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부동산 거래 절벽을 해소하고 미분양으로 인한 유동성 악화와 금융 시장 경색을 막겠다는 취지로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한꺼번에 쏟아낸 대책들이다.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반년 넘게 적체됐던 매물들이 빠르게 소진됐고 집값 하락세는 금세 꺾였다. 특히 단군 이래 최대 정비 사업지로 일컫던 '둔촌주공 완판'을 위한 맞춤형 대책들은 결과적으로 청약 흥행몰이에 일조했다고 평가됐다.
'대출 줄게, 네 집 사라' 상품으로 불린 특례보금자리론의 인기로 젊은 층에선 내집 마련에 대한 열기가 되살아났다. 지난해 평균 20% 넘게 급락한 서울 아파트값(실거래가 기준)은 언제 그랬냐는 듯 반등을 거듭했다.
집주인들은 내놓았던 급매물을 다시 거둬들였고 매도호가(희망가)를 올리는 분위기로 돌아섰다. 불안감을 느낀 일부 무주택자들은 다시 추격·영끌 매수에 나서는 상황이 연출됐다.
그렇게 가계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지난 8월 말 기준(금융위원회 집계) 가계대출 잔액은 역대 최고치인 1616조6000억원에 달한다. 작년부터 올 1분기까지 이어진 가계대출 감소세는 정부의 규제 완화가 본격화된 4월부터 반전됐고 지난 2분기에 6조5000억원, 7~8월 11조5000억원씩 늘었다.
서민들의 빚으로 경기 부양을 떠받들었다는 비판이 쏟아지는 이유다.
매매뿐 아니라 분양 시장도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작년 한해 미분양이 급증하자 "건설사들의 자구책과 시장 흐름에 맡기겠다"고 강조해 온 윤석열 정부는 돌연 지난 1월,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와 용산구를 제외한 전국 전역을 부동산 조정 지역에서 해제했다.
이로써 분양가 상한제(분상제)의 울타리는 한꺼번에 허물어졌고 신축 아파트들의 분양가는 고삐가 풀린 듯이 치솟고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집계를 보면 지난 9월 전국 민간아파트 ㎡(평)당 평균 분양가는 502만원으로 작년 동기 대비 11.5% 올랐다. 서울은 ㎡당 969만원으로 1년 전보다 14.0% 급등했다.
특히 다주택자와 투자자들의 청약 진입을 막아온 규제 대부분이 풀리고 추첨제가 확대되면서 각종 커뮤니티에선 분양 당첨 후 프리미엄(P)을 더해 전매에 나서는 속칭 '단타·초피·말피'와 '매수 매칭' 등을 둘러싼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실수요자가 아닌 투자자들도 청약에 눈독을 들이면서 무난한 입지를 갖춘 '관심 단지'들의 청약 경쟁률은 고공 행진하고 있다.
반면 집값 거품이 조금이라도 더 빠지길 고대해 온 대다수 무주택자들과 청년층에선 무력감과 허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윤석열 정권이 펼쳐 놓은 부동산 정책들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라고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부동산 시장 경착륙과 건설·금융업 전반에 걸친 도미노 위기를 막기 위한 선제적인 조치라고 한다면 그 주장도 일리가 있다.
다만 규제 완화를 타고 투기로 목돈을 쥐려는 이들까지 끌어들여, 청약률을 높이고 PF 부실의 돌파구를 만들겠다는 정책들은 반대로 서민들이 짊어질 빚이라는 무거운 화살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최근 몇 주 사이에 서울·수도권 아파트 매매량이 감소하고 가격 상승 폭도 줄었다는 통계가 나오자마자 일각에선 투자자들의 시장 진입을 막는 최후의 보루로 여기는 '실거주 의무'와 '토지거래허가제(토허제)'를 서둘러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주거 이전의 자유 등을 앞세워 실거주 의무 폐지를 찬성하고 있지만 높아진 청약 경쟁률과 향후 공급 부족 가능성이 더해진 시점에서 실거주 의무 폐지는 갭투자(전세 끼고 매입)와 시장 과열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여전하다.
고용노동부 통계를 보면 지난해 국내 근로자들의 실질임금은 11년 만에 처음으로 줄었고 올해도 감소 폭이 확대되고 있다. 경기 부양이라는 범정부적인 대책의 차가운 그늘에 서민들이 남겨져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