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 실패로 전 정부 장관 유임 처음
[매일일보] 새 정부 인선과 관련한 후폭풍이 박근혜 대통령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17일 정부조직법 개정안처리 합의를 계기로 국정운영 정상화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었지만 바로 다음날 황철주 중소기업청장 내정자가 자진사퇴한데 이어 21일 김학의 법무차관도 전격 물러났다. 이어 22일에는 김병관 국방장관 내정자도 스스로 사퇴했다.정부 고위직의 줄사퇴 파문이 여기서 일단락될지도 불투명하다.청와대로서는 사정당국의 최고위급인 신임 법무차관이 ‘고위층 별장 성접대 스캔들’이라는 ‘엽기적인’ 사건에 휘말린 것 자체로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특히 민정라인이 일찍이 관련 첩보를 접수하고도 적절한 검증을 하지못한 것이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것이 청와대로서는 부담스럽다. 계속되온 박 대통령의 ‘인선 검증 논란’에 다시 한번 기름을 붇는 격이 되고 있어서다.청와대는 일단 아무런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청와대의 고민은 인선과 관련한 파문이 여기서 그치지 않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대목에 있다.일단 박 대통령은 22일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를 사퇴시키면서 나머지 장관 등 후보자들의 임명을 강행했다. 인사 실패로 국방장관은 전 정권 사람을 유임시키고, 도덕성과 정책 능력에서 문제를 드러낸 현오석 경제부총리에 대한 임명을 고집해 야당 등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전 정부에서 임명된 국방장관을 유임시킨 것은 국방부 창설 이후 처음이다. 청와대는 “안보위기가 가중되는 상황에서 정치적 논쟁과 청문회로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며 유임 이유를 설명했다. 안보상황을 고려할 때 더 이상 장관 공백을 방치할 수 없고, 국회 인사청문회에 시간을 뺏길 수도 없다는 것이다.김관진 장관이 보수층을 중심으로 지지를 받고 있는 점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박 대통령에게 그의 유임을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주 출신인 그를 유임시킴으로써 탕평인사 공약을 뒤집었다는 비판도 피해가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전 정권 장관을 유임시킨 게 첫 사례는 아니다. 김대중 정부 말기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세현 전 장관은 노무현 정부에서도 초기 1년간 대북 정책을 책임졌다. 하지만 이번 사례는 인사 실패에 따른 고육책이란 점에서 정 전 장관과 차이를 보인다. 박 대통령은 김 후보자 내정 후 부동산 투기, 무기 거래상 경력 등 30여가지 의혹이 쏟아졌지만 38일간 버텼다. 박 대통령이 처음부터 문제가 된 인사를 고집하다가 새로운 후보자를 찾을 시간적 여유조차 없애버린 것이다.그 결과 박근혜 정부는 인사 검증 실패로 대통령 뜻에 맞는 국방장관을 임명하지 못하고 전 정권 장관을 빌려쓴 첫 번째 정권이란 꼬리표를 달게 됐다. ‘새 정부에 묵은 장관’의 모양새가 된 셈이다.박 대통령은 여론에 밀려 김병관 카드는 접었지만 현 경제부총리 임명을 강행함으로써 ‘오기 인사’라는 비난을 자초했다. 현 부총리는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증여세 탈루 등 도덕성 문제와 무소신, 무능력 문제가 지적돼 청문보고서 채택마저 불발됐다.청와대가 현 부총리 임명을 밀어붙인 배경에는 국무위원 자리를 흥정 대상으로 삼는 인식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김 후보자를 포기했으니 현 부총리는 임명해도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한 사람 내줬으니 한 사람 밀어붙여야지”라고 했다.김 후보자를 무대에서 내렸지만 박근혜 정부 인사를 둘러싼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통합당은 대형 로펌 출신인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와 공안검사 출신인 박한철 헌법재판소장 지명자 등의 지명 철회를 요구하고 있고 청와대는 물러서지 않을 기세다.박 대통령이 김 후보자를 사퇴시키면서 인사의 문제를 인정한 만큼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김 후보자 사퇴는 부적격 후보에 대한 민심의 질타를 수용하지 않고 오기 인사로 버틸 만큼 버티다가 마지못해 사퇴한 것”이라며 “박 대통령은 나 홀로 수첩인사가 낳은 참사에 대해 즉각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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