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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국가보훈처가 올해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합창하는 기존 방식을 유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보훈처의 방침은 참으로 유감스럽다. 박근혜 대통령이 13일 여야 3당 원내 지도부와의 회동에서 이 노래를 둘러싼 논란과 관련해 국론 분열이 생기지 않는 좋은 방안을 마련할 것을 지시하겠다고 밝혔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여야가 협치(協治)를 외치는 등 모처럼 정국이 화합 분위기에 젖어드는 상황에서 보훈처의 이런 협량(狹量)한 태도는 바람직스럽다 할 수 없다.보훈처는 찬반이 첨예하게 나뉘는 상황에서 참여자에게 의무적으로 부르게 하는 제창 방식을 강요해 또 다른 갈등을 유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보훈·안보단체와 전문가들의 의견이라는 점을 내세웠다. 합창단이 합창하고, 부르고 싶은 사람은 따라 부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부르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논란을 최소화하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이다.5·18이 정부 기념일로 지정된 것은 김영삼정부 때인 1997년이다. 이후 이명박정부 첫해인 2008년까지 기념식에서 모든 참석자들이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해왔다. 그러던 것이 2009년부터 합창 방식으로 변경됐다. 10년 넘게 제창으로 부르던 노래를 합창으로 전환한 것은 정부다. 그래놓고 이제 와서 이 노래를 제창으로 하는 것이 또 다른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 주장하니 어리둥절할 뿐이다. 보수정권이 들어섰다고 제창이 합창으로 바뀐다면 정부 정책의 계속성은 어떻게 유지할 수 있겠는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노래를 제창으로 불렀다가 합창으로 부르기를 반복하게 되지 않겠는가.당장 야당들이 가만히 있지 않고 있다. 더민주당과 국민의당은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는 뜻을 밝혔다. 또한 현 정권에 협조할 수 없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님을 위한 행진곡’이 국정운영의 큰 흐름이 바꿀 수 있게 된 셈이다. 새누리당이 보훈처의 합창 방침에 대해 재고를 요구한 것도 이것이 새로운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이 노래는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기준점이 될 수는 없다. 군부 쿠데타에 맞서다 숨진 젊은 넋을 위로하는 노래이기 때문이다. 민주화에 대한 상징성이 있는 이 노래에 대해 정부가 속 좁게 나오는 것은 결코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보훈처는 애국가도 국가 기념곡으로 지정되지 않았다는 논리까지 들먹인다. 애국가가 국가 기념곡이 아니라고 제창하지 않는단 말인가. 견강부회(牽强附會)도 이만하면 수준급이다. 기념곡으로 지정하기 어려우면 그냥 제창하면 된다. 8년 전까지만 해도 제창했던 노래이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