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시대, 두 인물 '한국의 미래를 이끄는 철학'
매일일보 = 기고 | 평행이론은 서로 다른 시대에 살면서도 두 사람의 운명이 같은 패턴으로 전개될 수 있다는 이론을 말한다. 에이브러햄 링컨과 존 F. 케네디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100년의 간격을 두고 전개된 그들의 삶은 놀랍게도 많이 비슷했다. 링컨은 1846년에, 케네디는 1946년에 하원의원으로 당선되었고, 링컨은 1860년에, 케네디는 1960년에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그들은 모두 암살되었으며,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위인들 중 하나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1875년 3월 26일 조선에서 태어났고,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거의 백 년 후인 1973년에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 이승만 대통령은 왕족 집안에서, 한동훈 장관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금수저를 물고 자랐다. 두 사람 모두 공부에 독보적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당시 조선의 천재로 불렸으며, 단 5년 만에 미국의 명문 대학인 조지 워싱턴대, 하버드대, 프린스턴대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모두 받았다. 한동훈 장관도 그를 이어가는 인물로서, 강남 8학군 출신이며 서울대 법대에서 학부 시절 사법고시를 합격, '소년급제'를 달성했다. 또한 역대로 가장 어린 나이에 검사장이 되었으며, '최연소 법무부 장관' 타이틀도 얻었다. 두 천재의 공통점 중 하나는 영어 실력이다. 19세기 조선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승만 대통령의 영어는 원어민 수준을 훌쩍 넘어섰다. 청년 시절 이승만은 배재학당 졸업식에서 '한국의 독립(The Independence of Korea)'이라는 제목의 영어 연설을 유창하게 진행해 많은 외국 공사들을 놀라게 했다. 또한 5년 7개월 동안 투옥된 한성감옥에서 그는 원어민 수준의 영어를 더욱 향상시켰다. 한동훈 장관의 영어 실력은 국내외에서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영어 논문을 표절 분석 프로그램인 카피킬러에 넣으면 표절 지수는 0%가 나온다. 2004년에는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로스쿨에서 법학석사(LL.M) 과정을 이수하고, 이듬해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얻었다. 그의 IQ가 175라는 소문까지 있을 정도다. 이승만 박사와 한동훈 장관은 또한 미모를 겸비했다. 이승만은 조선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인정받는 미남이었고, 그의 패션 감각과 매너는 많은 호감을 받았다. 그는 미국에서 맥아더 장군, 우드로 윌슨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과 교류했으며, 엘리너 루스벨트 영부인과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의 친분도 구축했다. 조선에서 온 청년 이승만과 오스트리아의 금발 미녀 프란체스카 도너와의 결혼은 당시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었다. 미국 위스콘신대학의 동아시아연구센터 부소장, 데이비드 P. 필즈 박사는 이승만이 미국에서 아이돌 스타 같은 인기를 누렸다고 저서 <외국인 친구들: 이승만, 미국 예외주의, 그리고 한국의 분단>에서 밝혔다.저작권자 © 매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