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바이오 ‘팬데믹 먹튀’ 후유증 여전, 인기 분야에 투자 집중
일부 부도덕 中企, 정부 지원금 전략적으로 빼돌려
매일일보 = 이용 기자 | 일부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의 투자 자본 유용 사례가 잇따라 드러나면서 업계의 신뢰도가 급격히 추락하고 있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코로나19 시절 일부 기업의 정부 ‘지원금 먹튀’로 신뢰를 잃은 제약바이오 업계가 여전히 투자금을 확보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날(25일) 서울 가톨릭병원 옴니버스파크에서 열린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의 간담회에서, 허경화 한국혁신의약품컨소시엄 대표는 지난해 신약 및 의료용 물질 관련 벤처투자가 33건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이는 2021년 143건에 비해 76.9% 감소한 수치다.
국내 벤처캐피탈 제약·바이오 업종(의료용물질·의약품) 투자는 2021년 1조4112억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후 2년 연속 감소해 지난해 6698억원을 기록했다. 이 중 시리즈A 이전의 초기투자는 13건으로 같은기간 85.7% 줄었다.
과거 투자액이 몰렸던 주요 원인은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로 바이오 업계 전체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상승한 까닭이다. 최근의 투자 가뭄은 엔데믹으로 인해 기대가 시들해진 점도 있다.
특히 특정 분야에만 투자가 집중되는 ‘빈부격차’가 심화됐다. 그중 암 분야는 여전히 벤처 캐피털 펀딩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또 당뇨, 비만, 자가면역 질환 등 일명 ‘업계 대세’ 항목에만 투자가 몰리는 형편이다.
실제로 최근 제약업계서 가장 주목 받는 알테오젠은 면역항암제 관련, 펩트론은 비만치료제 관련 기술과 연관됐다는 이유로 주가 고공행진을 달리는 중이다. 반면 해당 기술 분야 후발주자나 희귀질환 치료제 분야는 여전히 투자금 확보를 못해 경영난을 겪는 형국이다.
인기 분야에만 투자가 몰리는 주요 원인은, 팬데믹 시절부터 이어진 업계의 정부 지원금 먹튀 행각에 학을 뗀 투자자들이 ‘돈이 확실히 되는 종목’에만 투자하는 경향이 커졌기 때문이다. 정부를 향한 업계 호소를 접한 일부 투자자들은 “말이 좋아 바이오 스타트업이지, 실상은 국비 구걸꾼이나 다름없다”고 조소했다.
코로나19 위기 속 정부의 지원금에 이어 국민의 관심까지 가져갔던 제약바이오 업계는 여전히 먹튀 논란에 휩싸여 있다. 정부는 국가신약개발사업단을 통해 2020년 9월~2022년 11월까지 약 2년간 '코로나19 치료제·백신 신약개발 사업'을 진행했다. 코로나19 치료제·백신 임상시험 비용 지원을 위해 3년간 치료제 1552억원, 백신 2575억원 등 지원금으로 4127억원을 책정했다. 실제 집행된 예산은 1679억원에 불과했다.
사업단은 그동안 치료제 개발사 5곳, 백신 개발사 9곳에 지원했으나 이 중 셀트리온과 SK바이오사이언스 단 두 곳만 성과를 냈다. 일부 기업은 자사 분기 보고서를 통해 ‘임상 중단을 결정했다’라고만 표기, 치료제 개발 중단 사실을 남몰래 알렸단 사실이 나중에 드러났다.
올해 정부가 신약개발 사업에 예산을 더 확대했는데, 업계선 또다시 먹튀 행위가 벌어질 수 있단 우려를 제기한다. 보건복지부는 2024년 국가신약개발사업 예산을 579억900만원으로 편성했다. 이는 지난해 411억9000만원보다 약 161억원이 증가한 액수다. 팬데믹 시절엔 지원금만 타고 1년 새 임상을 중단했던 기업들이 많았던 만큼, 설령 실패하더라도 지원금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는 증거를 제출해야 한단 지적이 나온다.
일부 중소기업이 정부 지원금을 불법으로 획득하는 사례도 드러났다. 정부는 탄소중립설비 지원사업 운영실태를 점검해 업무방해·입찰방해 등 법률위반 의심사례 209건 139명을 수사의뢰하고, 전기공사업법·건설산업기본법 등 법률 위반 140건 116명을 고발조치했다. 환경부는 2021년부터 2023년 9월까지 국고보조금이 지급된 316개 탄소중립 설비와 관련된 탄소중립설비 지원사업 운영실태를 점검해 업무방해·입찰방해 등 의심 사례, 전기공사업법 위반 사례 등 496건의 부적정 사례를 적발했다.
또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A협회는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소속 직원에게 과다한 인건비를 지급한 뒤 초과 금액을 되돌려받는 방식으로 약 27억원을 빼돌렸다. B업체는 물품 가격을 부풀리거나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급받는 등 수법으로 약 34억원의 연구개발비를 횡령했다.
소상공인 단위에서도 막대한 금액의 탈세 행위가 발생한단 지적이 나온다. 오세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세청 자료를 통해 “불법적으로 빼돌린 기름을 판매하다 세금납부 없이 문을 닫은 먹튀주유소는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370건이 적발됐다”고 밝혔다.
항암제 기업 S바이오사 관계자는 “일부 스타트업은 정부 지원 혜택이 많다는 점을 전략적으로 노린다”며 “지원금 뿐 아니라 정부의 해외 사무실 임대 혜택, 글로벌 규제당국 알선 지원도 낚아챈다. 정작 지원 받아야할 우수 기업들은 그 기회를 잃게 되며, 결국 경영난으로 사라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