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기물 쏠림 현상…환경기초시설업 생존 위협
정부, 국가 폐기물 처리 체계 붕괴 대책은 뒷전
매일일보 = 신승엽 기자 | 환경기초시설업계가 정부로부터 생존권을 보장받기 위해 집단행동에 나선다.
23일 환경기초시설업계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 110대 국정과제 중 하나인 ‘폐기물 열분해 육성 사업’이 실종 위기에 처했다.
환경자원순환업생존대책 위원회(생대위)가 지난 21일 결의문을 통해 “최근 임계점을 넘어가고 있는 9개 시멘트 공장들의 폐기물 처리 행태로 고사 직전에 직면하고 있다”고 밝혔다. 환경자원순환업생존대책 위원회는 고형연료 보일러·발전소, 열분해, 생산자 책임 재활용(EPR), 폐기물 소각 업계 매립 업계 등 8개 협의회로 구성된 단체다.
서울비즈센터에서 개최된 생대위 발대식에서 8개 단체장들은 물러날 곳이 없는 절박한 심정으로 시멘트업계의 폐기물 전횡을 대내외 공표하고, 정부와 국회 등에 입장을 전달키로 했다.
이들 단체들은 동일한 물질 재활용과 에너지 재활용 등 폐기물을 원료로 해 사업을 영위해 나가고 있는 업종들로 구성됐다. 폐기물을 소각해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시멘트 공장과 다를 게 없는 상황이다. 시멘트업계는 법과 제도에서 대폭 완화된 기준이 적용되고 있다. 폐기물을 대량으로 처리하는 행위가 해를 거듭할수록 만연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정부가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9개 시멘트 공장이 281개에 달하는 환경기초시설업계를 극한의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환경 공약 ‘폐기물 열분해 사업’이 뒷전으로 밀려났다난 평가다.
열분해업계 관계자들은 양질의 가연성 폐기물을 확보해 시설 투자와 자금 확보를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폐기물 확보가 불가능한 현재의 시장 상황으로, 폐기물 확보 계획서가 금융권과 대기업의 기준에 부응하지 못해 사업계획을 백지화하고 있는 기업이 늘고 있다.
고형연료 사업은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고 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핵심 사업이었던 고형연료사업은 ‘저탄소 녹색성장’을 기치로 도입돼 출발했다. 최근 고형연료제조업체나 사용업체 모두 폐합성수지를 확보하지 못해 말라버린 폐기물 시장을 헤매고 있다.
폐기물을 재이용·재사용·재활용 후 잔여 폐기물을 소각열에너지로 생산하는 소각 처분 업계는 이미 시멘트 공장의 폐기물 싹쓸이에 지쳤다는 입장이다. 소각로의 불을 끄는 업체들이 속출하고 있다.
EPR업계도 시멘트 공장의 무분별한 양질의 폐합성수지 싹쓸이에 2018년 64만t이던 물량이 42만t으로 급감했다. 결국 112개 업체들이 가동 중지, 사업장 폐쇄 위기로 내몰렸다.
각 업계는 “산업의 균형발전과 이익공유가 존중받아야 하는 한국에서 정의는 존재하는 것인지 의심스럽다”고 입을 모았다.
시멘트 공장은 석유화학, 철강 등의 업종과 대기오염물질 배출량 최상위권을 다투고 있다. 미세먼지를 유발하는 질소산화물(NOx)을 비롯해 법적 특혜를 누리고 있지만, 폐기물을 더 많이 소각한다는 점에서 ‘그린워싱’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생대위는 281개 환경 기초시설업계가 시멘트공장보다 훨씬 더 안전하고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폐기물을 처리해오고 있음을 정부가 간과하고 있는 것에 억울한 심경을 토로했다. 이 시설들이 붕괴될 경우, 국가자원순환체계는 혼란한 상황이 발생한다.
생대위는 “9개 시멘트 공장이 처리할 수 없는 폐기물 상당량을 환경기초시설업계가 감당해나가고 있는 현실을 간과하고 있다”며 “정부가 앞장서서 이들 시멘트공장에 폐기물 처리 지원정책만을 펼치는 것은 지극히 편파적이고, 근시안적인 행정”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폐기물이 각각의 주체에 위탁돼 안전하게 처리 및 재활용되고 있는 현재의 체계가 무너진다면, 걷잡을 수 없는 혼란과 함께 환경산업 체계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생대위는 정부차원에서 폐기물처리 실태를 파악하고 그에 따른 안정적인 폐기물 관리 체계 로드맵을 마련해줄 것을 요구했다. 당장 대통령 공약사항 조차 무너지게 되는 폐기물처리 체계 붕괴에 대책 방안 없는 정부를 믿고 있기에는 작금의 현실이 긴박하기 때문이다.
정부에서 시멘트 사업장에 반입되는 폐기물의 품질기준 적합 여부를 자율 기준에 맡기는 등 국내 폐기물관리법이 허용하는 폐기물 처분과 재활용 수단 중 관리가 허술하다. 2차 환경오염의 폐해가 극심한 시멘트소성로의 폐기물사용이 버젓이 재활용이란 명분으로 법과 제도의 특혜 속에서 폐기물 시장을 삼키고 있다.
생대위는 결의문을 통해 특혜에 가까운 시멘트 공장 환경오염배출기준을 강화하고, 반입폐기물 종류와 사용량을 제한해 줄 것을 요구했다. 시멘트업계가 제조업 본연의 사업에 집중하도록 폐기물 업역을 제한하자는 것이 골자다.
시멘트업계가 반입폐기물의 품질 기준을 준수해 불법 처리행위가 재발되지 않도록 관리·감독 방안도 마련하자는 의견도 제기됐다. 선량한 다수의 환경기초시설업계들까지 불법 행위에 온상으로 함께 인식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편, 생대위는 이번 요구사항이 관철될 때까지 모든 단체가 전력을 다해 투쟁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