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우리나라 가계빚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금융당국의 정책 엇박자가 가계부채를 더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출 한도를 옥죄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은 강화해놓고, 저금리 정책상품들은 확대하고 있어 가계빚이 계속 늘어나고 있어서다. 더구나 시장금리 인하까지 맞물리며 주담대 금리가 하락기에 접어들면서 가계대출을 쉽게 제어하지 못할 거란 우려가 나온다.
실제 금융당국은 지난 26일부터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시행했고, 대출한도가 차주당 수천만원씩 줄어들었다. 하지만 늘어나는 가계부채 문제를 풀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전망이다.
하반기 금리 하락 가능성이 높은데다 부동산 시장 상승 전망이 나오면서 가계대출 증가 자극요인이 될 수 있어서다. 최근 낮은 금리로 대출갈아타기 서비스가 흥행몰이를 하면서 역시 가계대출 증가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당국은 DSR 적용의 예외를 줄이면서 가계대출 수요를 억누르겠다는 입장이다.
한국은행이 13일 발표한 ‘2024년 2월중 금융시장 동향’을 보면 지난달 말 기준 주택금융공사의 정책모기지론 양도분을 포함한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1100조3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월 말 대비 2조원 늘어난 것으로 11개월째 증가세를 지속했다. 잔액이 1100조원을 돌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관련 통계 이래 최대치다. 1000조원 돌파 이후 3년 만이다. 가계대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주택담보대출 잔액(정책모기지론 양도분 포함)은 860조원으로 전월 말보다 4조7000억원 늘어 12개월 연속 증가했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가계신용 잔액은 1886조4000억원으로 지난해 3분기(1878조3000억원) 대비 8조원 늘어나면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계신용은 금리 인상 등 통화 긴축의 영향으로 2022년 4분기(-3조6000억원)와 지난해 1분기(-14조4000억원) 연속 뒷걸음질 쳤으나, 2분기(8조2000억원) 반등한 뒤 3분기(17조원), 4분기까지 세 분기 연속 늘어나고 있다.
앞서 금융당국은 가계빚 증가를 막기 위해 지난달 말부터 스트레스 DSR을 시행 중이다. 스트레스 DSR은 기존 DSR에 미래의 금리 인상 위험을 반영한 일정 수준의 '스트레스(가산) 금리'를 적용하는 것이다. 금리가 오를 경우 늘어날 원리금 상환 부담까지 반영함으로써 대출 한도는 기존보다 줄어들게 된다.
가계대출이 다시 늘어나면서 대환대출 경쟁으로 금리를 인하했던 시중은행들 역시 금융당국의 기조에 발맞춰 금리를 인상하고 있다.
이처럼 금융당국은 가계부채를 잡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가계부채가 잡히지 않는 이유는 가계부채 관리와 상충된 정책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부터 2년 이내에 출산·입양한 무주택 가구나 1주택 가구(대환대출)에 대해 주택구입·전세자금을 저리에 대출해 주는 신생아 특례대출이 시행됐다. 신생아 특례 주택구입 자금은 1.6∼3.3%, 전세자금은 1.1∼3.0%의 금리로 대출받을 수 있어 수요가 몰리고 있다.
실제 신생아 특례대출이 3주 만에 3조원가량의 신청이 이뤄졌다. 1주일에 1조원 속도다. 지난 1월29일 출시된 신생아 특례대출은 출시 약 3주만에 1만5000명이 넘게 신청한 것으로 집계됐다. 아직 실제 대출 집행 규모는 확정되지는 않았다. 은행권은 50% 이상은 실제 대출로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모두 대환이 아닌 신규라고 볼 때 3주 만에 1조5000억원 가량의 주택담보대출 증가를 이끌게 되는 셈이다.
아이가 있는 부부들의 내 집 마련 수요에 대한 '핀셋 정책'이 효과를 발휘했다는 분석도 있지만, 일각에서는 지난해 특례 보금자리론과 마찬가지로 가계부채 증가에 부채질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가계부채 관리와 실수요자 지원이 여전히 금융당국 딜레마다.
또한 대환대출 인프라 확대에 따른 금리 인하가 간접적인 주담대 수요를 확대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신규 고객 확보를 위한 은행권의 대출 금리 인하 경쟁으로, 고금리 속 얼어붙었던 주담대 수요를 깨울 수 있다는 것이다.
당국의 정책 엇박자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는 DSR 규제를 풀어주고 최장 만기 50년짜리 정책금융 상품을 허용하면서 가계부채 상승 원인으로 지목됐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부동산 시장 경착륙 우려에 대출 규제를 일부 푸는 등 가계부채 증가를 유발했다"며 "지금부터라도 대출 규제 같은 가계부채 축소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