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안광석 기자 | 국토교통부가 11일 건설사 시공능력평가제도 개선을 위한 건설산업기본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한다.
현재의 시평제는 건설사의 시공실적·경영상태·기술능력·신인도 항목을 점수화해 평가액을 산정하는 식이다. 이번 개편의 틀은 이중 신인도 평가 강화 차원에서 세부항목을 신설하거나 세분화하는 것이다. 신인도란 건설사 시공능력과 함께 사회·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는 항목이다.
국토부가 해당 평가 기준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본 결과 그동안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던 경영평가액이 줄어들고 이 신인도와 공사평가 기준이 높아진다고 한다. 최근 몇 년간 재무상태가 좋다는 10대 건설사에서도 대형 사고가 잇따르고, 재무보다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의 가치가 높아지는 현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10년 전 국토부는 시공사의 재무상태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시평제를 손봤다. 지금과는 방향이 전혀 달랐다.
그도 그럴 것이 2007년 미국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촉발된 금융위기는 전 세계를 휩쓸었다. 당연히 국내 건설·부동산 시장도 이후 몇 년간 후유증에 시달렸다. 주택 거래가 되지 않다 보니 집값은 추락했고, 건설사들은 하나둘씩 쓰러져갔다. 2013년에는 모든 부동산 관련 지표가 바닥을 찍었다.
건설사 재무제표를 가장 중시하는 현행 시평제는 그렇게 해서 탄생했다.
시대에 따라 법은 변하는 것이다. 문제는 법은 변해도 시장과 업계가 처한 현실은 10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는 점이다.
중대재해와 부실시공은 여전히 발생하고, 10대 건설사가 아닌 중소건설사들은 여전히 자금난에 허덕인다. 건설은 주택분양 위주의 포트폴리오, 부동산은 금리와 심리에 의해 모든 것이 좌우되지 법이나 정책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건설사 고위관계자들이나 임원들을 만날 때마다 나오는 얘기지만, 현실은 그대로인데 이슈 관심도와 여론에 떠밀려 그때그때 바뀌는 법과 정책 대응이 언제나 어려운 법이다. 바꿔 말하면 법과 정책이 업계가 처한 현실의 핵심은 건드리지 못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1차원 세계에서 맴도는 악순환만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시평제만 해도 그렇다. 부실시공이나 중대재해는 회사 규모에 따라 모든 공사의 원청 책임을 대폭 강화하고, 사안별 차등을 두되 사업주 처벌 조항만 명확히 하도록 관련법을 손질했으면 애초부터 시평제까지 건드릴 일도 없다.
국토부 시뮬레이션 대로라면 새 시평제 시행 후 기존 상위 건설사들이 순위 밖으로 밀려나고, 신규 건설사들이 순위권으로 진입할 수 있다. 그러나 눈에 띌 정도의 지각변동은 없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생소한 규정에 따른 혼란이나 발생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굳이 시평제가 아니더라도 강제성이 있는 관련법을 자주 바꾸는 행태가 지속되는 한 달라지는 것은 없다. 여유자금이 있는 건설사들은 바뀌거나 신설된 규정을 충족하기 위해 돈을 들여 관련 TF 발족이나 법률자문을 받을 것이다. 중소 건설사들은 없는 형편에 무리를 하다 폐업하거나, 법망에 걸려 재기 불능이 될 것이다.
건설 같은 보수적 색채의 수주산업은 어떤 사건사고가 나든 어지간히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는 바에야 기존에 한 번 정해진 이미지가 바뀌지도 않는다.
시평제가 사업 발주나 투자자들 기업평가의 중요한 척도이기는 하다. 하지만 어떻게 바뀌든 대부분 입찰과 투자에서 래미안 힐스테이트 e편한세상 자이는 계속 환영을 받을 것이다. 태생적으로 맞지 않는 ESG 개념 도입에 대한 회의감과 혼선도 오랜 시간이 흘러도 그대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