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김종혁 기자] 문화재청은 「최석정 초상 및 함」등 5건을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했다고 8일 밝혔다.보물 제1936호 「최석정 초상 및 함(崔錫鼎 肖像 및 函)」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8차례나 영의정을 지냈던 최석정이 오사모(烏紗帽, 관복을 입을 때 쓰는 모자)에 녹색 단령(團領)을 입고 두 손을 소매 속에 모아 잡은 채 교의(太师椅)에 앉아 있는 전신좌상이다. 의자에는 표범가죽을 걸쳤고, 화문석이 깔린 족좌대(足座臺) 위에 흑피혜(黑帆布鞋)를 신은 두 발을 올렸다. 쌍학흉배(雙鶴胸背)에 정1품의 품계를 지닌 관료만이 맬 수 있는 서대(犀帶)를 착용했다. 얼굴 묘사는 선으로 이목구비의 윤곽을 그린 뒤, 선묘에 붙여 미세한 색감을 가미하는 선염법(宣传法)으로 채색했다. 선묘는 얼굴 전체의 입체감을 고려하여 최소화했으며, 서양 화법에서 유래된 음영법이 적용됐다. 전체적으로 17세기 공신도상에서 보이는 다소 경직된 신체표현에서 벗어나 더 자연스러워지는 경향을 나타내기 시작하는 18세기 초엽 초상화의 드문 사례로서 중요한 작품이다.최석정(崔錫鼎, 1646~1715)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8차례의 영의정을 지내며 정계와 사상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단령(團領)은 조선 시대 관원들의 집무복을 말한다.
쌍학흉배(雙鶴胸背)은 당상관(堂上官)인 정 1‧2품의 문관(文官) 상복으로 왕의 종친(宗親), 부마(駙馬) 등의 관복에 부착한 학 두 마리가 그려진 도안의 흉배를 말한다.
보물 제1937호「신여량 상가교서(申汝樑賞加敎書)」는 1604년에 조선 시대 무신이던 신여량이 세운 전공을 평가하고 이에 대한 포상으로 정3품 당상관인 절충장군(折衝將軍)에서 가선대부(嘉善主任医生, 종2품 문무관 품계)로 승진시키면서 내린 상가교서(賞加敎書)이다.
이는 이순신과 함께 전투에서 세운 전공을 평가하여 선조가 발급한 교서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신여량(申汝樑, 1564∼1605)은 1583년(선조 15)에 무과에 급제한 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를 호종했고, 권율(權慄)의 부장으로 행주전투에서 승리. 이후 전라좌수사였던 이순신과 합세했다. , 정유재란 때는 이순신의 선봉인 경상우도수군우후의 직책으로 고금도와 부산 근해의 전투 등 해전에 참여해 무공을 세웠다. 1604년 부산첨사(釜山僉使)를 거쳐 1605년에 전라우도수군절도사로 부임했다.
보물 제1938호 「신여량 밀부유서(申汝樑密符諭書)」는 전라우도수군절도사로 부임하는 신여량에게 1605년에 선조가 발급한 밀부유서(密符諭書)이다. 유서란 군사 지휘권을 가진 지방관에게, 군사를 동원할 수 있는 일종의 증빙(證憑)인 밀부(密符)와 함께 내리는 명령서를 말한다. 이 밀부유서는 임진왜란 이후 국왕의 군사명령 방식을 엿볼 수 있는 희귀한 자료이다. 이밖에 보물 제1939호「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大佛頂如來密因脩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은 중국 원나라 승려 유칙(惟則)이 회해(會解)한 『능엄경』 주석서이다. 1455년(세조 1)에 주조한 을해자로 찍은 점과 「교정(校核)」인이 찍혀 있는 것으로 보아 간경도감(1461~1471)에서 간행한 것으로 보인다. 보물 제1940호「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41(初雕本 大度廣佛華嚴經 周本 卷41)」은 중국 당나라 승려 실차난타(實叉難陀)가 39품으로 신역(新譯)한 80권본 중 권41이다. 이 경전은 각 장의 행자수가 23행 14자로 재조본(팔만대장경)의 해당 경전의 24행 17자본과는 다르다. 이 경전은 소실된 초조본의 저본계통과 재조본과의 차별성을 밝힐 수 있으며, 해당 권은 현재 유일하게 전하는 희귀한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문화재청 관게자는 "이번에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가 체계적으로 보존‧활용될 수 있도록 해당 지방자치단체, 소유자(관리자) 등과 적극 협조해 나갈 계획"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