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국민은행 임직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오늘, 2004년 3월 19일자로 국민은행 이사회 회장직을 떠나고자 합니다. 2000년 3월, 와병중이시던 고 송달호 행장님의 뒤를 이어 국민은행의 식구가 되었으니 만 4년을 국민은행과 함께 하였습니다.
돌이켜 보면 국민은행의 일원이었던 지난 4년 동안은 제 인생에서 가장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운 세월이었습니다. 제가 책임을 맡은 첫해에 83조원이던 자산규모가 103조원으로 성장하였고, 1,000억원 남짓 되던 당기순이익이 7,200억원대까지 늘어났던 것 등은 참으로 보람 있었고, 우리 국민은행의 무한한 성장과 발전의 잠재력을 확인할 수 있었던 계기였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노고를 치하하고 감사 드립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 정책에 따라 생존능력과 국제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대대적인 금융산업 개편이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규모와 범위의 경제를 활용하기 위한 대형화전략은 선택사항이 아닌 필수사항이었습니다.
대형화전략의 추진이 불가피 하다면 우량은행인 우리 국민은행이 공적자금 투입은행과의 합병을 통해 대형화를 추진해야 하는지, 다른 우량은행과의 합병을 통해 대형화를 추진해야 하는지에 대한 대답을 해야 했습니다. 혹자는 후자의 경우 저 개인적으로 많은 것을 잃을 수 있다는 충고를 하기도 했습니다만, 전자의 경우 우리 국민은행에 너무 큰 부담을 줄 수 밖에 없다는 시장에서 표출된 주주들의 의사를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합병추진과정에서 임직원 여러분과 충분한 대화와 상의를 할 수 없었고, 이에 따라 추운 겨울 우리 식구들이 일산 연수원에서 고통스러운 날들을 보내야 했던 일에 대해서는 지금도 가슴이 아픕니다.
다만 은행을 아끼고 사랑하는 성숙한 마음으로 대화에 동참하여 합병이 성사되도록 협조해 주셨고, 분출된 에너지를 통합의 힘으로 사용해 주신 것에 대해서 다시 한번 위로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은행을 만들기 위한 필요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통합의 길을 선택한 고뇌어린 그러나 애정에 찬 결단은 분명 우리 국민은행이 성장하고 발전하는 저력이 되고 원동력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친애하는 KB 국민은행 임직원 여러분 !
통합에 따른 갈등이 아직 남아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새로운 은행을 만들어 가는데 있어서 불가피한 과도기적 진통입니다. 따라서 혹한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은행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함께 했던 그 마음으로 돌아가 서로 마음의 문을 열고 은행사랑의 마음을 한 곳으로 모아주시기를 부탁합니다.
작년도에 막대한 부실과 이에 따른 대손 충당금 적립 등으로 우리 국민은행이 적자결산을 해야만 했던 일은 참으로 안타깝고 답답한 현실입니다. 대내외적인 경영여건의 악화로 인한 이러한 결과가 아쉽기는 하지만 이 문제도 결국 우리 스스로의 땀과 희생으로 해결해야 할, 우리의 일입니다. 자중자애하는 마음으로 더욱 분발하여 이 고비를 슬기롭고 효율적으로 극복해 주시기를 부탁합니다.
‘떠날 때는 말없이’라는 말은 있지만 염려와 애정의 마음은 두고 가기에 몇가지 당부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기업경영은 사람경영입니다. 우리가 하늘로 아는 고객 중에서도 내부고객이 가장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내부고객인 은행 임직원은 외부고객과의 접점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경영진은 내부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합니다. 이러한 내부고객의 만족이 외부고객의 만족, 기업경영성공의 밑바탕이 될 것입니다.
둘째, 단기적인 성과와 중장기적인 역량 및 기반 확충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금융산업개편이 마무리되어감에 따라 국민은행의 우량은행 프레미엄은 거의 없어졌습니다. 이제부터야 말로 본격적인 경쟁, 진검승부를 해야 할 때입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단기적인 성과와 중장기적인 역량 및 기반 확충 간의 균형과 조화는 지속적인 생존 가능성을 좌우하는 관건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선진적인 시스템을 우리 것으로 소화하여 창조적인 진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할 때, 우리의 금융환경에의 적응성을 면밀히 점검하고 구체화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토착화 과정을 거치지 않을 경우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고 그 비용은 너무 클 것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KB 국민은행 임직원 여러분 !
합병 후 이사회 회장 재직기간이 2년 여 경과하면서부터 이제는 떠나야 할 때가 가까워짐을 느꼈고, 그 때마다 어떠한 모습으로 떠나야 할지 여러 가지 고민과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만족스럽지 못할 수도 있는 모습으로 떠나게 됨을 스스로 아쉽게 생각하면서 이 점에 대해 여러분의 넓은 이해를 구합니다.
새 봄이 오는 길목에 시샘 많은 꽃 추위가 왔다 갔다 하지만, 새 기운을 머금은 개나리의 꽃망울에서 봄이 가까이에 다가왔음을 확연히 느껴봅니다. 이 봄이 깊어지고 여름날에 꽃을 피워 가을이 오면 알차고 탐스러운 열매를 맺는 과일나무처럼 우리 국민은행도 추위와 바람을 이기고 나면 한국 금융산업을 대표할 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뱅크로 반듯하게 성장하고 발전할 것을 믿습니다.
이제 이사회 회장직을 물러나지만 제가 국민은행의 안에 있든지, 밖에 있든지 KB 국민은행 탄생의 당사자로서 국민은행에 대한 책무와 애정은 변함없을 것입니다.
저나 여러분 모두, 은행을 떠난 후에도 국민은행에 있었음을 자랑스럽게 기억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행복이 가득하시고, 국민은행의 앞날에 신의 가호가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2004년 3월 19일
김 상 훈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