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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이 발생하면 상속인들은 상속개시가 있음을 안 날로부터 3개월 내에 한정승인 또는 상속포기를 하지 않으면 단순승인으로 간주된다. 단순승인을 하면 피상속인의 재산 뿐 아니라 채무까지도 모두 상속을 하므로, 피상속인의 채무에 대해 상속인은 본인 재산으로도 변제할 책임을 진다.
망인의 부모, 배우자, 자녀, 손자녀가 있는 경우라면 1순위 상속인으로 배우자와 자녀가 공동상속인이 된다. 만약 배우자와 자녀가 모두 상속포기를 하면 손자녀가 상속인이 된다. 손자녀도 상속포기를 하면 부모가 상속인이 된다. 이와 같이 상속포기를 하면 후순위 상속인에게 상속인의 지위가 넘어가는 결과가 되므로 대부분의 경우 공동상속인 중 1명이 한정승인을 하고 나머지 공동상속인은 상속포기를 한다.
그런데 자녀 중 1명이 한정승인을 하고 나머지 자녀와 배우자가 상속포기를 하면 후순위 상속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녀 모두가 상속포기를 하고 배우자가 한정승인을 하는 경우 기존 대법원 판례(대법원 2015. 5. 14. 선고 2013다48852판결)는 자녀 전부의 상속포기로 손자녀가 배우자와 공동상속인이 된다고 보아, 손자녀가 피상속인의 채무를 상속한다.
다만 자녀의 상속포기로 인해 손자녀가 상속인이 된다는 사실을 알기 어렵다고 보아, 손자녀는 본인이 상속인이 됐다는 사실을 안 날로부터 상속포기해 채무를 상속하지 않을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대법원은 올해 3월 기존 판례를 변경해 배우자만 단독상속인이 되고 손자녀에게 상속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대법원 2023. 3. 23. 선고 전원합의체 결정). 상속포기자인 자녀의 상속분이 민법 제1043조에 따라 다른 상속인인 배우자에게 귀속되므로 배우자가 단독상속인이 된다고 본 것이다.
이는 민법의 체계적 해석에 부합하고, 상속포기자의 의사는 다시 손자녀에게 상속이 발생하지 않고 한정승인한 배우자에게 상속분을 모두 귀속시키려는 의사가 담긴 판결이다. 또한 손자녀에게 다시 상속포기의 기회를 부여하는 기존 판례에 비해 간명한 해결 방법이라는 점에서 타당하다.
앞으로는 망인의 자녀와 배우자 중 어느 누구든 1명이 한정승인을 하고 나머지는 상속포기를 해 한정승인 상속인이 상속재산의 범위에서 채무를 변제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