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이근우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에게 수백억원대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49·사진) 삼성전자[005930] 부회장이 2일 오후 서울중앙지방법원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제50차 공판에서 자신의 혐의에 대해 4개월만에 처음으로 입장을 전했다.이 부회장은 이날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본인 재판의 피고인 신문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자사주를 매각해 우호 지분을 확보하려는 미래전략실(미전실) 결정에 자신이 반대 의견을 냈다고 했다.그는 “합병이 삼성전자였으면 더 확실하게 얘기했을 것”이라며 “직원들이 회사의 장기적인 미래를 위해 경쟁력을 쌓는데 시간을 써야 한다는 생각에 안타까웠기 때문”이라고 말했다.이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 와병 이후 그룹 대표로 참석하는 행사가 늘었고 그때마다 미전실의 도움을 받은 건 사실이지만 “미래전략실에 소속된 적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그는 “소속은 삼성전자였고 95% 이상이 전자와 전자 계열사 업무였다”며 “전자·정보기술(IT) 만큼 화학, 금융 등 산업에 대한 이해가 떨어져 크게 관여하진 않았다”고 덧붙였다.이 부회장은 정윤회와 최씨의 딸 정유라씨의 존재를 전혀 몰랐으며 승마 선수인줄도 몰랐다고 주장했다. 정씨의 실체를 몰랐으므로 특검 주장처럼 특혜성·대가성 지원을 한게 아니라는 취지다.그러면서 2014년 9월 15일 대구 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식에서 1차 독대 때 박 전 대통령이 “삼성에서 승마협회 회장사를 맡아 달라”고 한 말도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다고 전했다. 삼성이 이전에 승마협회를 맡은 적도 있고 다른 기업보다는 규모가 크니까 요청한게 아니겠느냐는 것.이 부회장은 “면담이 독대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안가에서 하는 독대 같은 것과 워낙 성격이 달라 5분 정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고 갑자기 오라고 해서 회의실에서 만난 것 뿐이라고 해명했다.
또 2015년 7월 25일 2차 단독 면담 때 박 전 대통령과 삼성그룹 현안에 관해 이야기 나눴냐는 질문에 이 부회장은 “내가 말씀드린 것은 없는 것으로 기억한다”고 답했다.이어 “대통령과의 독대는 전날 청와대에서 열린 행사의 연장선이라고 이해했다”며 독대에서 말할 내용을 자세히 준비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오히려 전날 행사가 더 신경 쓰이고 긴장돼 더 연습하고 준비했다”고 부연했다.특검이 “승마협회 관련 지시를 대통령에게서 직접 받은 사람이 피고인인데 최지성 미전실장에게 맡기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는 것인가”라고 묻자, 이 부회장은 “제가 더 이상 할 게 뭐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대답했다.이 부회장은 2015년 8월 최씨 측 독일법인 코레스포츠와 용역계약을 체결한 것도 당시엔 보고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조사와 재판 과정에서 세부 내용을 알게 됐다”며 “지난해 여름에 문제가 돼 미전실장으로부터 처음 들었다”고 말했다.이 부회장은 최씨의 사익 추구에 동원됐다는 의혹을 받는 미르·K스포츠재단의 존재를 언론 보도 후 처음 알았으며 박근혜 전 대통령 독대 과정에서는 듣지 못했다고 반박했다.그는 “문화 융성, 스포츠 쪽을 지원해야 한다는 얘기는 들은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재단 출연 이런 얘긴 기억이 안 난다”고 부인했다.특검팀은 지난해 2월 15일 3차 독대 당시 박 전 대통령이 재단 출연에 감사의 뜻을 표하지 않았느냐고 추궁하며 다른 기업 총수들은 독대 자리에서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감사 인사를 받았다는 점을 그같은 추정의 근거로 내세웠다.하지만 이 부회장은 “저한테는 안 하셨다”며 “삼성 계열사들이 나눠서 재단 출연을 한 사실도 나중에 문제가 되고 나서 알게 돼 ‘그때 대통령이 말하던 문화 융성, 스포츠가 이거구나’라고 연결이 됐다”고 말했다.한편, 이 부회장은 최태민 목사와 박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정확히 어떤 관계가 있는지 내막은 몰랐다”며 최씨가 비선 실세라는 얘기도 “전혀 들은 적이 없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