다 하더라도 추후 어떻게 강화될지 모르고, 정부가 신경쓰는 정책을 마냥 무시하자니 ‘괘씸죄’ 적용이 두렵다.
실제로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건설업계 기준 환경이나 안전 같은 ESG 관련 투자 규모는 지난 2019년 평균 19억5000만원에서 2020년 179억6000만원, 2021년 218억4000만원으로 매년 늘고 있다.
결국 돈이다. 정부 권고기준을 맞추기 위해 예산을 투입해 관련 태스크포스(TF)를 꾸린다. 정작 TF 소속 임직원들은 하라니까 하지, 아직 ESG에 대한 개념도 모르겠다고 하소연한다. 거기에 한 번도 안 해 본 환경사업에 진출하고,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바꾼다.
ESG 초창기라 그런지 나비효과는 뒤죽박죽이다. 환경오염 주범으로 낙인찍힌 국내 시멘트업계가 친환경 관련 투자를 늘리는 바람에 시멘트값 인상이 불가피해졌다. 당연히 공사비가 올라 마진을 남기기 어려워진 건설업계는 반발한다. ESG의 ‘E’를 추진하려다 ESG의 ‘S’를 역행하는 꼴이다.
국제해사기구(IMO) 환경 기준을 맞추기 위해 비싼 돈 들여 대기 유황 배출량을 낮추는 장치인 ‘스크러버’를 설치한 해운사들은 해양오염이라는 새로운 난제에 직면한다. ‘E’를 추구하려다 또 다른 ‘E’를 버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가장 힘든 것은 생산 과정에서 태생적으로 유해물질 배출이 불가피한 철강업계다. 모 철강사의 경우 조 단위의 돈을 들여 유해물질을 생성하지 않는 철강재 생산 공법을 적용했다가 수십년간 생산성 둔화라는 난제와 씨름 중인 형국이다.
그 외에도 철강사나 시멘트사들은 탄소배출량을 계산해 가격을 매기는 탄소배출권거래(ETS)에 따른 세금을 낸다. 2026년이 지나면 유럽연합(EU) 수출품 관세에도 탄소세가 붙게 된다. 물론 수출품도 정해진 탄소 배출량을 어기면 추가로 벌금을 내야 한다는 단서가 붙는다.
그런 점에서 우리네 건설업계 ESG도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고금리로 주력인 주택업이 크게 위축되고 공사를 할 자금도 대출이 안 되자 폐업하는 중소건설사들이 속출하는 상황이다.
그러면서도 정부의 ESG 가이드라인은 충족해야 한다. 모 중견건설사 임원은 시황이나 회사 재무사정을 감안하는 장치가 없느냐고 물으니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기본적으로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데 ESG라. 해당 임원은 과거에는 환경규제나 안전사고 방지,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 등의 노력이 없어서 기업들의 이미지가 나빠졌느냐고 반문한다.
ESG가 피할 수 없는 대세라면, 초기 시행착오 또한 불가피한 일이다. 그러나 지금의 정부는 넓디 넓은 사막을 걸으면서 같이 걷는 일행들의 몸상태가 어떤지, 생존을 위한 어떤 능력이 있는지 교감하는 과정을 무시한 채 ESG라는 신기루만 쫓는 꼴이다.
물론 건설사들도 생존을 위한 자구노력을 얼마나 했느냐는 반성과 영업방식 등에 대한 고찰은 필요하다. 그러나 뿌린 대로 거뒀다라고만 매도하기에는 시장 상황이 녹록지 않다.
과거나 현재나 일자리 창출의 선봉인 건설업이 위험한 상황이다. 내실 없는 ESG는 어차피 오래 못 가기도 한다. 어떤 분야가 됐든 정부는 지금이라도 1차원적인 정책 집행 방식을 버리고 실익을 위한 대화 테이블부터 마련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