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이정미 기자] 대구시의 한 아파트 부지를 둘러싸고 건설사와 입주계약자들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대구시 달서구에 위치한 월성 e-편한세상은 분양 당시부터 아파트 일부 부지를 두고 땅주인을 가리는 소송중으로, 아직 법적인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인데도 해당시와 구청이 사업승인과 분양승인을 내주고 시행사인 천황건설과 시공사인 (주)삼호는 아파트 청약을 강행했다.
이 아파트 일부부지에는 “땅 주인이 바뀔 수 있다”는 ‘예고등기’가 되어있지만, 이러한 사실을 전혀 모른 채 아파트를 계약한 분양계약자들은 이를 고지해주지 않은 건설사와 소송이 진행 중인 땅에 사업승인과 분양승인을 내준 해당 시와 구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건설사는 입주능력이 없는 계약자들이 예고등기를 빌미로 꼬투리를 잡고 있고 있는 것이라며 날선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매일일보>은 아파트 부지를 둘러싼 건설사와 분양계약자들의 첨예한 대립의 내막을 취재해봤다.
대구시 달서구 월성동 536번지 월성 e-편한세상. 현재 이 아파트 부지의 일부는 예고등기 상태다. 내용인 즉 이 아파트의 일부 부지가 2006년 분양당시부터 아파트 전체부지(6만여㎡) 중 일부인 1만1천여㎡(3천300평)가 땅주인을 가리는 소송분쟁 중이였던 것.
사연은 이렇다. 땅주인인 S병원의 곽모 원장은 이 아파트의 사업승인이 나기 전인 2003년 병원건립을 진행하던 중 신용상의 문제가 발생해 자신 병원의 사무장인 L씨에게 소송중인 병원건축예정지에 명의신탁을 해 병원건축을 계속적으로 진행하려 했고 L씨는 이를 받아들여 명의를 빌려주었다.
이씨는 병원건축을 위해 대출 등 관련 업무를 진행하던 중 개인보다는 의료재단을 설립해 병원을 건축하는 것이 좀 더 원활할 것 같아 의료재단을 설립하였고 자신이 신탁 받은 대지를 의료재단에 ‘증여’라는 방식으로 소유권 이전을 했다.
그런데, 이렇게 소유권을 이전받은 의료재단이 주식회사 천황건설에 대지를 매매했고, 이에 곽원장은 땅을 빼앗겼다면서 소유권 말소 소송을 제기했으며, 법원은 선의의 피해자를 보호한다는 취지로 해당 부지에 예고등기를 해둔 상태이다.
예고등기는 소유권에 대한 법적소송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소유권자가 바뀔 수 있다는 위험성을 제 3자에게 알리는 법원의 조치.
이 재판 1심에서 시행사가 승소했지만 2심(2008년 12월)에서는 땅주인이 승소하면서 승패가 엇갈렸고 지난 2009년 12월 24일 대법원에서 2심 내용이 일부파기환송 돼 아직 분쟁이 종결되지 않은 상태다.
이렇듯 땅주인을 가리는 소송이 진행 중이어서 결론이 아직 나지 않은 상태임에도 대구시는 ‘월성 e-편한세상’의 사업계획을 승인해주었고 달서구청이 분양승인을 내렸고 건설사는 분양계약자들을 하나둘씩 모았고, 법적분쟁 사실은 아파트 청약이 거의 마무리된 이후에야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계약자 “건설사로부터 분양당시 예고등기에 관한 언급 들어본 적 없어”
새 아파트로 이사 간다는 기쁨도 잠시 자신들의 아파트 부지 일부가 주인을 가리는 소송이 진행 중이라는 소리를 들은 계약자들은 울분을 터뜨렸다. 한 계약자는 “분양당시에 아파트의 일부가 예고등기 되어있다는 말을 건설사로부터 들어본 적이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매일일보>과의 전화통화에서 “예고등기 부분은 분양당시에 건설사가 청약자들에게 고지해야하는데도 계약서의 기타란에 아주 작은 글씨로 기입해놓고 어떤 설명이나 구두상의 고지 없이 분양을 강행했다”고 주장했다.실제 이 아파트 공급계약서를 확인해본 결과 계약서상에 ‘예고등기’부분은 명시되어 있긴 하지만 글씨가 너무 작아서 내용을 미리 알고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으면 쉽게 알아보기 힘들었다.
계약자들은 이러한 건설사의 행위를 ‘명백한 사기분양’이라며 해당 건설사를 상대로 분양대금반환소송과 손해배상을 제기했다.
분양계약자들의 변호를 맡고 있는 김병진 변호사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건설사(시공사, 시행사)는 분양자들에게 예고등기의 정확한 의미와 전체 대지면적 예고 등기된 비율, 발생할 문제점 등에 대한 별도의 유인물이나 구두 설명을 하지 않은 것은 약관법을 위반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또한 “건설사가 공급 계약서상에 예고등기의 사실을 명시했다고는 하지만 글자크기, 색채, 등을 다른 내용과 구분하지 않고 기타사항으로 언급해 중요한 내용을 부호, 문자, 색채등으로 명확하게 표시하지 않은 것도 약관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계약자들은 소송이 진행 중인 땅에 버젓이 아파트를 지을 수 있도록 사업승인과 분양승인을 내준 대구시와 달서구청의 행위에 대해서도 비난을 퍼부었다.
그러나 달서구청의 한 관계자는 계약자들의 주장에 대해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 7조 5항에 의거해 사업주체가 주택이 건설되는 대지의 소유권을 확보하고 있지만 그 부지에 저당권, 가등기담보권, 전세권, 지상권 등이 설정되어있을 경우 이를 말소한 후에 입주자를 모집해야 한다는 규정에 예고등기라는 조항이 없기 때문에 이는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계약자들의 이런 행동은 “현재 주택경기가 어려워 아파트가격이 떨어지다 보니 이걸 물고 늘어지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건설사 “예고등기 빌미 꼬투리 불과”
삼호 측도 ‘예고등기’는 더 이상 아파트 입주의 불안요소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삼호 측 관계자에 따르면 “부지의 현재 주인은 시행사인 천황건설이고 예고등기 소송건은 전 주인들 간의 싸움”이라며 “이미 아파트 사용검사를 받았고 준공도 받았다며 잔금내면 재산권 문제에 있어서도 온전하게 처리될 수 있다”고 밝혔다.
삼호 측에 따르면 준공수개월 전부터 건설사와 입주민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가 구청의 중재 하에 대화를 가져왔다고 한다.
삼호 관계자는 “이사비용일부 전담, 중도금 6차 납부거부에 관한 연체료 감면 등 여러 가지 혜택을 제의했고 이 부분은 비대위와 합의되어 이에 대부분의 세대가 입주했다”며, “남아있는 50~60세대(비대위 주장:200세대)는 입주능력이 안되면서 예고등기를 가지고 꼬투리로 잡아 입주를 거부하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이들이 현재 요구하는 것이 계약해지 또는 분양가의 25~30%를 할인해 달라고 하는 것인데 이것은 건설 환경이 어려운 시점에 더군다나 삼호가 워크아웃상태인 지금에서는 무리한 요구”라고 강조했다.
삼호 관계자는 “예고등기가 해결되면 이들은 또 미분양 할인판매와 같은 또 다른 구실로 입주를 거부할 것”이라며, 비대위에 대해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삼호는 대법원의 판결로 소유권자가 바뀔 수 있는 부지 즉, ‘예고등기’되어 있는 부지는 분쟁이 해결될 때가지 분양과 매매를 하지 않고 별도로 관리를 한다는 대책안을 내놓은 바 있지만 이에 대해 입주계약자들은 난색을 표했다.
계약자 K씨는 이에 대해 “우선 처음계약 당시 전체부지인 6만여㎡에 대해 대지권이 부여됐는데 대책안에 따르면 4만 3천여㎡에만 대지권이 부여된다”며, “이는 처음 계약사실과 엄연히 다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이상 문제 없어 입주해!! vs 결정난 것 없어 불안해!!
지난해 12월 대법원의 판결에서는 1,2심의 판결을 뒤집고 ‘일부파기환송’을 내렸다. 대법원은 명의신탁 부분에 대해 원고인 병원장 곽모씨의 손을 들어주었지만 소유권 이전 부분에 있어서는 건설사인 삼호의 손을 들어주었다.
건설사로서는 희망의 불씨가 살아난 셈이어서, 이에 삼호는 입주를 하지 않은 세대에게 최고장을 보내며 입주를 재촉하고 있지만 계약자들은 아직 법원의 최종판결이 나오지 않은 상황인 만큼 예고등기 부분은 아직도 불안요소라는 입장이다.
한 입주자는 <매일일보>과의 인터뷰에서 아파트 가치하락으로 인한 재산적 손해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집합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분할등기가 되어있어 원고가 승소하고 합의를 보지 않을 경우 등기가 합쳐지지 못하게 되는데 이럴 경우 전체 1097세대 대단지 아파트로서의 가치가 없어질 뿐만 아니라 예고등기 대지위에 건축된 동에 대해서는 매매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