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조선시대 선비들의 대표적인 정신적 버팀목은 ‘유교’(孺敎)였다. 이런 ‘유교’하면 제일먼저 떠오르는 두 사람이 바로 공자와 맹자다. 그러나 공자와 맹자는 ‘유교’를 공부했다는 것 이외에는 너무도 다른점이 많다.이 두 분은 동시대의 인물도 아니고, 맹자 같은 경우에는 공자의 사후 공자의 제자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그런데 맹자는 공자의 가르침 중에서 군주(君王)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군주론이란 공자가 ‘논어’(論語)에서 이야기한 내용으로 백성들은 항상 군주에게 어버이 같은 마음을 가지고 예를 갖추고 자식 된 도리로서 섬겨야 한다는 논리다.그러나 맹자는 여기에 대한 생각이 달랐다. 세상의 중심은 군주가 아니라 백성들 즉 민(民) 이라고 생각을 했던 것이다.한발 더 나아 함량미달인 군주는 쫓아내어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 또한 맹자는 백성들의 경제적 자립을 보장해주는 구체적 계획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조세경감, 자유무역, 천연자원의 보존, 노약자를 위한 복지대책 수립, 보다 공정한 부의 분배 등을 주장했다. 지금도 파격적인데 당시로서는 얼마나 파격적인 주장이었을까 하는 것은 미뤄 짐작이 간다.“생계수단이 든든할 때라야 든든한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다” 항유산 항유심(恒有産 恒有意)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공자와 맹자가 살았던 시기인 ‘춘추전국시대’에 군주들이 필요했던 것은 부국강병(富國强兵)이나 외교적 책모(策謀)였다. 특히 공자처럼 군주가 중심이 되는 사상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러다 보니 당시 맹자는 항상 찬밥신세였다. 맹자가 내세우는 것은 백성위주의 정치는 , 현실과 동떨어진 지나치게 이상적인 주장이라고 군주들은 생각했던 것 이다.
이런 일례를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이 맹자가 춘추전국시대에 위(魏)나라의 양혜왕을 만났을 때 이야기다.
양혜왕 曰 "선생님이 천리길을 마다않고 오셨는데 이 나라에 이익을 주려고 오신거죠?"
맹자 曰 "군주께서는 처음보자마자 ‘하필’이면 이익부터 이야기 하십니까. 저는 이익은 없고 다만 ‘군주의 도리’는 알고 있습니다."
일단 양혜왕에게 핀잔을 줘서 한방 먹이고 난 뒤 제대로 한번 정치를 가르쳐야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얼핏보면 맹자의 말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다. 군주가 나라의 이익을 말하는데 당연한 것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든다. 그런데 맹자는 이익이 먼저가 아니고 ‘군주의 도리’가 먼저라고 충고한다. ‘하필’이라는 말투를 보면 왕을 아주 얕잡아보고 있는 것 같다. 아예 ‘이익’이라는 단어조차 꺼내지 말라는 얘기다.
다시 말해 이익보다 중용한 것이 ‘군주의 도리’이며 이것이 바로 통치자가 지녀야하는 철학이자 덕목이라는 것이다.
양혜왕과 맹자의 대화는 계속된다.
양혜왕 曰 "이웃나라 정치하는 군주들을 쭉 보고 있지만 나만큼 정치 잘하는 군주가 없는 것 같은데..."
맹자 曰 "싸우다 오십보 도망간 사람이 백보 도망간 사람을 비웃으면 안된다. 다만 더 가고 덜 갔다는 차이일 뿐 이다 . 도망친 건 마찬가지다."
양혜왕이 자신의 마음속으로 자기가 최고라고 하는 은근히 자랑 하자 맹자가 군주의 자만심을 버리라고 한 말이다. 자만심을 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더욱 백성을 잘 다스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는 메시지가 담겨있는 말이다. 요즘 북한이 고(故) 김일성 주석의 95회 생일인 ‘태양절’행사와 5월1일 ‘근로자의 날 행사’등으로 축제 분위기다. 특히 5월1일은 평양 능라도 경기장(흔히들 5·1경기장이라고 부름)에서 체제안정을 대외에 과시하는 대집단체조 ‘아리랑’과 김일성화(花) 축전, 인민군창건 75돌 기념행사, 김정일화 전시회 등 다채로운 기념행사가 열린다.맹자가 만약 다시 ‘환생’한다면 김정일 군주(?)에게 과연 무슨말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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