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약자라고 해서 마냥 선량하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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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약자라고 해서 마냥 선량하진 않다
  • 이용 기자
  • 승인 2024.06.03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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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 이용 기자  |  홍콩 영화감독겸 배우 주성치의 영화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주인공과 핵심 주변인은 대개 가난한 소시민으로 설정되는데, 모두 속물 근성을 갖고 있단 점이다.

전통적인 구성의 콘텐츠에는(특히 영화) 보통 기득권자들이 악당으로 나오고, 피지배층은 선량함을 지녀 주인공이 악당을 처단할 동기가 돼 준다. 주성치 영화는 이와 같은 클리셰를 크게 비틀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주성치의 대표작 ‘소림축구’를 살펴보자. 주인공 '아성'은 일용직 청소부를 전전하는 가난한 대학원생으로, 축구를 통해 소림무술 쿵푸를 부흥시키겠다는 원대한 이상을 가졌다. 정작 축구선수로 성공하자, 가난했던 과거를 저버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오래전 만두집 종업원 ‘아매’에게 호감을 품고 접근했으나, 선수가 된 이후 그녀가 찾아와 마음을 고백하자 부담스럽단 이유로 내쳤다. 또 아성의 축구팀이 연승을 거두면서 대중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자, 한 대형 스포츠 브랜드가 스폰서 계약을 요청했다. 해당 회사 사장은 과거 청소부였던 아성을 박대했던 사람인데, 아성은 복수랍시고 그 사장을 두들겨패기도 했다. 파괴지왕, 쿵푸허슬 등 영화에서도 가난한 서민들이 서로를 등쳐먹고, 배신하고, 사소한 일에도 보복을 일삼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실제로 주성치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홍콩의 빈민가에 살면서 주변 사람들을 통해 이같은 경험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즉, 영화를 통해 ‘약자가 꼭 선량하진 않다’는 깨달음을 표현하려 한 것이다. 우리도 주변에서 비슷한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직원을 마치 기계 부품 수준으로 인식하는 일부 사업주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일부 자영업자들은 고객과 대기업(프랜차이즈 본사)이 '갑', 본인을 ‘을’이라며 약자라 칭한다. 경기침체에 하청을 쥐어짜는 원청 대기업과, 힘겹게 장사하는 업주들에게 진상을 부리는 고객들이 악(惡)이라 강조한다.
그런데 정작 일부 몰지각한 업주는 ‘병’ 입장인 직원들의 노동력과, 같은 서민인 고객들의 돈을 최대한 빼먹으려는데 혈안이 돼 있다. 취재하면서 만났던 한 업주는 “임금을 프랜차이즈보다 2배 가량 주지만, 알바가 오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업주에 따르면, 본 가게는 대기업 영업장에 비해 복리후생과 마케팅 역량이 부족한 ‘약자’이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또 최저임금 인상률, 과도한 노동법, 정책의 무관심으로 소상공인들이 죽어나간다고 지적했다. 다만 해당 가게의 아르바이트생들의 말을 들어보니, 왜 직원이 없는지 대충 알 것 같았다. 알바생은 쉬는 날에도 일이 바쁘다며 불러내는 것은 예사며, 식대 제공도 하지 않는데다가 대청소나 점주 개인 심부름 등 부담스런 업무까지 지시한다고 토로했다. 사장은 단지 타 업장보다 급여를 많이 준다는 이유로 이를 감수하라고 했고, 급여마저도 가끔 입금날보다 늦게 들어온다고 했다. 한 미용실 원장이 견습생에게 임금을 주는 것이 부당하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자신이 가르쳐주는 입장이라 오히려 그들에게 돈을 받아야 하는데, 왜 내가 돈을 줘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직원을 CCTV로 감시하는 편의점이나, 추가 근로수당을 주기 싫어서 ‘의리’로 퉁치려는 식당주도 있었다. 알바생 입장에선 해당 업무는 학교 생활이나 취업 준비 중 생계를 위한 수단일 뿐, 평생 직장이 아니다. 몸과 영혼은 물론 공부할 시간까지 업장에 갈아넣으라는 업주의 요구가 부담스러우니 직원들이 그 매장을 꺼리는 것이다. 반찬 가게 옆에 똑같은 반찬 가게가 들어서는 등 소상공인 간 기본 상도덕조차 무시하는 행태도 성행한다. 소규모 카페가 집중된 관광지에선 업주들끼리 담합이라도 했는지 커피값이 똑같은 괴현상도 쉽게 볼 수 있다. 경쟁사가 몰려있으면 가격이 저렴해지는 것이 당연하거늘, 올랐으면 올랐지 떨어지는 법은 없다. 직원의 노동력과 고객의 주머니를 어떻게든 털어먹으려는 소수의 업주 때문에 결국 국민들은 국내 외식업계에 등을 돌리는 판이다. 오죽했으면 국내 여행을 가느니, 해외 관광이 훨씬 싸다는 이야기가 상식처럼 나돌 정도다. 내가 을이면, 누군가에겐 갑이 될 수 있다. 종로에서 뺨 맞고 만만한 사람 뺨을 후려친다면 세상이 악으로 가득 차게 된다. 본인을 돌이켜보고, 자신부터 선한 영향력을 행사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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