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양극화 부추기는 정부·은행...저신용자 돈 빌릴 곳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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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 양극화 부추기는 정부·은행...저신용자 돈 빌릴 곳 사라진다
  • 이광표 기자
  • 승인 2024.01.23 15: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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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은행, 연체율 걱정에 안정빵 신규대출만 늘려
정부 대환대출 시행 후 고신용자 대출여력만 커져
은행들이 고신용자 중심으로 대출 공급을 이어간 가운데 정부의 이자경감을 위한 대환대출 정책도 고신용자의 대출여력만 키워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연합뉴스
은행들이 고신용자 중심으로 대출 공급을 이어간 가운데 정부의 이자경감을 위한 대환대출 정책도 고신용자의 대출여력만 키워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연합뉴스


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고객님, 죄송하지만 저희 은행에서는 대출이 힘드네요.”

서울 강서구에 사는 김모(30·남)씨는 시중 A은행에 들러 신용대출 상담을 받았지만 결국 퇴짜를 맞았다. 인근 다른 시중은행을 찾았지만 상담은 10분만에 끝났다. 상담을 마친 직원은 미안한 듯 “혹시 모르니 다른 점포를 이용해 보라”고 권했다.
김씨는 6000만원의 빚이 있는데 늘 생활비에 허덕인다. 시중은행은 물론 현금서비스, 정책금융상품인 햇살론과 소액생계비 대출까지 끌어 쓰면서 빚이 눈덩이처럼 불었다. 월급 200만원 중 100만원이 넘는 금액이 매달 대출 상환으로 빠져나갔다. 최근에는 연체 문자까지 날아오기 시작했다. 신용등급은 6등급으로 떨어졌고 돈 빌릴 곳이 사라지고 있다. 불법 사채는 겁이 나서 기웃거리지도 못하는 중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은행들이 저신용자 대출을 줄이고 고신용자는 늘리는 등 이른바 ‘안전빵 대출’을 이어오고 있다.  홍성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은행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시중은행들이 가계대출을 내준 저신용자 차주 수는 72만 4000명으로 추산된다. 한국은행이 시중 9개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SC제일·씨티은행 및 카카오·케이·토스뱅크) 대상 가계부채 데이터베이스(DB)를 활용해 시산한 값이다. 신용점수에 따라 고신용자(840점 이상)와 중신용자(665~839점), 저신용자(664점 이하)로 나눴다. 저신용 차주 수는 2019년 말 76만 7000명에서 2021년 말 62만 8000명으로 줄어든 뒤 다시 증가했지만 여전히 코로나19 이전을 밑돌고 있다. 이마저도 중저신용자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인터넷은행(카카오·케이·토스뱅크)을 포함한 수치다. 인터넷은행을 빼면 대형 시중은행들의 저신용자 가계대출 취급 비중은 더 낮아질 수 있다. 금액 기준으로도 은행권의 저신용자 가계대출 비중은 지난해 3분기 말 전체 가계대출의 1.9%에 불과했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말 2.5%에서 지난해 말 1.6%까지 떨어졌다가 그나마 소폭 오른 것이다.
저신용자를 몰아낸 자리는 고신용자로 채웠다. 2019년 말 878만명이었던 고신용자 차주 수는 2022년 1분기(960만 5000명)까지 82만 5000명 증가했고, 지난 3분기까지도 900만명을 웃돌았다. 고신용자의 대출액 비중도 2019년 말 82.0%에서 지난해 85.0%로 3.0% 포인트 높아졌다. 은행들이 낮은 대출금리를 미끼로 고신용자들만 쓸어 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금융권이 저신용자 대출을 꺼리는 것은 높은 연체율 때문이다. 홍 의원이 제출받은 신용등급별 가계부채 연체율을 보면 고·중신용자의 연체율은 0%대를 벗어나지 않는 반면 저신용자 연체율은 2019년 말 15.4%에서 지난 3분기 말 22.1%까지 뛰었다.  금융당국과 은행권이 서민 고통을 덜겠다며 추진하는 2조원 규모의 민생금융 지원 방안에도 정작 한계로 내몰린 저신용자들은 뒤로 밀렸다. 이 중 1조 6000억원은 각 은행에서 개인사업자 대출을 받은 자영업자·소상공인이 대상인 탓에 저신용자에게 혜택이 돌아가기 어렵다. 남은 재원 4000억원은 취약계층을 돕기로 했지만 지원 방식을 각 은행 자율에 맡겨 저신용자 지원을 장담하기 어렵다. 한편 지난해 말 증가세가 주춤해졌던 가계부채는 ‘아파트 주택담보대출 대환대출’ 서비스 시행 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그리고 대출 양극화는 더 심화되고 있다. 대환대출이 시행된 열흘 사이 가계 주담대 잔액이 1조3000억원 이상 늘어났는데 당초 제도 도입 취지는 ‘이자 부담 경감’이었지만 이 제도가 고신용자 대출 여력을 높이면서 신규 대출 증가로 이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은행권에 따르면 지난 18일 기준 5대은행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총 531조9926억원이다. 대환대출 서비스 출시 직전인 지난 8일(530조6298억원)과 비교하면 1조3628억원 많은 수준이다. 지난해 12월말(529조8922억원)과 비교하면 2조1004억원, 지난해 11월말(526조2223억원) 대비로는 5조7703억원 급증한 수치다. 금융권에 따르면 5대은행들이 지난 9일부터 18일까지 접수받은 대환대출 신청건수는 총 9271건, 신청액은 1조5957억원에 달한다. 1인당 평균 신청액은 1억7000만원이며, 평균 금리 인하폭은 1.5%p, 1인당 아낀 이자는 평균 337만원이다. 이에 각 은행들은 대환대출 효과가 이번주부터 금융권에 상당한 파급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2주간 대환을 신청한 계약들이 승인 및 대출 시행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주담대의 경우 대출 규모가 크고, 작은 금리 차이에도 절약되는 이자가 더 많아지는 만큼 차주들의 추가 대출 여력도 늘어날 수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차주들이 정부의 의도대로 손쉽게 낮은 금리 상품을 선택할 수 있게 되면서 고객들의 관심도 집중되는 상황”이라며 “전반적인 대출 금리가 낮아진 상황에서 고신용자를 중심으로 신규 대출 규모는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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